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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마루 Mar 20. 2017

중국에서 떠난 일본 힐링 여행 1

비행기 환승 소동 - 2016.11.14~18

   중국에 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가 사는 이 곳이 어디쯤인지조차 알지 못할 때, 어떻게든 이곳에서 살기 위해 중국어를 배우겠다고 학원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정확히 말하면 언니와 동생이지만... 사실 학원을 가면서도 '난 중국어만 배우면 된다, 여기 나오는 사람들과 나는 전혀 얽힐 필요도 이유도 없는 사람들이다'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수업 시작하기 바로 전에 강의실에 들어가서 수업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나오기를 반복했다. 중국, 이곳 왕징에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대기업 주재원 사모들이고 그들과 나는 사는 방식이나 격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또 학교 선생님의 부인으로서 아무래도 학부모들일 수도 있는 사람과 만나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학원 수업 중 한 주에 한 번 있는 실습 시간. 어쩌다 보니 같은 자리에 앉게 된 사람들이 생겼다. 그렇지 않아도 날카롭고 무서워 보이는 사람인데 이미 너희들과는 친해지지 않겠다고 각을 세우고 앉아 있었으니 얼마나 콧대 높아 보였을는지 짐작이 간다. 더군다나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온 사이에 모두 음식점으로 이동해버려 혼자 덩그러니 남아 황당함을 곱씹다 그냥 가버릴까 하는 생각을 무릅쓰고 찾아간 식당. 그러나 이미 끼리끼리 모여 앉아 있어 어쩔 수 없이 입구 쪽 테이블의 남아 있는 자리에 착석한 나로서는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서로 이름을 얘기하고 떨떠름하게 음식을 주문했고 먹었다. 그게 그들과의 첫인상이었다.

   실습 시간이 한 주, 두 주 늘어나면서 같이 앉는 횟수도 덩달아 늘어나게 되었고 어느덧 우리는 서로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서로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생의 표현으로 우리는 좋아하는 것은 다르지만 싫어하는 것이 같단다. 그래서 친할 수 있단다. 그 말이 정답인 것 같다. 무엇보다 우리를 끈끈하게 엮어 준 것은 술이다.^^ 나, 나보다 더 술을 잘 마시는 여자 사람을 여기 와서 만났다(내 일가인 여동생을 제외하고...). 학원 스케줄과는 상관없이 처음 우리끼리 모여서 술을 마신 날, 암 것도 모르고 새벽 12시까지 달렸었다. 그리고 왕징 거리에 나와 보니, 이런... 사람도 없거니와 버스도 없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여기 버스는 10시 정도면 다 끊긴다. 놀랍지 않은가? 베이징이란 대도시의 버스가 10시 전후면 모두 끊긴다는 게. 어쨌든 그땐 정말 뭣도 모르고 버스도 끊기고 인적도 끊긴 그 거리를 언니랑 둘이 헤헤거리며 걸어왔다.

   그렇게 으쌰 으쌰 지내던 이 여자 셋이서 용감하게 일본 여행을 하겠다고 나섰다. 동생이 일본어를 잘 하고 일본을 자주 다녀왔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떠맡았고 우리는 룰루랄라 따라나섰다. 그렇게 시작된 일본 온천 여행이었다. 주머니 사정이 열악한 나 때문에 한 번 엎어질 뻔하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언니의 비자 갱신 날짜 때문에 또 한 번 엎어질 뻔하고, 일주일 전 갑자기 걸려온 비행기 결항 전화에 동생이 기함을 하였지만 우리는 결국 떠났다.


   나를 배려하여 최대한 싸게 비행기표를 끊은 탓에 베이징에서 칭다오를 경유하여 일본 후쿠오카에 도착하는 비행기 노선이었다. 새벽부터 형부가 차로 우리를 공항에 데려다주었다. T2에서 국제선을 타보기는 또 처음이라 입구를 못 찾아 헤매다 어렵사리 찾아들어간 검표구에서 중국 직원이 우리를 보더니 여기가 아니라고 따라오란다. 그래서 졸졸 쫓아갔더니 외국인들만 몇 명 있는 검표대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런가 보다 하고 검표를 마치고 들어가니 웬걸 달랑 의자 몇 개와 정수기 1대가 전부인 탑승게이트가 나오는 것이다. 갈 수 있는 곳이라곤 달려 있는 화장실 뿐이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밖에서 커피라도 마시고 들어오는 것을... 여기서 꼼짝없이 1시간 이상을 대기하고 있어야 하다니....


   다행히 시간이 되자 탑승 확인을 시작했고 표를 확인받고 들어가니 버스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움직여서(정말 비행기 활주로를 이리 넘고 저리 지나고 돌아가고...)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는 활주로 한 끝에 도착했다. 아마 칭다오 가는 국내선 승객을 먼저 다 태우고 우리처럼 환승하는 승객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비행기 표 싸게 끊었는데 이 정도 수고야 싶어 즐겁게 비행기에 올랐다. 제시간에 비행기가 떴다. 베이징 공항에서 이런 일(제시간에 비행기가 뜨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라 셋이 모두 즐거워라 했다. 중간중간 안내 방송이 나오고 2시간 여를 넘게 날아 비행기가 착륙했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이상한 일이 시작됐다. 아무도 내릴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물론 비행기 문도 안 열리고. 사실 우리는 환승을 해야 하는 탓에 맘이 불안했다. 비행기 편명이 바뀌지 않는 걸 보면 이 비행기가 그대로 일본으로 가는 것 같은데 1시간 정도 있는 환승 여유 시간에 비행기에서 내려서 다시 들어와야 하는지, 그냥 있어도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짧은 중국어로 승무원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냥 여기 있으면 된단다. 그래서 그냥 앉아있긴 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 비행기 승객의 대부분이 칭다오에서 내리는 사람들일 텐데 이들도 꼼짝을 안 하는 거다. 이게 무슨 일이지? 셋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이 사람들이 다 일본에 가는 승객들인가? 아님 공항에 문제가 있어서 비행기에서 대기하고 있는 건가? 가장 웃겼던 의견은 비행기가 너무 작아 중간에 급유를 하기 위해 멈춘 것 아닌가 하는 동생의 생각이었다. 셋이서 그렇게 상상의 나래를 펴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국어 소리에 언니가 용기 있게 일어나 물어봤다.


일본여행의 또 하나의 목적인 맥주. 이번엔 일본맥주를 종류별로 다 먹어볼테다....^^


   "저희가 중국 온 지 별로 안 돼서 잘 모르는데요,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이죠?" 그러자 우리를 불쌍하고도 안타깝게 쳐다보던 그 한국인 아저씨가 대답했다. "칭다오에 안개가 심해 착륙할 수가 없어서 다시 돌아왔어요. 여기 베이징 공항이에요." 헐~~~

   이제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한 시간 정도 날아가던 비행기가 안개 때문에 다시 한 시간 정도 날아서 베이징 공항으로 선회한 것이다. 출발지에 되돌아왔으니 아무도 내릴 생각을 안 했던 것이고. 아이고 이런 무식해서 용감한 여자들이여! 그런 것도 모르고 칭다오도 베이징처럼 대도시라 공기가 별로 좋지 않네, 어쩌네 하고 떠들고 있었으니...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 중국인 천지였으니 망정이지 알아듣는 사람들이었으면 얼마나 바보 같아 보였을까.

   어쨌든 비행기는 다시 출발했고 거들떠도 안 보던 기내식(빵 쪼가리뿐인)을 다들 아구아구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정말 진짜 칭다오 공항에 도착을 했고 우리를 불쌍히 여긴 한국인 아저씨가 친절하게도 다시 한번 승무원에게 여기 비행기 안에서 기다리면 되냐고 확인해줬다. 저 여자들이 제대로 일본에 갈 수 있을 것인지 무지 걱정되었었나 보다.^^


   아까와는 다르게 부산히 움직이면서 비행기를 빠져나가는 승객들 틈에 우리는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자 승무원들이 우리를 쳐다보더니 너희도 얼른 내리란다.

   "뭐라고? 여기서 기다리라며?"

   아니란다. 얼른 내리란다. 황당함에 빠질 틈도 없이 짐을 부랴부랴 챙겨서 내렸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면서 무작정 사람들을 따라 들어갔더니 얼마 안 가 승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후쿠오카 어쩌구하면서 소리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우리와 함께 버스를 타고 활주로를 활보하여 비행기를 탄 환승객들이 모여 서 있었고. 그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다시 수속을 밟고(이제야 출국 수속인 듯. 어쩐지 베이징 공항에서의 수속이 너무 쉽게 끝났다 싶었다) 칭다오 공항 탑승구를 찾아갔더니 비행기 연착이라고 2시간 정도 뒤에 탑승을 한단다.

  커피가 무척 먹고 싶었던 우리는 칭다오 공항의 엄청난 커피 가격에 놀라(아메리카노 한 잔에 78원이란다. 14000원!) 가장 싸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커피 대신 음식을 시켜 먹기로 했다. 커피에 놀란 마음에 음식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고 가장 가격이 싸 보이는 음식을 시켜서 그래도 맛나게 먹었다. 여유롭게 쉬다가 탑승구로 갔더니 뭐하다 이제 왔냔다. 아직 1시간 반 정도밖에 안 지났는데... 어찌 됐든 그렇게 우리 뒤에 일본인 부부 2명을 마지막으로 일본 후쿠오카행 비행기(사실 아까 그 비행기, 똑같은 좌석)에 몸을 실었다. 그래서 결국 집 떠난 지 장장 12시간 만에 일본에 도착했다. 이건 완전히 유럽 가는 비행기 시간이랑 맞먹는다.^^ 그래도 우리는 일본에 도착했고 이제부터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여행을 할 것이다. 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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