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대지만 설레지 않는.
면접을 보고 면접장을 나오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이제부터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핸드폰을 켜 두어야 한다.
면접을 준비할 때의 두근거림과는 다른 종류의 두근거림. 긴장은 한껏 풀렸는데 문제는 지금부터는 예민해진다는 것. 심장은 두근대고 입이 바삭바삭 마르고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웃고 있어도 다른 이와 대화를 하는 중에도 마음은 어느새 콩밭에 가 앉았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벨소리로 잘 설정되어 있는지를 시시때때로 확인을 한다. 이것이 바로 면접을 본 자의 기다리는 마음이다.
면접을 보고 왔다. 햇살이 좋은 날 서류봉투 하나를 들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면접장으로 갔다. 1차 서류면접에 통과했다는 것에 벌써 내가 일이라도 시작한 것처럼, 최종면접에 합격이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들떴다. 그러나 면접장에서 쏟아지는 질문에 맞서 최선을 다하면 다 할수록 그곳을 나오는 길에는 만족감이 아닌 자괴감이 밀려든다. '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마음. 초라한, 서글픈 '을의 마음'이 나를 흔든다. 그렇게 초라하고 서글퍼서 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후로 나의 눈과 귀는 오직 핸드폰 화면으로 고정되어있다.
‘일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이제 그만 다시 사회로 돌아가야겠다.’라고 생각을 한 후 아이의 어린 시절과 나의 현재를 두고 수도 없이 고민을 했다. 나를 위해 아이를 희생시키는 것은 아닐까. 아이의 돌아오지 않을 이 시절이 나로 인해 희생당하는 것은 아닌지 수도 없이 마음이 아팠다. 주변에 전업맘으로 있다 다시 일을 시작한 친구는 엄마가 일을 하려면 아이가 희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게 번 돈은 혼자 번 돈이 아니라 아이와 내가 함께 번 돈이라고 도 말했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고생해서 번 월급인 셈이다. 그러나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도 적응까지 잘 시키고도 취업을 하지 못했다. 재취업을 마음을 먹었을 때에는 당장이라도 준비만하면 일을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저 내가 망설일 뿐, 아이가 눈에 밟혀 마음을 먹지 못했을 뿐. 내가 용기를 낸다면 나 하나쯤 일 할 곳이야 널린 줄로만 알았다. 일자리가 나를 기다릴 것만 같았던 환상은 고작 취업준비 한 달 만에 산산조각 났을 뿐이었다.
오늘 나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면접을 보았던 곳에서 온 전화였다. 발신지를 확인하고 설레어하며 전화를 받았던 나의 두근대는 심장은 금세 민망해졌다. 불합격을 알리는 전화였다. 역시나 '거절' 당하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온전히 나를 거절당했다. 마음이 심란해 이른 저녁부터 캔맥주를 하나 따서 마셨다. 이번에는 경쟁도 치열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나는 그 경쟁을 뚫지 못했다.
처음에 서 너번 서류전형이나 면접에서 떨어질 때에는 내가 나이가 많아서 그런가, 내가 경력이 많아서 그런가, 내가 경력단절 기간이 길어서 그런가 라고 생각하곤 했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무슨 이유든 찾아내야 했기에 그런 것들에서 이유를 찾았고 또 좌절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저 내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마음 깊이 자리했다. 나의 다른 조건들이 아닌, 면접에서 나를 보았을 때 내가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인 것 같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그게 더 괴로웠다. 핑곗거리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아무 곳에도 기대지 않고 꼿꼿이 선 나 자신을 마주한다. 힘이 나지 않는다.
남편에게 말했다. "나 이제 어디서 일할 수 있어? 다시 일 못하면 어떻게 해?"
두렵다. 아이를 걱정하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저 내가 다시 사회로 돌아가지 못할까 봐, 나를 사용할 곳이 없을까 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시 하지 못할까 봐. 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