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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집어진세계지도 Jun 24. 2022

생생함의 전략

퓰리처상 2022 공공서비스 부문 - 워싱턴 포스트

1 . 생생함의 전략


1.6의 사태는 말그대로 초유의 사태였기 때문에 다각도의 분석이 필요했다. 워싱턴포스트는 1.7부터 1.15까지 1.6의 사건을 다양한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분석 기사를 집중적으로 발행했다. (사태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분석 기사는 10월, 11월에 공개되었다.)


그런 종류의 기사는 총 5편이고, 의사당 내부에 갇혔던 의원과 보좌진의 관점 (1.8), 트럼프 대통령의 관점 (1.10), 의사당 서쪽 테라스를 방어했던 경찰들의 관점 (1.13b), 부통령 마이크 펜스의 관점 (1.14a)에서 1.6의 사태를 서술했다. 1.15 기사는 그동안의 분석을 바탕으로 폭도들의 동선을 표시한 평면도와 영상 타임라인을 제공했다. 이 기사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은 '생생함'을 전달하기 위한 여러가지 전략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공포스러운 현실" (1.8)


1.8 기사는 의사당 내부에 갇혀 있었던 의원과 보좌관들의 관점에서 1.6의 사건을 재구성했다. 40여명의 의원, 직원, 경찰 공무원의 영상과 증언을 취합했다. 의사당에 갇힌 의원들을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는 "공포스러운 현실 terrifying reality”에 감정이입할 수 있게 서술했다. 


도입부를 드라마틱하게 설정했다. 회의 중간에 잠시 휴식을 위해 복도로 나온 미치 맥코넬의 보좌관은 뛰어오는 경찰관과 마주친다. 경찰관이 맥코넬에게 외친다. "뛰세요!" 


의사당 경찰이 보낸 문자 알림, "즉시 사무실로 들어가 문을 잠구라'는 지시도 그대로 옮겼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문 앞에 가구를 쌓아올리는 의원들, '낸시 어딨어? 낸시 어딨어?'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 라고 연호하면서 들어오는 폭도들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의원과 보좌관들은 전화기와 명함철Rolodex를 가지고 도움을 줄 수 있을 사람들을 직접 연락하기 시작했다. (육군성장관, 법무장관/검찰총장attorney general, 합참의장, 인근 주지사, 워싱턴 시장)




"트럼프는 TV 앞에 앉아 의사당 점거를 관람했다." (1.10)


*1.10 기사의 요지는 이렇다. 시위를 선동한 장본인인 트럼프는 사태가 뚜렷하게 악화되기 시작한 후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격앙된 시위자들이 의사당을 점거하기 시작한 것이 수요일 오후 2시고, 사태가 수습되어 회의를 재개할 수 있게 된 것이 오후 8시였다. 그 사이의 6시간 동안 트럼프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기사는 트럼프 보좌진 15명, 의원들, 공화당 고위직, 트럼프 측근들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의 6시간을 재구성했다.


기사의 앞 부분에서는 의사당에 갇힌 일부 의원들이 어떻게 트럼프를 설득하려고 했는지 묘사했다. 하원 소수당 대표 케빈 맥카시는 트럼프의 사위이자 선임고문인 재러드 쿠쉬너에게 연락했고, 린지 그래엄 상원의원은 이방카 트럼프에게 전화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긴박함과 트럼프의 태연함을 대비시켰다. 트럼프는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웨스트윙에서 TV를 켜놓고 그저 점거 사태를 감상하고 있었다. 기사는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서했던 사람이 법을 지키고 질서를 복원하는데 실패했다고 표현했다. 유니폼 입은 경찰의 보호자를 자처했던 트럼프는 의사당 경찰이 폭도들에게 밀리고 사망하는 상황에서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기사는 트럼프 대통령가 ‘단호한 지도자resolute leader’가 아니라 ‘수동적 관람자passive viewer’였으며, 대통령의 가장 기초적인 직무도 수행하지 못했다고 봤다.


그 다음에는, 트럼프가 군중을 어떻게 선동했는지 묘사했다. 트럼프는 1.6 정오 연설을 마무리하면서 ‘펜실베니아 애비뉴를 걸읍시다’ (펜실베니아 애비뉴는 백악관에서 의사당으로 직행하는 길 이름이다. ‘의사당으로 갑시다!’로 해석할 수 있겠다.) 라고 했다. 트럼프는 화난 군중을 의사당으로 향하게 해놓고 본인은 백악관으로 돌아가버렸다. 2시 24분, 부통령 펜스를 비난하는 트윗을 올렸다. 펜스는 바이든 당선자를 2020 선거인단투표의 우승자로 확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들인 에릭 트럼프와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군중에게 ‘싸우라'는 메시지를 계속 보냈다. 


2시, 의사당 침입이 시작되었다. 트럼프 쥬니어는 2시 17분에 트윗을 올렸다. “이건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아닙니다.” “폭력 말고 수정헌법 1조에 명시된 권리를 행사하세요. 우리는 그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기사는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주기 위해 트럼프를 지지하는 공화당 의원조차 군중의 폭력성을 두려워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수의 공화당 의원이 백악관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트럼프에게 폭력 사태를 멈출 것을 요청했다. 기사는 이들 의원들이 '트럼프의 충직한 지지자'였고, 바이든의 선거인단 투표 우승 확정에 반대할 의향까지 있었지만, 이제는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했다고 전했다.


기사는 트럼프와 펜스를 대비시켰다. 기사 앞부분에서는 선거 결과에 승복한 펜스와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트럼프를 대비시켰고, 뒷부분에서는 군중을 선동해놓고 백악관으로 들어가버린 트럼프와, 의사당을 떠나야 한다는 정보 요원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의사당에 머문 펜스를 대조시켰다. 펜스는 결국 의사당 내부의 비밀 장소로 피신하여 입법부와 군사기관 대표들과 전화하면서 대책을 강구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자들이 펜스를 '교수형에 쳐하자' 라고 연호할 때도 부통령의 안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기사 후반부에 가서는 대통령의 태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묘사했다. 기사는 대통령이 조치를 취하기 시작한 시점을 2:30으로 특정했다. 이방카와 공보비서 등이 대통령을 설득했고, 결국 트럼프는 2:30 조금 지나서 트윗을 날렸다 ‘의사당 경찰과 법집행 기관에 협조하세요.” 그리고 약 1시간 후에 또 다른 트윗을 올렸다. ‘폭력은 안됩니다! 우리는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당입니다!” 4시 조금 안돼서 공개한 비디오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평화를 지향해야 합니다. 집으로 가세요. 사랑합니다. 당신들은 정말 특별한special 존재들이예요.” 머리엘 바우저 워싱턴 시장은 6시 통행금지령을 내렸고, 8시가 다 되어서 의사당은 다시 안전 구역이 되었다.


기사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6시 1분, 트럼프가 또 다시 선동 트윗을 올렸기 때문이다. 해당 트윗은 군중을 다시 자극할 우려가 있어 트위터에 의해 삭제되었다. 트럼프는 다음 날 저녁에는 또 다른 영상을 공개했다. “의회는 결과를 확정했습니다. 1월 20일, 새로운 행정부가 발족할 것입니다. (...) 권력의 부드럽고 질서 있는 매끄러운 인수를 보장하는데 집중할 것입니다. 치유와 화해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기사는 다수의 보좌관의 말을 빌려 치유와 화해에 대한 요청이 지나치게 늦었다고 평가했다. 기사는 트럼프가 해당 영상을 내보낸 일을 후회했다고 전하면서 마무리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나약한 사람처럼 보였다고 생각했다.




“의사당 서쪽 테라스에서 경찰은 사투를 벌였다.” (1.13)


1.13 기사는 경찰관들이 의사당 서쪽 테라스를 어떻게 방어했는지 묘사했다. 서쪽 테라스는 경찰이 폭도의 진입을 막는데 성공한 몇 안되는 지점 중 하나이다. 서쪽 테라스를 방어했던 경찰들은 의사당이 이미 뚫렸다는 사실을 모르는채로 의사당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기사는 의사당을 점거한 군중의 폭력성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경찰관 마이클 페논Michael Fanone은 의사당 경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전을 받고 곧바로 의사당으로 달려갔다. 페논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15000명과 싸워야 했다. 중세시대의 전투 장면 같았다.’ 군중은 페논의 헬멧을 잡아당기고, 쓰러뜨린 다음 계단 밑으로 끌고 갔다. 철제 파이프와 미국 국기가 달린 봉으로 폭행하기 시작했다. 군중은 전기 충격기를 사용했고, 페논은 가벼운 심장마비를 겪었다. 그는 의식을 잃었다 되찾기를 반복했다. 군중은 'USA'를 연호했고, ‘한 놈 잡았다!’, ‘총을 뺏어서 죽여라!’ 라고 외쳤다.


서쪽 테라스를 지켰던 또 다른 경찰관인 마이클 호지스는 시위자들의 광기가 비현실적이었다고 증언했다. 누군가는 그의 눈을 찌르려고 했고, 누군가는 그의 방독면을 벗겨냈으며, 누군가는 그의 방망이를 뺏어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그의 얼굴에 곰 퇴치 스프레이를 뿌렸다.




“폭도들은 펜스 부통령에게 ‘위험할 정도로 가까이dangerously close’ 접근했다.” (1.14)


1.14 기사는 의사당에 진입한 폭도 무리가 펜스 부통령에게 ‘위험할 정도로 가까이dangerously close’ 접근했었다는 점을 설명했다. 폭도들은 부통령 마이크 펜스를 ‘배신자’로 간주했고, '펜스를 교수형에 쳐하자!' 라고 연호했다.


의사당에는 펜스의 가족 (아내와 딸, 공화당 의원인 형)이 있었다는 점을 빼놓지 않았다. 1.6 기사에서도 한 의원의 가족이 의사당에 함께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이 또한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선택일테다.


1.10 기사에서도 그랬듯이, 워싱턴 포스트는 펜스 부통령을 책임감 있는 지도자로 그렸다. 군중이 의사당에 진입하자 경호진은 펜스에게 두 차례 피신을 제안했다. 펜스는 두 번 모두 거부했고, 경호진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펜스를 비밀장소로 데리고 갔다. 기사는 펜스의 연설을 인용하면서 마무리했다. 1.6 저녁, 당선인 확정을 위한 절차를 재개하기에 앞서 있었던 펜스의 즉흥적인 연설이었다. "오늘 의사당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당신들은 승리하지 않았습니다. 폭력은 항상 패배합니다. 승리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2시 12분부터 2시 44분까지" (1.15)


1.15 기사는 평소보다 짧은 텍스트와, 그래픽 컨텐츠, 그리고 비디오 컨텐츠로 구성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휴대폰 문자, 사진, 수 백 개의 영상을 분석하여 1.6의 '대혼란pandemonium'을 재구성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의사당의 창문이 깨진 시점 (2:12)부터 의원들의 대피가 완료된 시점 (2:44)까지 벌어진 일을 정교하게 재구성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안면 인식 알고리즘을 이용해 의사당 내부에서 촬영된 폭도들의 영상을 분석하여 의사당에 진입한 사람의 수가 최소 300명이라는 점을 알아냈다. 영상에 찍히지 않은 사람들을 포함하면 훨씬 많을 것이라 봤다.


워싱턴 포스트는 사진과 영상의 카메라 각도를 분석하여, 군중의 동선을 의사당 건물의 평면도 및 3차원 모델에 표시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이 의원들에게 얼마나 가까이 접근했었는지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1.14 기사에서는 폭도들이 펜스 부통령에게 ‘위험할 정도로 가까이dangerously close’ 접근했다고 했었다. 1.15 기사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그 위험한 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수치화 했다. (1분만 늦었으면 펜스 부통령은 그를 '교수형'에 처하자고 노래하는 폭도들과 마주할 뻔했다.) 실제로 2시 40분에는 복도를 통해 이동하던 의원들이 폭도 무리를 마주했고, 경찰의 도움을 받아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기사에 첨부된 영상 컨텐츠는 촬영 푸티지와 동선 그래픽을 편집한 타임라인이다. 6:36~7:11 구간에 나오는 영상은 충격적이다! 폭도들에게 밀리는 경찰의 모습은 좀비떼에게 당하는 영화 속 엑스트라처럼 보인다.




총평 : 생생함의 전략들


퓰리처상 측은 워싱턴포스트 지의 기사를 평가하면서 ‘눈을 뗄 수 없는compellingly',  ‘생생한vivid' 같은 술어들을 사용했다. 저 술어들의 사용에 동의한다. 워싱턴 포스트는 기사의 '생생함'을 극대화 하기 위해 여러가지 전략을 사용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드라마틱한 순간들을 선별해서 기사에 넣었다. (1.8 기사의 “뛰세요!”, 1.15 기사 의원들과 폭도들의 마주침)


*의사당의 긴박한 상황과 백악관에서 태연하게 TV를 보는 트럼프의 대비시켰다. 


*폭도들의 가장 섬뜩한 구호들 (‘낸시 어딨어!’, ‘펜스를 교수형에 쳐하자!’)을 적절하게 뽑아서 적절한 위치에 배치했다. 


*군중이 경찰에게 가한 다양한 유형의 폭력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1.13)


*상황의 핵심을 간결하게 전달해주는 특징적인 사물을 적절하게 언급했다. 명함철 (1.8), 곰 퇴치 스프레이 (1.13) 같은 것. (그런데 의원들이 명함철을 뒤지면서 전화를 돌렸다고 묘사하는 대목은 그림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인상적이기는 한데, 조금 과한 것 아닌가 싶다. 요즘 명함철을 사용하는 사람이 어디있단 말인가. 고령의 의원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명함철 돌리는 모습은 너무 문학적(?)으로 느껴진다.


*의사당 내부에 가족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구체적인 수치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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