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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lar May 20. 2024

나는 일하지 않는 나를 상상한 적이 없다

워킹맘 비긴즈


여자팔자 뒤웅박 팔자야


시집 잘 가야 된다. 00아. 그래야 좋은 집에서 몸도 마음 편히 살 수 있어. 30년 전 엄마와 이모사이에 콩나물을 다듬을 때면 항상 듣는 소리였다. 1950년대생 어머니들의 30년 전 대화라 생각하면 그리 낯선 대화도 아니다. 하지만 10살도 안된 꼬맹이인 나는 늘 이렇게 대답했다.


"내 팔자를 왜 남에게 맡겨? 나는 내가 잘될 거야"

맹랑했던 꼬마는 대한민국 30대 워킹맘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 쉰 것은 이직 전 휴가를 포함해 5개월 남짓이고 고용보험상 14년간 1일의 공백을 제외하고 잘도 버텼다.

특이하게도 어릴 때 제일 즐겨보던 TV는 성공시대였고, 중학생 때부터 자기 계발서를 좋아했다. 그 시대 애 셋인 이혼녀는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자식을 굶기지 않으려면 생계에 몸을 바쳐야 했고, 아이를 돌볼 시간은 없었다. 학습 부진에 시달리던 어린 꼬마는 그래도 심심한 시간 친구가 되어주는 이야기책을 좋아했고 읽기 능력은 뒤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볕이 들지 않는 반지하 내 방 한 칸 없었던 가난했던 나의 어린시절, 최대의 판타지는 성공시대와 자기 계발서였다.


나는 나의 삶을 구할 수 있다.


그때부터 나는 일하지 않는 나를 상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당장 전기세, 가스비를 걱정해야 했던 결핍된 환경에서 자랐기도 하고, 나는 그 결핍을 연료로 반드시 잘되리라는 열망을 품었던 것 같다. 나만 잘 가꾸면 내 삶을 일으킬 수 있다는 희망이 나를 달리게 한 것 같다.

지금은 안정적인 삶에서, 남편을 믿고 잠시 쉬어갈 수 있지 않느냐 누군가 묻는다면, 어쩌면 매일 쉬지 않고 걷느라 주저앉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솔직히 말해야 할 것 같다.

워킹맘으로 계속 살아가는 것.


대단한 커리어를 가지고 멋진 무대에서 화려하게 살고자 함이 아닌 그저 일하는 것이 삶이고, 어쩌다 보니 그것을 즐기게 된 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나의 삶을 내내 지켜보고 힘이 돼주신 작은 아빠가 물으셨다


"너는 일이 하고 싶냐? 돈이 벌고 싶냐"



나는 일이 하고 싶다.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 힘든 일을 함께 협력해 이겨냈을 때의 짜릿함, 결국 내가 해냈다는 만족감을 사랑한다.

노동의 가치가 폄하되고 경제적 자유를 표방하는 이 시대에, 나는 우리 아이에게 이렇게 즐겁고 열정적으로 삶을 사랑하는 우리 엄마도 있어라는 것만 알아준다면 행복할 것 같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더불어 큰 꿈은 없어도 일은 계속하고 싶은 당신을 위해서도,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내 자식 울리면서 버티냐 싶은 당신을 위해서도, 대한민국 평범하디 평범한 워킹맘 중 하나인 나지만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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