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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승 Jun 22. 2024

여자라고 안 봐줘?

실은 여자여서 때렸어요.

"여자라고 안 봐줘... "

지난해 27세 남성 A는 열여덟 살 여성 B와 술을 함께 마셨다. 그러던 중 그녀를 흉기로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B가 "때려 봐"라고 하자 A 는 B 의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은 뒤 주먹으로 복부를 여러 차례 가격했다. 쓰러진 B 의 몸과 머리를 발로 밟기도 했다. B 가 죽여보라고 하자 A 는 주방에 있던 흉기를 가져와 B 얼굴에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A 는 쓰러져 저항할 수 없는 상태인 B 의 등에 또 흉기를 내리찍어 살해하려고 했다- 2024년 6월 19일 머니투데이 기사 류원혜 작성-


한 여자와 남자가 죽도록 싸우고 있다.  그가 손을 치켜들었다. "후.. 여자라서 봐준다." 화를 누그러뜨린다. 여기서 '여자'는 물리적으로 힘이 약한 사람이다. 보편적 약자란 소리다. 여성 성기가 있다기보다.


하지만 A는 여자라고 봐주지 않는다며 B씨를 구타했다. 그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 그의 삶의 공식이다. 대입을 해보자. 다섯 살 아이가 뛰어가다 A 를 밀쳐 그가 넘어졌다. 때리겠네? 안 봐주는 사람이니까. 80대 노인을 넣어보자. 할아버지가 때려봐 죽여봐 하면 복부를 걷어차고 칼로 등을 찌르겠네? 해달라고 하니까.


이 가정은 어불성설이다. 왜냐 A 는 여자가 약해서 때린 것이 아니다. 약한 '여자'여서 때렸다. 여자만 안 봐주는 사람이다. ‘여자라서 안 봐준다'라는 그의 말을 보자. 왜 그는 자신의 행동을 이렇게 정의했을까? 남초 커뮤니티 반응이 그 이유를 보여준다.


"와 이건 안 때릴 수가 없네"

"상남자다"

"해달라고 해줬는데 뭐가 문제?"


세 문장에서  A 의 속내가 드러나고 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상남자는 남성미가 넘치는 진짜 남자를 말한다. A는 약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나쁜 놈이 아니라, 남자 중의 '남자'가 되길 바랐다. 난 여자도 때리는 남자야. 젠더 갈등 프레임 속으로 자기의 폭력을 숨겼다. 남녀는 평등해야 하니까. 여자도 맞을 짓하면 맞아야 해. 자신의 행위가 정당화되었다. A 는 이제 정의로운 남자다.  


그의 치밀한 내적 논리에도 불구하고, A 는 살인미수, 상해, 감금 혐의로 기소되었고, 2심에서도 원심판결과 같은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하나 걸리는 게 또 있다. 해당 기사가 젠더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여자가 때려봐? 해서 남자는 때렸다. 여자가 죽여봐? 해서 남자는 죽이려고 했다. 이 두 문장들만 보면 남초 커뮤니티의 일부 반응이 비논리적이지만은 않다. 어떤 상황에서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애가 27세 성인에게 때려봐?라고 했는지. 그 행간과 맥락은 무시되었다. 기사를 짧게 사실적으로 쓰려고 했다는 변명은 진짜 변명이다. 기자는 젠더갈등으로 사건을 상품화했다. 여초나 남초나 퍼가서 공유할 테니까. 클릭수 늘어나는 건 뻔할 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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