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도전
알함라 골프클럽 멤버가 된 이후, 매주 금요일은 거의 골프장으로 향했다. 출장이나 업무가 발목을 잡는 날을 빼고는 거의 빠지지 않았다.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재미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함께 다니는 그 고수 주재원 — 알고 보니 동갑이었다. 몇 번 라운딩을 함께 하다 보니 금세 말이 편해졌고, 그러다 보니 매주 한 시간 넘는 운전도 그냥 즐거운 드라이브가 되어버렸다. 고수 입장에서는 하수와 매주 쳐야 하는 게 영 내키지 않을 법도 했지만, 그래도 같이 라운딩할 동료가 있으니 그나마 위안이 되었으리라 .
그 친구와 라운딩 하면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제일 큰 도움은 내 스윙을 직접 보면서 잘못된 점을 바로 얘기해 주는 상급자가 옆에 있다는 점이다. 레슨 영상에서 보고 나는 제대로 하고 있구나 생각하지만 막상 필드에서는 다르게 나오는 버릇이나 잘못된 스윙 자세를 친구가 바로잡아 주었다. 그리고 그 친구 나름의 연습방법이나 코스 매니지먼트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누면서 실전 골프를 통해 빼르게 실력이.늘어났다.
주중엔 집 근처 연습장을 꾸준히 다녔고, 틈틈이 원포인트 레슨까지 받다 보니 3개월쯤 지날 무렵부터 스코어가 90대 중후반 언저리에 안착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다툼이 생겼다.
레슨을 해주면서 뱉은 한마디가 마음에 걸렸다. 내용 자체보다 말투가 문제였다. 평소라면 웃어넘겼겠지만, 그때는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레슨 영상을 통해 배운 것을 직접 연습해서 적용해보고 있었지만, 마음처럼 잘되지 않고 있어, 예민하기도 했지만, 원포인트 내용이 내 생각과도 달랐다. 자존심이 상한 것인지, 소신이 생긴 것인지 —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후 몇 주는 매주 같은 카트를 타면서도 묘하게 냉랭한 공기가 흘렀다. 골프는 계속 쳤다. 말수가 줄었을 뿐.
그리고 그 냉랭함이 풀릴 무렵, 나는 그만 무모한 선언을 해버리고 말았다.
"야, 너 귀임하기 전에 내가 Gross로 이길 거야."
그 친구의 귀임까지는 1년 반 남짓 남아 있었다. 상대는 핸디 13, 잘 치는 날이면 10 이하도 거뜬히 치는 수준이었다. 나는 이제 막 90대 중반에 발을 들인 신출내기였다. 어떻게 봐도 무모한 선언이었다.
그래도 목표를 입 밖에 내야 의욕이 생기는 법이다.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이제 증명하는 일만 남았다. 마침 그 즈음 아이언도 바꿨다. 그라파이트 샤프트는 좌우 방향이 너무 들쑥날쑥해서 도무지 조절이 안 됐다. 한국에서 경량 스틸 샤프트 아이언을 새로 들였더니 — 거리도, 방향성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오히려 스윙이 더 편해졌고, 자연스럽게 스코어도 따라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6개월여가 지나 해가 바뀔 무렵, 90개를 깼다.
보기 플레이어. 그 문턱을 넘어선 것이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무모한 선언이 허풍이 아니었음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골프는 그렇게 만만한 운동이 아니었다.
90을 깨고 나면 금세 80대 중반으로 내려갈 것 같았다. 그런데 웬걸, 스코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다시 꺼낸 것이 리드베터 코치의 레슨 영상이었다. 처음 볼 때는 흘려들었던 내용들이 이번엔 다르게 들어왔다. 문제점도, 해결책도 이미 거기 다 있었는데 — 초보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골프에도 그 말이 그대로 통했다. 퇴근길마다 연습장에 들러 하나씩 고쳐나갔다. 샷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문제는, 연습장과 실전 사이의 그 넓고도 깊은 간극이었다. 그건 언제나 그랬듯이, 또 다른 숙제로 남아 있었다.
이때 만난 영화가 있었다.
"The greatest game ever played"
1913년 US Open 우승자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디즈니 영화였다. 골프를 다룬 영화는 흔치 않았다. 골프에 한창 관심을 갖고 있던 시기여서 골프 관련된 자료는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에 영화 사이트에서 발견한 영화였다.
지금까지도 매년 한 두번은 이 영화를 보고 있다. 처음 봤을때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실전에서 연습장에서와 같이 편안하게 샷을 날릴 수 있는 팁이었다. 그리고 해마다 영화를 보면서 그때마다 다른 영감을 주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