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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ta Nov 09. 2021

오늘의 죽음을 내일로 미루자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어느 날,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혼자 체육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교실에 숨어 있었다.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4층 교실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충동이 바로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않았고, 한 시간은 그렇게 조용히 흘렀다. 잊혀질 수도 있었던 그 순간이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한 이유는 한 친구의 말 때문이다. 그날 하교길에 나는 친구에게 ‘4층에서 떨어져서 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정말 죽으려고 했다면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뛰어내렸겠지.


그때 그 친구의 무덤덤한 표정과 말투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나는 머쓱함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 후로 내 머릿속은 ‘나는 왜 죽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진짜 죽으려고는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으로 가득했다.


20대 초반까지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내가 유약하고 비겁해서' 였다. 죽음 유예. 나는 내가 그때 죽지 못한 걸 그렇게 불렀다. 언젠가 정말로 용기가 생긴다면 그땐 얼마든지 죽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단지 지금은 그럴 용기가 없을 뿐이라고, 그리고 그 용기가 언제 생겨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이다.


용기만 생기면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부끄럽고 보기 싫은 삶의 조각들을 숨겨놓기 위해 만든 서랍 같다. 서랍이 가득 차서 더 이상 닫히지 않을때, 닫히지 않는 틈 사이로 부끄러운 것들이 적나라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있을때. 그때 비로소 그 용기라는게 생기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나는 늘 그 서랍의 수납 한계를 의식하며 살아왔다. 마치 용기가 생기는 것이 두려운 것처럼.

 

20대의 나는 배낭을 메고 이국적인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며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대로 흘러가는 삶을 동경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럴듯한 대학 졸업장을 이력서에 새기고 번듯한 직장에 발도장을 남기며 세상이 내 이름을 알아주기를 원했다.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혼자 남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고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의 어둡고 축축한 면을 환하게 비추고 온기로 말려줄 누군가를 갈망했다.


세상과 타자에게 무해한 존재이길 원했지만 나의 의지는 언제나 나약한 것이었고 나는 늘 무언가를 파괴하고 더럽혔다.


걷지 못한 길은 언제나 미련이었고, 걷고 있는 길은 언제나 밉게만 보였다.

하지만 죽어 버릴 이유의 이면에는 언제나 죽지 않을 이유들이 있었다.


여행에 미쳐버리지는 못했지만 여행을 통해서 늘 도망가고 싶었던 내가 사실 원했던 것은 온전히 정착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내게 태양과 같은 온기를 주리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도 모두 나처럼 똑같이 어둡고 축축한 구석이 있었고, 나의 어둠을 비출 수 있는 빛은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내가 남긴 흠집을 똑바로 보고 싶지 않았던 나약하고 비겁한 나의 부끄러움을 참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했더니 그것 나름대로의 희망이 담긴 책임감으로 치환되었다.


죽어버리지 못한 비겁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기로 결심한 용기와 같다. 겁이 많은 스스로를 책망할지, 용기 있는 스스로를 응원할지는 나에게 달려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죽음도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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