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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빛 Feb 13. 2021

09. 오랜만에 마주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가


#9






나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 걸까?

한동안 브런치를 쓰며 내 생각을 정리하고 그간의 삶을 돌아봤었는데, 어느 순간 뜸해졌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를 잃었고 몸도 많이 상한 거겠지.






응급실 약국의 약은 적어도 1시간은 기다려야 나온다는 사실

어제는 응급실을 다녀왔다.

생에 두 번째 응급실행. 그때도 지금도 병원이 주는 중압감은 여전히 견디기 힘들고 무섭다.

그동안 얼마나 몸 관리를 안 했으면 이지경이 되었나 싶고 바쁜 와중에 아프니 더 답답했다.

집에서 꾸준한 홈트를 하며 체력을 많이 다져왔다고 생각했는데.. 거만한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챙기고 돌보느라 내가 으스러지는 건 알지도 못 한 채, 또다시 실수를 반복하고 말았다.

나부터 돌봐야겠다고 생각한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몇 개월 만에 나는 다시 나를 돌보지 않고 있었다.


책임감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책임감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너무 무겁게 여겨서일까? 더 잘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은 여전하다.

누구도 나에게 돌팔매질하거나 더 하라고 채찍질하지 않았는데, 내가 나를 돌팔매질하고 채찍질하고 있었다.


그게 터져버렸지 뭐.

응급실의 중압감 속에서 코로나 검사를 하며 더 무서웠고, 주변 사람들은 어떡하지?라는 무서운 생각들이 들어 더 힘들었던 시간.


다행히 코로나 검사는 음성이었고, 나는 제자리로 빠르게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홀 영업이 중단된 매장 전경

코로나가 덮친 지금 이 시대는 바리스타들에게 많이 어려운 건 사실이다.

커피 농장의 수확이 원활하지 않아 커피 재배가 어려워 생두를 구입하기 어렵기도 하고, 고객과의 대면이 어려워진 만큼 다른 루트로 매출을 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바쁘다.


내가 속한 매장도 마찬가지.

여러 매장이 배달을 시작하고, 화상 채팅을 통한 액티비티를 고민하고, 쇼핑 라이브를 하기도 한다.

그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다는 거겠지.


평소 사람으로 스트레스받는 직업인데, 막상 사람이 없으니 또 힘든 게 바리스타라는 직업이다.

홀 영업이 중단된 두 달 정도는 더 심각했다. 텅 빈 홀을 보고 있자니 코로나 블루가 왜 오는지 단번에 알겠더라.

막상 홀 영업을 시작하면 스트레스는 또 높아진다.

마스크 착용을 권유하고, 매장 제한 시간을 안내하며 하루를 보낸다. 돌아서면 마스크를 벗고 있는 손님들을 보며 한숨을 쉬면서도 우리 모두의 건강을 위해 우리는 또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열도 쟀고, 체크인도 했으니 무엇이 문제냐 묻는 이들 앞에서 말문이 막히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들의 안일한 태도에도 우리는 해야만 하고, 그런 과정들이 있었기에 매장 내 확진자가 없을 수 있었던 거 아니겠는가.


조금만 방심해도 나와 내 가족, 내 동료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외친다. " 마스크 착용 부탁드려요. "







코로나 이전, 준비하던 오마카세 메뉴 중 하나

오마카세 커피 바도 잠정 중단되었다.

내가 바리스타를 하면서 고객과 소통하고 나의 커피는 이런 것이다. 하는 걸 보여주는 매개체였는데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시작할 수도 없게 되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든다. 지금 내가 해나가고 있는 게 과연 미래지향적인 서비스일까?

나의 스페셜티라고 생각했던 분야가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과거가 되고 말았다. 바이러스 앞에서 사람은 한없이 작을 뿐이구나 싶다.


메뉴를 구상하고 만들어내기까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나는 그 스트레스가 필요했었나 보다.

이 스트레스가 없어지니 내가 바리스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될 만큼 무기력해지는 기분.

브런치를 쓸 내용도 없어졌다고 할 만큼 나는 무기력해졌고 가라앉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시 일어서야 하는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팀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들과 함께 숨 쉬고 뛰어다니는 이 공간과 시간이 좋아서 포기할 수 없는 거겠지, 아마도 그런 거겠지.

함께, 그리고 팀이라는 힘은 나를 다시 일으키기 충분한 거겠지.


휘몰아친 듯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 변화에 익숙해지기엔 내게 주어진 시간들이 너무 짧고, 변화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너무.

이 변화 속에서 내가 가져가고 싶은 건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그래야만 나는 앞으로도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고, 지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그래, 해야만 한다. 선택과 집중.






생애 첫 라떼아트 도전기

현 상황에 대한 답답함과 나의 무기력함에 여러 고민을 하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바리스타로써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더 나은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라떼아트에 도전하게 되었다.


우유를 적정 온도로 데우면서 충분한 우유 거품을 만들고 부드럽고 광택 나는 촉감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림은 내게 뒷전이었다.

결이 들어간 하트, 또는 동그라미 등. 심플 이즈 더 베스트라는 명목 하에 계속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다르다.

더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어떠한 부분도 게을리할 수 없다.

언제 갑자기 기계가 나의 일자리를 뺏을지 모르고, 언제 갑자기 이 직업이 사라질지 모른다.

그러니 나는 더 잘해야 하고 잘하기 위해 수없이 노력해야만 한다.


팀원들의 텐션이 떨어지지 않게 나는 더 해야 하고, 더 할 수 있게 계속 분위기를 만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 경쟁력.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가진 내가 가져야 할 경쟁력이 무엇일지 궁극적인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라떼아트는 해보지도 않았지만 도전한다.

우선 해보고 보자. 뭐든. 죽이 되든 밥이 되는 해보는 거다. 그래.



그래서 계속된다. 앞으로도.

오마카세 커피 바를 준비하는 나의 모습과, 바리스타로 성장하기 위해 애쓰는 나의 모습까지도.

게을리하고 싶지 않은 나의 탈출구. 글쓰기.




자, 다시 시작해보자.

뭐가 됐든,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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