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다섯번째 이야기
나는 작은 것이 좋았다. 볼펜은 1.0짜리나 0.5짜리보다 0.38이나 0.28을 선호했다. 글씨를 쓸 때도 크게 쓰는 것보다 작게 쓰는 게 좋았다. 신발을 살 때도 크고 뚱뚱한 신발보다 발볼이 얇은 신발만 찾았다. 왜 그랬나 모르지만 항상 작은 것이 조금 더 끌렸다.
중학교 미술 시간에는 늘 책상 배열이 달라졌던 것 같다. 두 개씩 나란히 붙어서 칠판을 바라보는 대열 대신 네 개 내지 여섯 개씩 책상을 붙여 친구들끼리 더 모여서 그림을 그렸다. 호쾌했던 미술 선생님은 여러 책상 그룹을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못 그리는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주었다. 나는 늘 피드백을 받는 편이었다. 어느 날은 선생님이 내 4B 연필을 뺏고 직접 그림을 그려주었다. 순식간에 그림이 좋아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나는 물었다. “선생님이 그리니까 엄청 좋아졌어요. 이렇게 하면 A도 받을 수 있나요?” 선생님은 연필을 내려놓으시면서 말했다. “너는 B야.” 호쾌하신 분은 성적 앞에서는 단호했다.
잠시 화방에 다닌 적이 있다. 화방에 가면 초보는 제일 기본부터 배운다. 선 그리기.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선을 그렸다. 그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크로키를 그렸다. 화방 선생님은 내 그림을 보며 늘 선이 짧다고 했다. 길게 그리고, 크게 그리라고 했다. 선생님은 내 그림을 보고 내 성격을 유추했다. 세심한 것 같은데 소심하기도 하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의식적으로 크고 긴 선을 그리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 다시 짧은 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게 늘 마음에 걸렸다.
친구와 함께 윤형근 전시를 보러 갔다. 갤러리에 걸려 있던 그림들은 꽤나 그 크기가 컸다. 큰 캔버스에 그려진 단색화는 웅장했다. 왠지 모르지만 압도되는 기분이 든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그러자 친구는 크기에서 오는 웅장함 때문에 작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싫어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어서인지 그 말이 이해가 되면서도 나는 그저 큰 그림이 좋았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었을까.
정말 신기한 기회로 콘크리트 패널에 스테인을 먹인 적이 있다. 콘크리트 패널이 비싸다는 점과 한 번 칠한 스테인은 쉽게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뭔가 선뜻 칠하기 부담스러웠다. 패널이 한 장 남았을 때는 패널 주인이 스테인 작업을 했다. 바닥에 앉아 스테인을 적신 스펀지와 휴지로 거침없이 패널의 위아래를 오갔다. 지금껏 직접 화가의 작업을 보진 못했지만 큰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날 그와 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항상 균형감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선이 짧다. 크게 그리고 싶어 긴장을 풀고 선을 긋는다. 큰 획들은 어느새 다시 짧아진다. 관성이고 습관이겠지. 작게 그리고 있으면 무게추를 옮겨 다시 크게 그리면 된다. 이번엔 그 관성에 조금 더 저항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