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걸을 순 없는 건가
달빛을 벗 삼아 산책을 했다. 오랜만에 걷는 밤길이었다. 나는 걷는 게 좋다. 밤이든 낮이든. 여름이든 겨울이든. 바람이 불건 비가 오든 간에. 동행자는 규칙적인 걷기에 대한 병리학적 이점들을 늘어놓았다. 역시 그는 T이다. 같은 T로써 나는 철학적 논지를 펼쳤다. 걷기를 단순한 육체적 행위가 아니라고. 인용도 덧붙였다.
철학자 프레데리크 그로는 걷기를 사유하는 철학으로 명명했다. 그의 책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에서 걷기의 이점에 대해 말했다:
“걷다 보면 어떤 사람이 되어 하나의 이름과 역사로 단일한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게 된다”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 바로 그것이 걸을 때 누릴 수 있는 자유다”
그의 말은 내게 와서 마법처럼 일어났다. 한발 한발 땅에 발을 디딜 때 나의 에고 따위는 사라져 버린 채 나는 나무가 있는 곳에서는 나무가 되고, 물이 있는 곳에서는 물이 된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비물질적 정신에 따른 관념을 즉시 하는 것이다. 걷기를 통해 얻은 자유의 가치를 나는 또한 나 홀로 소비하지 않으려고 한다. 간디가 조국의 독립운동으로 걷기를 택했던 것과 같이 허세의 끝판 왕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 압록강까지 가보자 고 동행자에게 말했다.
T답게 그는 나의 허세에 대꾸했다.
"밀입국을 하자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