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희승 May 12. 2023

첫 데이트에 접시까지 핥다니!

가로숲길 연남토마

그와 만나기로 한 곳은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가로수 길이였다. 아직 데이트할 사이는 아닌데… 하는 속마음과는 달리 내심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길거리에 주차된 차에 다가가 백 밀러로 내 모습을 점검한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립스틱도 새로 발랐다. 따뜻한 봄바람에 살랑이는 발걸음으로 가로숲 길을 퐁당퐁당 걸어간다. 그는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팔짱을 낀 채 서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큰 키, 약간 마른 듯한 체구에 그는 베이지색 면바지 위에 하늘색 셔츠를 입고 남색 재킷을 걸쳤다. 얼핏 보면 평범한 범생 스타일이지만 피부가 깨끗한 그에게 잘 어울리는 옷차림이었다.


“왜 데이트 코스에서 만나자고 했어?” 만나자마자 저돌적으로 묻는 내게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여기 맛있는 데가 있데”라며 말을 아꼈다. 오분 정도 걸었을까. 빨간색과 초록의 보색으로 꾸며진 예쁜 레스토랑이 나왔다. 안으로 들어가니 우드와 화이트 톤의 인테리어가 화사하니 따뜻해 보여 마음에 들었다. 평소 맛집에는 관심 없던 그가 이런 곳을 아는 게 놀랐지만 의연한 척하며 자리에 앉았다.

메뉴는 양식과 일식의 콜라보. 다양한 가츠 정식, 덮밥, 파스타, 샐러드가 있었다. 우리는 다양하게 먹어보자며 간장에 조린 스테이크를 덮은 야키니쿠동, 체다와 모짜렐라 치즈가 들어있는 소고기치즈가츠 그리고 바질페스토에 명란을 얹은 명란바질오일 파스타를 시켰다.


시킨 지 얼마 안되서 시킨 메뉴들이 모두 나왔다. 치즈가 굳기 전에 빨리 먹어야 해라는 일념으로 냉큼 소고기치즈가츠를 한입 베어 먹는다. 고소한 체다의 치즈향과 찐득하게 늘어나는 모짜렐라의 맛이 동시에 느껴졌다. 거기에 살살 녹은 소고기의 육질까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 개 밖에 남지 않았다.

그의 앞접시에 살포시 한 점을 가져다 놓으니, 그가 재밌다는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그게 그렇게 맛있어?”


나는 멋쩍게 고개만 끄떡이며, 그에게로 화제를 돌렸다. “쿠동은 어떤데?”, 그는 크게 밥을 떠서 두툼하게 잘 익은 소고기를 얹고 그 위에 고추냉이를 살짝 올려 먹는다. 먹는 모습이 이렇게 먹음직스러워 보인 적은 처음이다. 천천히 맛을 음미해서 긴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짧았다, “응, 맛있어.”

아니 뭐가 어떻게 맛있냐고… 답답한 마음에 내가 먹어본다. 달짝지근한 간장소스에 졸인 두툼한 소고기는 흡사 잘 익은 숯불갈비와 비슷했고, 그 위에 고추냉이의 알싸함이 찰떡궁합. 마지막 메뉴인 파스타는 바질 특유의 향긋함과 짭쪼름한 명란이 아주 잘 어울려져서 정말 퓨전의 극강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맛이었다.


다 먹고 나서도 숟가락에 묻은 소스를 핥고 있는 내게 그는 물었다. “또 올래?” 너무 빨리 대답하면 안 된다는 일종의 법칙에 따라, 속마음과는 달리 가볍게 미소만 지었다…… 고 스스로를 속인다. 그릇을 치워가던 점원께서 내게 일깨워 주셨다. “뭐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아하핳하핳하하핳핳하핳하하하하하하(어떻게 알았지?!!)



장소: 연남토마 가로수길점- 야키니쿠동, 소고기치즈가츠정식, 명란바질오일파스타

매거진의 이전글 생애 첫 생일 선물 - 치킨이 아닌 통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