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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보라 Sep 18. 2020

꿈꾸기 좋은 밤

삼십 대의 꿈

 

 <1부 잠>

‘잠을 주제로 마인드맵을 그려봐!’라는 과제가 주어진다면, 가장 먼저 가지를 뻗고 나올 단어는 ‘꿈’ 아닐까?


꿈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수면 중 렘수면 상태에 빠져 여러 가지 장면들을 보고 듣는 현상이라는 뜻이 있고 다른 하나는 한 인간이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이나 희망이라는 뜻이 있다. 꿈이라는 하나의 단어에 이런 두 가지 의미가 있기 때문인지 나는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꿈의 두 번째 의미, 즉 내가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이나 희망에 대해서 종종 생각한다.      


 나는 학생들과 진로 상담할 때 ‘장래 희망’이라는 단어와 ‘꿈’이라는 단어를 동의어로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실 비슷한 의미로 써도 의사소통에 크게 지장은 없지만, ‘장래 희망’은 말 그대로 미래에 가지고 싶은 직업을 의미하는 단어이고 꿈은 한 사람이 추구하는 삶의 모습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의 차이는 장래희망은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미래에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장래희망'을 고민하는 시간만큼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꿈'을 고민하는 시간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책장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고등학교 3학년 때 쓴 일기장에는 이십 대에 이루고 싶은 꿈을 주제로 쓴 글이 있었다. 그 글을 읽고 한참이나 혼자 웃었는데 거기에는 ‘이십 대는 진짜 사랑을 해보고 싶다.’라고 쓰여 있었다. 당시에는 드라마를 매우 많이 봤던 시기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 대신 죽을 결심을 하는 장면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죽음도 뛰어넘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직 나나 내가 사랑한 상대는 죽음의 위기는 겪지 못했기 때문에 진짜 사랑을 확인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절 바람대로 이십 대 때는 열심히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당시에는 굉장히 결의에 차서 쓴 글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귀엽기만 하다.   

  

 그때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으니, 일기를 쓴 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삼십 대를 앞두고 나는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가야 할까? 아직은 살짝 어색한 숫자이지만 십 대인 학생들에게도 이십 대에 가질 직업을 진지하게 생각하라고, 늦었다고, 재촉하고 조언하는 처지이니 나부터 슬슬 고민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음, 글쎄……. 삼십 대의 나는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삼십이라는 숫자는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는 결코 많은 나이가 아닌데도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새로운 시작에는 괜히 주춤하게 만드는 숫자 같다. 인터넷 게시글만 봐도  ‘서른 살인데 시작해도 늦지 않을까요?’라는 글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얼마 전 육십을 바라보는 엄마가 ‘엄마 어릴 때~’라고 하면서 말을 시작한 적이 있는데 그때 말했던 나이가 서른여섯이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지금 엄마를 보며 ‘한창때고 좋을 때다.’라고 한다.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만 가끔 이 말을 떠올리며 반성한다. 나는 살면서 괜히 머뭇거리는 마음이 들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며 살아가고 싶다. 안 되는 이유보다 되는 이유를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다. 이것이 바로 나의 ‘삼십 대의 꿈’이다. 지금 굉장히 결의에 차 있는데 이 글도 십 년 후인 삼십 대 후반에 다시 보게 되면 귀엽게만 느껴지는 글이 될까? 그건 아직 모르겠다. 일단 오늘 밤은 좋은 꿈이나 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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