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 새해가 된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검은 호랑이의 해를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우리나라 민화에 나오는 호랑이를 주제로 전시관을 단장했습니다. 분산형 오피스 집무실은 새해 계획의 키워드로 ‘비범’을, 코엑스 K-Pop 스퀘어 전광판은 일상으로의 회복을 기원하는 ‘평범’을 내걸었습니다. 새해가 됐는데 처음 3일을 새해처럼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작년의 관성이 이어진다고 합니다. 계획을 세우면 어찌됐든 이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되어 웬만하면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진 않는 편입니다. 그래도 조금은 작년의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워지고 싶은 마음에 일단 다짐부터 한다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고자 합니다.
어떠한 일을 하든 제 시작은 관찰에 있습니다. 무턱대고 달려드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관찰은 통찰을 위한 과정입니다. 건담을 조립하기 위해 파츠(parts)를 유심히 살펴보고, 어떤 것이 무엇과 언제, 어떻게 연결될지 살피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시뮬레이션을 거치면 효율이 높아지고, 실패의 확률이 줄어듭니다. 하지만 때로 관찰을 먼저 하는 일은 용감하지 못한 것입니다. 기지를 발휘하여 빠른 시간 안에 일을 처리해야하는 순간에 특히 그렇습니다. 관찰은 늘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맹목적인 관찰은 새로움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자신만의 고유함 없이 벤치 마킹만으로는 1등이 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냥 하지 말라’라는 책을 보니 지금은 ‘진정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국밥을 먹는 데에도, 구독할 유튜버를 찾는 데에도 근본을 찾는다고 합니다. 책의 작가 송길영은 AI가 인류를 대체하는 시대 속 미래 인간의 업은 플랫폼 프로바이더 혹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라고 말합니다. 일단 자기 객관화를 거쳤을 때 본인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까운 인간 유형입니다. AI와 맞붙을 수 있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작은 일이지만 장인 정신을 발휘하여 오랜 시간 내실을 쌓아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 중심적인 태도는 사람들에게 진정성으로 읽힙니다. 올해는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 진정성을 찾는 데에 힘을 쏟아야겠습니다.
학창 시절과 지금의 제 모습은 많이 다릅니다. 어릴 적 친구들은 제 MBTI 유형을 I로 생각하는 반면 비교적 근래에 만난 친구들은 저를 ‘빼박’ E라고 말합니다. 오랜만에 중학교 때 친구를 만나 제가 “오늘 너무 말을 많이 했다. 그러지 않기로 했는데.”라고 하자 제가 원래 그렇게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 않냐며 의아해 했습니다. 어쩌면 공부만 했던 학창 시절과 달리 지금은 제 생각을 팔아야 하는 입장이 됐기 때문에 그러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꽤나 자기주장을 많이 하다보니 남보다 말을 많이 하고, 스스로 말을 어렵게 하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송길영의 말처럼 정말 훌륭한 사람은 어려운 이야기도 쉽게 하는 사람인데 말입니다. 제아무리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대중 앞에서 온갖 공식과 전문 용어를 들먹이며 이야기하는 것은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입니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먼저하고, 말해야 하는 경우에는 쉽게 말하는 습관을 갖겠습니다. 또 말하기보다 가시적으로 보여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삶은 형상을 가집니다. 그래서 공간은 사람을 닮습니다. 공간 만들기는 올해의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현재 세 명의 친구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공간의 이름은 다름 속에서 같음을 찾자는 뜻에서 ‘Agree To Disagree’라고 지었습니다. 이는 ‘관계에 관하여’라는 피드(글)에 자세히 적었습니다. 이 공간이 우리의 모습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