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는 봤는가, 해봤는가? 머리뽀뽀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어느 날, 유인이가 물었다.
"크리스마스에 뭐 해?"
나는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가고, 학원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오는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고 있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본 적도 없었다.
그런 내게 유인이는 말했다.
"우리 집이 비는데, 놀러 올래?"
크리스마스에 가족들이 자리를 비운다는 것이었다.
친구네 집에 단독으로 초대받은 것도 처음이었는데,
하필 그날이 크리스마스라니. 유인이는 어떤 마음으로 나를 부른 걸까.
유인이의 마음이 궁금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나는 매일 밤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무슨 말을 할지,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당시 나는 자기 전에 그날 있었던 일을 복기하고,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여러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곤 했다.
인간의 기억은 유한하니까.
기억하고 싶은 내용은 매일 자기 전에 누적해서 머릿속에 장면을 그리며 복습해서, 그 디테일들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부모님께 친구 집에 놀러 간다고 말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어쨌든 잘 설득하고 유인이네 집으로 향했다.
벨을 눌렀을 때, 유인이는 현관까지 마중 나왔다.
집 내부를 간단히 소개해주고, 유인이는 과자와 음료수를 주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바닥에 앉아 뻘쭘하게 있었다.
무언가를 하자고 내가 먼저 말해야 하나...
아니면 유인이가 하고 싶은 게 따로 있는 걸까...
내가 오기 전에 TV를 보고 있던 유인이에게,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지금 보고 있는 방송에 대해 물었다.
같이 볼 채널을 찾기 위해 리모컨을 꾹꾹 누르면서 나오는 방송에 대해 취향을 묻다가,
우리는 <나 홀로 집에>가 방영되는 채널에 멈추었다.
그렇게 나는 유인이 집에서 <나 홀로 집에>를 봤다.
수십 번이나 본 그 영화는 그 당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유일한 요소였다.
유인이 집에 놀러 가면 무엇을 할지 머릿속으로 수없이 돌렸던 시뮬레이션 중 그 어떤 상황도 일어나지 않았다. 집에서도 소파에 앉거나 침대에 누워 편하게 케빈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유인이에게 어떻게든 크리스마스니 연인으로서 스킨십 한 번 해보겠다는 생각에 무릎베개를 한 나. 무릎베개는 생각보다 너무 불편했다.
그저 유인이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워 케빈을 보다가, 전화가 한 통 왔다.
전화를 끊고 유인이는 당황한 표정을 짓고는 곧 부모님이 오신다며 빨리 집으로 가라고 했다.
크리스마스가 이렇게 지나가는 게 너무 아쉬웠다.
마지막에 어떻게 하면 안아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뽀뽀를 해볼 수 있을까.
그 수만 번 돌렸던 시뮬레이션을 통해 재빠르게 해보려고 했다.
내 시뮬레이션에서는 헤어질 때 인사하듯 포옹 같은 걸 해보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유인이와 나의 키 차이를 고려하지 못했을뿐더러, 현관의 구조나 턱 높이, 신발 신는 과정 같은 것들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다급하게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신발을 신다가 유인이와 어정쩡한 거리를 두고, 나도 모르게 재빠르게 안으면서 볼뽀뽀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안는 거는 거의 신발 신다가 앞으로 넘어져서 유인이에게 안긴 것처럼 되어버렸고,
재빠르게 뽀뽀를 한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유인이는 내가 집에 간 이후에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나 혼자 심장이 쿵쾅대면서, 크리스마스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볼뽀뽀를 할 수 있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귀여웠던 나의 크리스마스 소망이 이루어진 것에 뿌듯해하며 회고했다.
그런데 다음 날까지도 유인이한테 별말이 없어서, 학교에 가서 간접적으로 스킨십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인이는 그 어떤 스킨십도 했다는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내가 용기를 내서 말했다.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너한테 볼뽀뽀 하려고 했고, 집 나오는 길에 신발장 앞에서 했는데?"
"어? 내 볼에는 뽀뽀가 닿은 적이 없는데."
그때 당시에도 약간 애매모호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내가 간과했던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유인이의 긴 머리
나는 실제로 유인이에게 뽀뽀를 했지만, 그 뽀뽀는 머리카락 위에 해버린 것이었고,
결국 유인이의 볼에는 닿지 않았던 것이다. 치명적인 이슈였다.
그렇게 나는 유인이와 첫 스킨십(?)을 했고,
그 이후로는 학교에서도 몰래몰래 손을 잡고, 사귀는 걸 티 내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 밖에서나 주말에 함께 노는 것도 내 일정상 그리 쉽지 않았다.
화/목 영어 학원, 월/수/금 수학 학원, 시험 기간에는 시험공부,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나는 일정이 너무 많았고, 친구들과 자주 노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연애를 한다는 게 그리 연애를 한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유인이를 볼 수 있는 상황은 오직 학교에서 뿐이었고,
시험 기간이 되면 나는 유인이에게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마 유인 또한 나와 연애 중인 것을 학교가 아닌 곳에서 인지하기 어려웠을 거고,
어린애들의 연애겠지만 연인으로서 기대하는 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유인이에게 기억하는 두 번째 에피소드다.
나는 아직도 <나 홀로 집에>를 보면 그때가 생각난다. 어리숙했던, 그때는 수치스러웠던.. 머리뽀뽀..
나의 어리숙한 마음과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돌렸던 그 상황들을 떠올리며,
그땐 참 어렸고 정말 풋내기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청춘의 연애 이야기는 사실 아무것도 아닌 요소들로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다.
그중 유인이의 이야기로 시작한 건, 유인이와의 연애가 첫 연애이자,
풋풋하면서도 미완숙한 내 자신을 처음 마주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