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페미 어쩌고 하더니 애가 변했어. 원래 착했는데.”
쯔양이야기를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쓰려고 했다. 쯔양 사건에서 '쯔양'을 아직 어떻게 부를지 고민 중이다. 피해자의 이름으로 호명되는 방식으로 그녀를 2차 가해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사건들의 중심에 피해자가 있게 담론을 구성하고 싶지 않으니까. 일단 복잡한 사건들에서 하나의 키워드로 개념화하기에는 아직 사건파악이 다 안돼서, 미흡하지만 일단 쯔양이라고 쓴다. 하지만 여기에는 피해자 이름으로 사건을 대하는 것에 비판적 시각이 있다는 걸 미리 알려둔다.
쯔양과 그녀에게 벌어진 사건들이 포르노 그라피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전남친에게 강간당한 녹취록부터 시작해서 온통 사건이 눈요깃감이다. 온라인 커뮤니티(특히 남초)는 그녀를 전시하고 물어뜯고 즐긴다. 뭔가 그녀는 ‘제가 피해자라니까요’ 라고 주장 하려는것 같다. 아무리 피해자성을 외치고 입증해도 소용없다. ‘근데 더 자극적인 거 보여주면 너 피해자 해줄게.’ 대중은 조건부다. 그리고 그녀는 여기에 응하며 휘둘리고 있다. 이 부분을 비판하고 싶었다.
인기 많고 부자인 쯔양이 어떻게 여자라는 약자의 위치에서 피해자로 입증받으려 안간힘을 쓰는가. 그것이 인간 개인의 정체성 경합에서 젠더가 갖는 힘이다. 쯔양이 어떤 사회적 자원을 가졌든간에 ‘약한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다. 특히 성적으로 여성- 대상으로 환원된다. 이런 게 성차별이라고. 퀸이 왕이 아니라 ‘여’ 왕이 될 수밖에 없는 남성중심적 사회를 드러내고 싶었다.
그러나 일말의 이유로 쓰지 못했다. 왜?
너까지 숟가락 얹을려고? 쯔양사건이 화제니 글 써서 조회수 올려보려고? 반문이 튀어나왔다. 난 그런 게 아닌데? 왜 그녀가 휘둘리는지 쓰려는 건데? 의도가 좋다고 해서 꼭 결과가 그런 건 아니잖아?
용기가 없는 거 아냐? 또 '이대남'으로 추정되는 애들이 와서 논리 없네. 내 말에 반박도 못하네. 빈약한 페미니즘. 하면서 비아냥댈까 봐? 음. 악플도 관심이고 내 글을 읽어 교화될 수도 있다고 좋게 생각했는데? 아니잖아. 이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거 아냐? 실상은 가슴 두근거려 피하고 싶은 거 아니냐고?!
난 아직도 용기가 필요한가 보다. 페미니스트적 의견을 말하는 게 어렵다. 이렇다고 인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마치 대학 때 처음 여성주의를 접하고 선배의 성희롱을 지적했더니 날아왔던 핀잔이 반복되는 것 같다.
“너 페미 어쩌고 하더니 애가 변했어. 원래 착했는데.”
그 후로 나는 한동안 기가 죽어 학내 성폭력을 적극적으로 고발하지 못했다.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했다.
예전에 대학 때 강사로 오신 정희진 선생님께 "제 페너지의 주범이세요" 했던 말이 기억난다. 페미니즘 에너지를 페너지라고 불렀다.
정희진을 보고 늘 용기를 얻는다. 오늘 페미니즘의 도전 개정판을 읽으면서 나도 저런 생각인데. 저걸 말로 해도 되는구나 그녀에게 힘을 얻었다. 그동안 쓰지 못했던 여성주의 관점을 말할 그리고 비난당할 용기가 다시 생겼다. 늘 그렇다. 있다가 없다가 또 생긴다. 어떤 비판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을 내놓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페미니즘은 감히 내 삶의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