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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빛 Sep 03. 2020

02. 사람 일은 모른다더니

바리스타가 되기까지


#2



 “카페모카 아이스, 크림 많이 주세요!”



크림이 한껏 올라간 커피는 세상의 진리

20살의 나는 어딜 가든 휘핑크림 가득한 커피를 찾았고 이유는 단순했다.

친구들 다 마시니까 나도 마셔야 할 것 같은데, 아메리카노는 써서 싫은걸.


그러다 커피를 좋아하는 친구를 만났고 함께 살게 되면서 나의 커피 취향은 180도 바뀌게 되었다.

집에서도 커피를 내려마시는 친구 덕에 원두의 생산지, 가공 방식, 로스팅을 한 정도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입에도 안 대던 아메리카노도 마시게 되었다.


이때까지도 나는 커피를 추출하는 바리스타가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커피는 그저 기호식품일 뿐이었으니.



살아온 지역 특성상 친구들은 조선업이나 간호사를 진로로 정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그저 멀리 떠나고 싶었고 지금까지 겪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갈망이 컸다.

남들이 다 하니까 하기 싫은 청개구리 심보랄까


그렇게 진로를 고민하던 차에 눈에 들어온 파티플래너

파티를 기획하고 연출하고 진행하기까지. 내가 찾던 꿈의 직업이라 생각했고 무작정 상경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원하던 게 이런 직업일까?라는 의문이 커졌고 자신감이 줄었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월세를 내며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나에게 열정 페이는 가혹한 현실이자 높은 벽이었다.


학교를 졸업할 무렵, 동기들은 하나 둘 일을 찾아 떠났고 나 역시 일을 해야만 했다.

20살의 패기는 어디 가고.. 현실은 돈을 좇는 취준생이었고 즐거움과 돈을 좇아 밤에 하는 일들을 하게 되었다.

플레어 바에서 바텐더를 하고, DJ 수습생을 하며 밤낮이 바뀐 생활을 시작했고,

밀려오는 졸음을 참아내고자 진한 아메리카노를 연거푸 마시는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20대 초반의 나에게 커피는,

허황된 것들을 쫒는 어리석음과 혹독한 현실을 함께 한 친구였다.





누군가에겐 카페인 충족, 누군가에겐 크나큰 위로

서울에서의 생활이 녹록지 않았던 나는 정리하고 본가로 돌아갔다.

아빠는 사는 게 다 쉽지 않다고 원래 다 그런 거라며 나를 위로했고, 새로운 시작을 응원했다.


해 뜨면 일하고 해지면 집에 가서 쉬는 생활을 하고 싶었고,

바에 앉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즐거웠던 나를 생각하니 떠오른 직업은 바리스타였다.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봤지만, 기계처럼 움직이는 나를 보며 진정성을 갖추고 싶어 졌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고 그 길로 공부를 시작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2년간 커피를 공부하면서 여전히 더 넓은 곳으로 나가고 싶었다

제2의 도시 부산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취업을 해야 할 시기가 왔을 때에는 다시 서울을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굳게 다졌고,

20살 패기 넘치던 그때의 나처럼 겁 없이 서울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렇게 8년째 커피를 공부하고 커피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다.

2년은 공부를 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했고, 그 후 6년간 서울의 한 커피회사에 몸을 담았다. 물론 지금도.

어릴 때부터 넓은 곳에서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싶다던 나의 바람은 여전하고 앞으로도 여전할 것이다.




20대 중반의 나에게 커피는,

그간의 내 모습을 함께 돌아보고 위로해주는 친구였다.





한 잔에 담긴 향과 맛의 다양함은 분명 존재한다

여전히 커피는 누군가에겐 쓰고 맛없는 식품이다.

아마 나처럼 카페모카를 마시며 '나도 커피 마셔' 라며 으쓱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

바리스타를 아르바이트생이라고 지칭하며, 전문적인 직업이 아닌 돈벌이 수단 중 하나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수많은 바리스타들이 커피 한 잔을 추출하기 위해 깊게 공부하고 트레이닝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론 커피를 공부하지 않고 막 다루는 바리스타들도 있다는 현실은 부정할 수 없다

내가 마시는 커피를 내려주는 바리스타가 커피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아마 커피의 맛과 향까지 하나하나 다르게 와 닿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좋아질 수도 혹 반대일 수도..



나도 내가 커피를 사랑하게 될 줄 몰랐고, 바리스타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

사람 일은 정말 알 수 없다. 어느 순간 나의 동료가 되어있을지도?




30대가 된 지금 나에게 커피는,

살아가는 시간들을 한데 엮어주는 끈이자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 함께 할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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