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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Y Dec 31. 2023

시어머니는 나의 임신 소식을 싫어하셨다.

그럼에도 넷이나 낳았다.

남편과의 모든 순간이 싫지만은 않았으리라...

그러니 넷이나 낳았을 거다.

물론 넷째의 임신 사실은 내 스스로도 당황하며 고민하게 만들긴 했지만 결론은 넷을 낳아 후회한 적이

없다. 오히려 넷을 낳길 잘했다 싶다.


그런데 순간순간 치밀어 오르는 화는 어쩔 수 없다.

임신 사실을 알릴 때마다 나에게 퍼부었던 시어머니의 그 폭언들... 말투 표정이 너무 생생하다.


첫째 때는 평온했다. 물론 임신 중에 단 한 번도 무언가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본 적도 먹고 있는 것조차 뭐라 하시는 분이셨지만 그럼에도 나머지 셋과 비교하면 나의 임신 소식에 제일 조용한 반응이었다.


첫째가 돌이 다 되어갈 때 둘째를 임신했다.

둘째의 임신 소식을 전하니 시어머니의 첫마디는

"벌써? 또?"라고 하신다.

당연히 축하한다는 말은 한마디도 못 들었다.

애들을 그 형편에 어떻게 키울 건지 걱정만 늘어놓으신다.


그리고 몇 년 뒤 셋째를 임신하고 시댁에 이 소식을 알려야 하는데 둘째 때의 반응을 기억하기에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이때 남편은 본인 엄마의 싫은 소리를 예상했는지 나에게 임신소식 얘기를 미룬다.

못나고 또 못나보였다.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겨우 셋째의 임신 소식을 전했는데 불같이 화를 내시며 돈도 없는 것들이 애만 낳아서 어떻게 할 거냐며 나를 보고 "그럼 야도 돈 벌러 가야지?"라고 하신다.

평생 잊히지 않는 말이다.

임신 소식을 전하는 며느리에게 돈을 벌러 나가라니...

남편은 이 상황에서 아무런 의지도 방패막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째

모유수유 중에 생리도 하고 있지 않아서 정말 넷째가

생길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무지했다.

셋째 출산 5개월여 만에 넷째를 임신했다.

시어머니의 폭언을 들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임신 소식을 전하면 어떤 반응일지 안 봐도 눈에 선했고

언제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눈치만 보고 있다가 배가 더 나오기 전에 말해야겠기에 임신 4개월쯤 되었을 때 말씀드렸다. 말씀드리기 전에 남편은 또 본인 엄마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자꾸 미루고 내 뒤에 숨으려고 한다.

거기서 정말 실망을 했는데 말씀드리고 나서는 더 큰 실망을 했다.

넷째 때는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돈 얘기를 하셨을 거다.

정확하게 기억나는 건 나를 잡아먹을 듯 한 시어머니의 눈빛과 얼굴이 벌게져 한껏 화가 난 얼굴로 온갖 폭언을 쉼 없이 쏟아내셨던 장면들뿐...

그때 그런 얘기를 듣고 있는 나의 편이 되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편조차 본인 엄마가 무서운지 제대로 저지하지도 싫은 소리를 하지도 못하고 세상 무능한 남편으로 옆에 있었다. 내가 임신한 몸으로 온갖 폭언을 듣고 있는 동안...


그럼 여기서 시어머니는 무슨 자격으로 무엇을 해주었기에 임신할 때마다 이렇게 폭언을 했을까?


아이를 키워주셨는가? 아니 봐주기라도 하셨는가?

아이넷 낳고 키우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맡겨야 하는 상황에서만 아이를 봐주셨는데 15년 동안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아이 맡기고 볼일 보고 오면 너희들끼리 뭐 맛있는 거 먹고 왔냐고 하시는 분이셨다.


그럼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았을까?

결혼할 때 남편이 가지고 있던 900만 원 1000만 원? 남짓한 돈으로 분가할 때도 보태주신 게 없다.

그 이후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며 전세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집을 매매할 때 2천만 원을 빌려주셨는데 그중에 200만 원만 갚고 나머지는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하셔서

1800만 원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결혼하며 축의금이 시어머니 주머니로 다 들어갔기에 구경도 못하고 갚느라 힘들었어서 그 축의금을 이제야 받는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 낳고 산후조리하라며 고생했다고 받는 금일봉 같은 건 구경도 못했다.

아이들 백일, 돌, 학교 입학, 명절, 생일...

이런 때에 뭔가를 받아 본 적이 열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그것도 큰 금액은 아니다.

크리스마스, 생일, 명절, 입학, 평소에도 한 번씩 아이들 때마다 용돈 챙기고 선물 챙겨주는 친정 엄마랑은 너무 반대였는데 그럼에도 왜 그렇게 돈얘기만 하셨는지...


첫째를 낳고 친정엄마는 일을 하셨기에 산후조리원에 들어가야겠다 마음먹고 조리는 산후조리원에 들어갈 거라 말씀드린 적이 있다.

그런데 본인 아들이 힘들게 벌어 온 돈으로 비싼 산후조리원에 들어가는 게 싫으셨다. 그래서 그 비싼 산후조리원에 왜 들어가려고 하냐며 시댁에 와서 조리하라고 하신다. 그렇게 시댁에 들어와 지옥 같은 산후조리를 받으며 산후우울증인줄도 모른 체 마음에 병만 생겼다. 이때 남편은 10분 거리 신혼집에서 편하게 있겠다며 나와 아이만 두고 가버렸다. 매일밤 시어머니와 같은 방에서 잠을 잤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아이넷 낳고 키우는 동안 아이를 셀 수 없이 봐주신 적도 경제적으로 보태주신 적도 없고 내가 아이를 계속 봐달라고 아이 키우느라 경제적으로 힘드니 돈을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본인 아들 혼자 벌어 나머지 식구들 먹여 살리는 게 못마땅하셨다.

 

그리고 한 번씩 이런 얘기를 하신 적이 있다.

자기는 하나만 낳아서 키우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의 동생이 생겼고 지우려고 엄청 고민하셨다는 이야기


임신했을 때 먹고 싶은 거 제때 못 먹었던 것도 평생 기억에 남는다는데 나는 거기에 시어머니의 폭언까지..

평생을 잊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한 번씩 치밀어 오르는 화는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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