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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Jul 08. 2021

재능 없는 엄마의 글쓰기

취미는 쓰기, 특기는 사유하기.

나는 의자에 앉아서 '글을 써야지'하고 쓰는 타입이 아니다. 시간을 정해두고 꾸준히 쓰지도 못한다. 쓰는 일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어떻게 써야지'라고 생각한다고 그렇게 써지거나 '이런 내용을 써야지'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떠오르거나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번 여행에서는 느낀 점을 토대로 여행 에세이를 써야지.'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아마도 단 한 줄도 쓰지 못할 것이다. 단 한 줄도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어떤 주제를 정하고 쓰지도 못한다. 그렇게 써 본 적도 없거니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게 분명하다.


나는 글을 떠오를 때만 쓴다. 그저 떠오르는 것을 받아 적는다는 말이 더 맞겠다.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한다면 하루 종일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다 몇 날 며칠을 생각하다 딱 떠오르는 날, 한마디로 필 받는 순간 앉아야 한다. 하지만 사실 그래 본 적이 없다.  '무언가에 대해 써야지.'하고 생각해 본 적이 그래 본적이 없다.  늘, 언제나, 어김없이.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글을 받아 적는 기분으로 글을 쓴다.


모두가 그렇게 글을 쓰는지 아니면 나만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확실히 글이 떠올라야 쓰는 타입이다. 계획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글은 깊이 있는 무언가를 고민 끝에 써 내려가기보다 내게 떠오르는 생각들 그리고 나를 사로잡는 상념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느낌의 글쓰기, 그저 기록하는 글쓰기 일 때가 많다. 그저 쓰인다. 그것이 쓰는 일이 즐겁고 달콤하면서도 내가 쓴 글이 자신 없고 초라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늘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브런치를 하게 하게 되면서 나의 글도 누군가 보아줄 수 있고, 누군가에게 와닿는 글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마음에 폭죽 같은 것이 팡팡 하고 터지는 기분이 들었다. 기뻤다. 그래서 한 자 한 자 글을 다듬고 다듬기 시작했다. 글을 다듬어 예쁘게 볼만하게 만드는 작업의 시간이 쓰기의 시간을 통틀어 가장 즐거웠다. 생각해보면  흙을 만지고 도자기를 만드는 공방에 다닐 적에도 그랬다. 틀을 잡고 흙을 붙여가며 형태를 만들어 갈 때 보다 틀이 갖춰진 후 다듬어 가는 시간을 더 좋아했다. 글을 쓸 때에도 흙을 다듬을 때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글을 써 내려갈 때보다 퇴고하고 다듬으며 흙속에 묻힌 보석을 반질 반질 윤이 나게 닦아 쓸만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나는 색다른 충만함을 느끼곤 한다.


나의 '떠오를 때 쓰는' 이런 쓰기는 아이를 키우며 무척 힘든 '쓰기 작업'이 되었다. 지금 써야 하는데 문장들이 머릿속을 떠다니기 시작하는데 아이는 나에게 시간을 내어주지 않는다. 안아달라고 보챈다. 배고프다며 안긴다. 아이를 재워야 하거나 놀아줘야 하거나 산책을 가야 하거나. 엄마라는 사람의 시간은 온전히 자신의 것인 때가 거의 없으므로. 틈틈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잊지 않으려 메모해두곤 하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을 때가 더 많다. 손에 든 일을 차마 놓지 못해 이어가다 어느새 내가 뭘 쓰려고 했는지 조차 잃어버리고 만다. 문장을 잊지 않으려 몇 번 곱씹어 보곤 하지만 아차 하는 순간 놓쳐버리고 만다. 그럴 땐 내 머릿속을 잠시 머물렀다 가버린 그 문장들에게 서운하다. 그 문장들은 어쩌면 쓰여지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로 가버렸는지도 모른다. 때때로 내가 꼭 쓰려고 했던 나를 스쳐간 문장을 책 속에서 만나기도 하는 걸 보면 정말 그런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차를 몰고 남편에게로 가는 길 아이가 잠이 든 틈을  타 차를 세우고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숨죽여 타자를 누른다. 아이의 숨소리가 조곤조곤 때론 가르릉하고 들린다. 아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생각을 정리해 나간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써두는 것을 좋아하기에 떠오를 때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은 내게 작은 통증을 가져다준다. 함께 있을 때엔 아이에게 집중하는 엄마이고 싶으면서도 나를 찾아준 이 문장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틈틈이 쓰기’는 정말 고된 일이다. 문장은 어느새 휘 하고 날아가 버린다. 그러다 문득 아 하고 떠오르면 건빵의 별사탕을 발견할 때처럼 몇 배는 더 기쁘고 몇 곱절 더 달콤하다.

어쩌면 내게 주어진 선택은 단 하나뿐이다. 지금을 즐기는 것.

지금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일들이 분명 있다.

아이의 매일이 그러하고, 이렇게 쓰릴 있는 글쓰기를 하는 것 또한 지금 뿐이리라.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기꺼이 기쁘게 해 나가자.

이 시간을 놓지 않고 써 내려가면 그것만으로도 족한 온전한 엄마로의 시간으로 남으리라.


잊지 말자 언제나 지금이 나의 호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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