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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소풍 이정희 Nov 03. 2024

가을7, 세월아 네월아 산티아고길 7.

헤런디아인에서 수비리까지

테라스에서 본 갈림길

 이른 아침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순례꾼들이 멈추어 길을 찾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이제 보니 내가 있는 호텔이 마을 입구이자 순례길 갈림길이었다.


조심스러운 사람들은 길이 여러 갈래 있으면 찬찬히 살펴 이정표를 찾아낸다. 그러나 이야기나 핸드폰을 하거나 오던 길이 익숙한 사람들은 계속 직진을 한다.

지켜보다 소리를 질러 그 길은 수비리 가는 길이 아니고 왼쪽 길로 가라고 소리 질렀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아니면 익숙한 대로 말과 행동을 하여 길을 잃거나 실수를 한 적이 많았다. 뒤늦게 알았을 때는 이미 늦어 후회를 하거나 만회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몇 배 더 필요했다.


 나 혼자, 집안에서 못 보던 것들을 길을 걸으며 많이 느끼며 생각하고 수정하게 되었다.

오늘 잔 시골 호텔

 오늘은 11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조금만 걸을 예정이었는데 썰렁한 호텔 분위기에 일찍 나서기로 했다.


 아침 9시에 출발하여 쉬엄쉬엄 3시간 11km 걷고 수비리에서 멈추었다.

 수비리까지 제법 급경사 돌길이 많았다. 급경사 길이 다 끝나자 작은 마을이 보였다. 입구에 안내판이 있고 가운데가 아치형으로 뚫린 중세풍 다리와 마주하게 된다.

수비리 라비아 다리

아주 오래되고 단단한 아치형 돌다리 아래로 맑은 물줄기가 흐르고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다리 너머로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줄지어 서있고 테라스마다 꽃 화분이 아름답게 놓인 아름다운 마을이 수비리이다.


중세풍 다리는 이름도 특이하다. 우리말로 하면 '광견병'인 라비아 다리(Ruente de la Rabia)이다.

라비아 다리를 건너기만 하면 광견병에 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병에 걸린 동물을 데리고 가운데 아치 주위를 세 번 돌면 병이 낫는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어제 12km, 오늘 11km 너무 짧은 거리를 걸었나 생각했다.


'적응하는 며칠 동안은 무리하면 안 된다. 나는 혼자다.

천천히 걷기로 작정한 길이 아닌가!

내 몸은 내가 챙겨야 한다.

장장 앞으로 50일이 남아 있다.'


12시가 조금 넘었는데 순례꾼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걷고 뛰어다닌다. 어제 헤어진 젊은 여의사를 만났다.


"무릎이 안 좋아 일행들과 헤어져 연박하려고요. 저 사람들은 숙박하는 곳을 찾아다니는 거예요"

알베르게 앞 버스킹

 카페 야외 의자에 한국 사람 같아 합석했다. 숙소 예약을 안 했는데 공립 알베르게 외에는 모두 만실이란다. 그래서 배낭을 문 앞에 줄 세워 놓고 4시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내가 예약한 사립 알베르게도 만실이고 4시에 문을 연다고 공지를 붙여 놓고 문이 닫혀있다.


'아, 이래서 캄캄한 새벽 5시 출발하여 12시 전에 종점 마을 공립알베르게에 도착하여야 한다는구나. '


 한국에서 불안하여 일주일 숙소는 미리 예약을 하였지만 다음이 걱정이 되었다. 숙소 걱정에 걷기를 즐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공립 알베르게는 돈도 아끼고 좋은 경험도 할 수 있지만 미리 예악이 안되니 매일 걷기를 서둘러야 한다.


 사립 알베르게는 미리 예약 가능하니까 불안하지 않다. 비싸고 지금까지처럼 하루에 얼마큼 걷는다는 계획을 해야 한다. 그럼 감성여행이 아니라 예전 계획적인 습관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아 생각이 많아졌다.


 며칠 안되었지만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누구든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부엔 카미노"

"올래"


 길에 혼자 쉬고 있으면 지나치지 않고 말을 건다.


"너 괜찮니? 도와줄 일이 있니?"

순례길에 숨진 일본인 묘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죽은 일본 사람의 묘지도 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64세인데 남일 같지 않았다.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진흙길

 어제까지 비가 와서인지 엉망인 길이 많다. 그럴 때면 누군가 진흙길 옆에 손바닥만 한 돌로 징검다리를 놓았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대단하다.


'나도 저런 적이 있었을까?'


누구나 각자의 위치에서 비슷한 일들을 했을 것이다.


 주로 혼자 걷는 사람들이 많데 우리나라는 젊은이들이, 외국인들은 노인들이 많다.


 인상이 좋은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곤 한다. 몇 번이고 다양하게 찍어주는 친절한 사람에게는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나이가 몇 살인지 묻곤 한다. 세상에 나라가 참 많고 70세가 넘은 사람들도 많아 놀라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 중 나처럼 나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도움이 필요한 노여성

  미국에서 온 노여성은 샌들을 신고 걷는 것이 힘들어 오랫동안 쉬고 있는 것 같았다.


 순례길에서 배운 대로 괜찮은지, 도와줄 일이 있는지 묻고 싶었다. 막상 도움을 청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옆에서 같이 쉬었다.


그리고 바위 내리막길은 나처럼 걸으라며 스키 신고 걷는 것처럼 옆으로 걷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정말 고마워. 어느 나라에서 왔니? 너도 한국인이니?"


내가 알아듣는 영어는 그 정도이지만 기분이 좋았다. 한국 사람이 좋은 인상으로 남기를 바랐다.


수비리 카페는 계속되는 순례자들로 가득했다. 사람들이 많은 카페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빵과 커피가 3.6유로인데 참 맛있다.

 다시 마을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떤 가게도 없이 카페 두 곳과 알베르게와 호스텔만 있는 조용하고 작은 시골 마을이다.

사립 알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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