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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보라 Sep 23. 2020

착한 맛 떡볶이는 참지 않아!

착해보여서 만만해보인다는 사람들을 위하여

<2부 떡볶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떡볶이 프랜차이즈가 있다. 매운맛이 아주 엽기적이라는 바로 그 집이다. 하지만 매운 것은 개인적으로 못 먹기에 주문 전화를 할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떡볶이 제일 안 매운맛으로 가져다주세요.”

그러면 직원은 항상 이렇게 되묻는다.

“떡볶이 착한 맛으로 드릴까요?”

“네.”

“50분 정도 걸립니다. 감사합니다.”

안 매운 떡볶이를 착한 맛 떡볶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귀엽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생각한다. 맵지 않은 것은 착한 것인가? 맵지 않을 뿐인데 착하다고 단정 지어지는 떡볶이. 어느 날 이 떡볶이가 왠지 불쌍하게 느껴진 적이 있다. 사실 착하다는 말은 칭찬인데. 언제부터인가 착하다는 말을 칭찬으로 쓰지 않게 된 것 같다.     


 ‘착하다’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는 뜻이다. 나는 이상하게 어려서부터 ‘착하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저 남에게 싫은 소리 안 하고 친절하게 대하고 웃는 얼굴로 대했을 뿐이다. 딱히 ‘착하다’라는 말의 뜻처럼 내 마음씨가 고운 것 같지는 않은데 꼬리표처럼 그런 말들은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 사실 남 부탁을 겉으로 거절을 못 했을 뿐 속으로 욕한 적도 많고 남을 위한 행동보다 내 이익을 위해 행동해온 적이 더 많았다. 그래서인지 착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대학생이 되고 취업 준비를 위한 스터디를 꾸리고 직장에 나가 보니 다른 사람과 의견을 조율하고 나누고 타협을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나는 유난히 이런 상황들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특히 어떤 사안에 대해서 거절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거절하고 싶은데 거절하면 상대가 상처 받지는 않을까, 내가 아무 말하지 않으면 동의처럼 느껴질까 거절처럼 느껴질까 온갖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한 번은 그냥 모든 게 서러워졌던 때가 있었다. 그때 친구에게 하소연한 적이 있었다.

“다들 나를 만만하게 보는 느낌이야. 내가 웃으며 대해서 그런지 의견도 제대로 물어보지도 않고, 거절하는 건 더 힘들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바로 말하는 게 좋은 걸까?”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내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한마디 하였다.

“누군가가 너를 어렵게 대하는 것보다 편안하게 대하는 게 낫잖아. 너도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편안한 사람이 좋아, 말 걸 때마다 눈치 보게 하는 사람이 좋아?”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착해 보이는 것 자체는 단점이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방이 나를 편안하게 생각해준다는 건 서로 좋은 감정을 유지할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나 역시 본인 마음에 안 든다고 바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과는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다. 착해 보인다고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이지 착해 보이는 사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편안하게 다가가되 나를 지키며 대화하는 것이었다. 친구와의 대화 이후로 상대방이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장점으로 가져가고, 무조건 거절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만의 기준을 세워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최근 서점 베스트셀러를 보면 인간관계에 대한 에세이가 많은 것 같다. 그만큼 인간관계 때문에 힘듦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제목만 보아도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법’ 같은 것들을 주제로 하고 있는 책들이 많이 보인다. 그런 책들을 보면 하고 싶은 말은 참지 말고 당당히 하라는 구절이 꼭 나온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고 그때그때 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 있다. 하지만 성격상 매 순간 그렇게 하기 어려운 나 같은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최근에 ‘한때 분한 것을 참으면 백날의 근심을 면할 수 있다’(忍一時之忿이면 免百日之憂)는 말을 알게 되었는데 마음에 와닿았다. 잠깐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면 갈등을 일으킨 이후 마음고생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과 의견 충돌이 생기거나 거절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일단 참고 말하지 않는 나의 장점은 가져가되 내가 최대한 이해할 수 있는 지점과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지점을 정하고 대화하기로 하였다. 일단 하고 싶은 말은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상대가 나의 수용하는 지점을 넘어서면 그때 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상대방과 타협하다 보면 내 의견보다 더 좋은 의견이 나올 수도 있고 조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산다는 건 그런 거니까. 어렵겠지만 조금씩 해보려고 한다.      


매워서 먹기조차 힘든 떡볶이보다는 먹는 동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착한 맛 떡볶이가 더 좋다. 비록 엽기적이거나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단골손님을 만드는 착한 맛 떡볶이. 먹고 나서도 배가 아프지 않아서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적당히 매콤한 착한 맛 떡볶이. 많이 맵지 않다고 착하다고 불리지만 착한 맛 떡볶이는 참지 않는다. 그저 자신만의 방식으로 맛을 낼 뿐이다. 이 세상 모든 착한 맛 떡볶이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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