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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Sep 10. 2022

콜드 메일


훈훈한 덕담이 오가는 추석을 맞이하며.



인생의 모토가 뭐야?

실패해도 된다.

그게 어떻게 모토야. 뭐를 제일 잘해?

빠른 포기요.



의경을 할 때였다. 의경을 관리하는 경찰이 갓 자대배치를 받은 내게 물었다. 뜬금없는 소리였겠지만 진심이었다. 그러자 해병대를 나왔던 그 분은 ‘안 되면 되게 하라’에 대한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역시 ‘빠져버린’ 의경은 어쩔 수 없었다.



10월이 되면 공기 중에 수능 냄새가 나던 시절이 있었다. 뭔지 모를 차가움과 선선함 그 사이. 있던 비염도 살짝 풀리는 그 시기. 누군가는 내게 실패해도 된다고 했다. 대박과 성공 기원의 떡과 초콜릿 선물이 난무하던 10월의 분위기와는 너무나도 상반됐다. 무심하고 무서운 그 말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부터 내 인생의 모토는 실패해도 된다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코비 브라이언트는 10대에 농구 캠프를 가서 1점도 득점하지 못했다고 한다. 상심하고 있던 그때 코비의 아버지는 코비에게 1점을 넣든 60점을 넣든 괜찮다고. 얼마를 넣든 자신은 코비를 사랑할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코비는 그 이후 자유로움을 느꼈고, 어찌됐든 60점을 넣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까지 두 번 정도 콜드 메일(cold mail) 비스무리한 걸 써봤다. 다짜고짜 찾아가 일을 달라고 하고, 무슨 일을 할 지 계획서를 써서 미팅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뽑는지도 잘 모르겠는 회사에 포트폴리오를 들이밀기도 했다. 사실 이런 방법은 스타트업 회사들이 투자처를 찾기 위해 읽을지, 답신을 해줄지도 모르는 메일, 콜드 메일을 쓰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콜드 메일을 보내고 나서는 초조한 기다림이 이어진다. 항상 스탠바이 상태였고, 불확실했다. 그래도 세상은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두려움은 때로 소유와 상실과 연결되어 있다. 소유는 행복감을, 상실의 가능성은 두려움을 유발한다. 한 친구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고민이 된다고. 무언가가 두려워 발을 떼지 못하는 상황.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지하 감옥에 갇힌 브루스 웨인은 몸에 줄을 묶고 탈출을 시도한다. 줄은 공중에서 떨어질 상황을 대비하는 안전책이다. 줄에 생명을 의지한 브루스는 떨어진다. 그 다음 그는 줄 없이 탈출에 도전한다. 두려움이 절박함을, 용기를 줄 것이라는 지하 감옥 의사의 말을 듣고. 두렵기를 주저하지 말라.



박찬욱 감독의 가훈은 ‘아님 말고’라고 한다. 하고 싶으면 열심히 해보고, 안 된다 싶으면 다른 걸 하면 된다. ‘아님 말고’는 내게 빠른 포기다. 이는 유연함이다. 허준이 교수의 서울대 졸업 축사는 건조했지만 따뜻했다. 그는 온전히 경험하기를 이야기한다. 낙관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을 온전히 맞이하였을 때, 비로소 세상을 긍정할 수 있다.


두렵기를 주저하지 말라.


‘고백으로 혼내준다’는 말은 안타까움과 위트가 공존한다. 고백은 확인이라고 하는데 용맹무쌍한 이들은 확인 따위 신경쓰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 콜드 메일을 보내고 시작한다. 세상의 스타트업 창업자, 사회 초년생, 고백을 앞둔 사랑꾼, 그리고 모든 종류의 도전자들을 응원한다. 당신들의 마음은 온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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