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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승 May 08. 2023

생애 첫 생일 선물 - 치킨이 아닌 통닭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처음 맞은 생일이었다. 반 친구들처럼 아이들을 초대하여 생일파티를 하고 싶었지만, 허락해 주지 않을 께 뻔했다. 언니들이 한두 번 물어보았을 때에도 엄마는 이렇다 할 이유는 주지 않았지만, 좌우로 고개를 몇 번 흔들어 안된다는 표현을 했다. 필시 우리 집 형편에 부담이었을 것이다. 머리가 약간 굵어지니 짐짓 알 수 있었다. 어릴 적마트에 가도 딸 셋이 과자 하나만 고르게 하던 엄마가 아니던가.


지레 특별한 일은 없겠지 하면서도 생일 전날은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꼭 소풍 가기 전날처럼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잠도 못 자가면서 한 기대 덕분이었는지, 엄마는 학교 마치고 오면 선물을 준다고 언니들 몰래 귀 뜸을 주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늘 생일날 먹던 미역국이 아침상에 없어 미안해서일까? 아니면 아빠가 보너스라도 받았나? 갑작스러운 엄마의 호의에 어리둥절하며 이유가 내심 궁금해졌다. 까닭은 사유로 얻어질 결과가 아니었기에 미리 포기하고 무엇을 받을지 상상을 해봤다.


더러는 상상의 나래를 멀리멀리 펼쳐 수업시간에 꾸중을 들어야 했다. 여하간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학교에서의 시간들이 꽤 지루하게 느껴졌다. 종례시간에도 하도 궁둥이를 들썩거려 벌로 청소까지 하고 나니, 집에 영원히 가지 못할 것 같다고도 느껴지기도 했다. 청소검사를 마치고, 담임선생님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집을 향해 쏜살같이 달렸다. 난생처음 받는 생일 선물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집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더 곤두박질쳤다.


집에 도착해 대문을 열자마자 큰소리로 엄마를 부르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어딨어”. 엄마는 소리 지르지 말라며 가볍게 꿀밤을 한 대 주고서는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방에 놓고 따라 나오라고 했다. 어디로 가는지 말해주지 않았지만, 방향을 봐서는 네거리 시장에 가는 것이 틀림없었다.


당시 우리 집 앞에는 동서남북으로 쭉 펼쳐져 있는 네 거리에 상점들이 꽉꽉 들어찬 전통시장이 있었다. 시장 초입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주급으로 받았던 이백 원 용돈을 하루에 다 소탕케 한 주범인 떡볶이 포장마차에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종이컵에 떡볶이를 꽉 채워 주던 컵 떡볶이 백 원 그리고 피카츄 돈까스 백 원 나의 단골 메뉴이다.

이 두 가지를 양손에 들고 나면 일주일을 다시 언니들에게 빌붙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게 된다. 포장마차의 매콤 달콤한 떡볶이에게 그리고 모양이 더 맛있는 피카츄에게 내 생일이라고 잠시 인사를 건넨 후 오른손으로 엄마의 왼손을 떨어질 쎄라 꼭 부여잡고 야심만만하게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어찌나 가볍던지 언젠가 구름을 걷는다면 마치 그럴 것 같았다.


시장에는 가지 각색의 물건들이 각기 자태를 뽐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란 눈에 아리따운 금발의 바비, 눈 코가 유난히 까만 복실 복실한 누렁이 인형, 가위로 오려 여러 옷을 입힐 수 있던 종이 인형들..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 이중에 하나만 고를 수 있는데.. 어쩌지… 집에 가는 시간은 가까워만 지고 행복한 고민은 점점 피로 해졌다.


그때 고심하던 내 머릿속을 깨운 건 코끝에 스친 구수한 기름냄새였다. 고개를 돌리니 거무튀튀한 나무판자에 흰색 페인트로 굵게 통닭집이라고 칠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튀김반죽이 여기저기 묻어 있고 주머니가 두 개가 앞으로 나 있는 흰색 앞치마를 한 수더분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커다란 가마솥에 생 닭을 통 채로 넣어 튀겨내고 있었다. 튀김 솥 앞에는 갓 튀긴 닭들이 늦가을 낙엽처럼 차곡차곡 쌓여 작은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 맛있는 광경 앞에 금발의 바비는 저 멀리 안드로 메다로 사라져 버렸다. 굿바이 바비….


어느 정도 흘렀을까. ‘아얏’, 갑자기 번쩍 하고 앞에 노란 별들이 보였다. 엄마의 꿀밤이었다. 약간의 통증이 느껴져 연신 이마를 문질러 댔지만, 내 시선은 여전히 연한 갈색 빛의 통닭을 향해 있었다. “여기 있으면 있다고 해야지, 한참 찾았잖아”라고 말하는 엄마의 핀잔을 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 올 시간이 다 되었다며, 선물은 골랐냐고 내게 물었다.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당차게 나는 손가락질까지 해대며 저기 “통닭”이라고 대답했다.


엄마와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주인아주머니는 앞치마에 두 손을 문지르며 우리에게 물었다. “닭 사시게요?” 엄마는 대답했다, “아 생닭 말고 튀긴 닭으로 주세요.” 아 이제 저 수북이 쌓인 닭 중에 하나는 곧 내 입을 구경하겠구나 생각하니 신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라 아주머니는 집게로 닭을 집다 말고는 우리 쪽으로 다시 걸어오며 말을 건넸다.


“양념은 안 하시고, 후라이드로만 말씀이시죠?”.


그 순간 나는 양념? 아 양념은 뭐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낯선 말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엄마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네 그냥 저거 한 마리 주세요”.라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말해버리는 게 아닌가. 난 그 순간 온 힘을 다해 내 의사를 밝혀야 했다. “어머니, 양념 통닭으로 하면 안 될까요?” 왠지 안 해 줄 것 같아 평소에는 쓰지도 않던 존댓말까지 튀어나왔다. 양념은 양념 자가 붙어서 더 비쌀 것 같았고 비싸면 당연히 안 되는 거였다. ‘안된다고 해도 섭섭해하지 말아야지, 통닭을 먹는 게 어디야’ 스스로를 위로하며 두 입술을 모아 꾹 다물었다. 엄마는 웬일인지 순순히 내 요구에 응해 주었다.


“죄송한데 양념으로 바꿀 수 없을까요”라고 묻자 아주머니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이며 큼지막한 생닭을 냉장고에서 꺼내 토막 내기 시작했다. 닭은 넓적 다리부터 숭덩숭덩 잘렸다. 작게 잘린 닭조각들은 큰 스테인리스 통에 들어가 걸쭉한 튀김 반죽이 입혀지고, 곧바로 가마솥 안의 펄펄 끓은 기름 속으로 들어갔다. 하얀 튀김옷을 입은 조각들은 노란 기름 속에서 수십 만개의 공기방울을 만들어 내며 부르르 부르르 떨면서 익어 갔다. 다 튀겨진 조각들은 철제망에 속에 넣고 위아래로 탁탁 소리를 내며 기름을 털어주고 옆에 따로 잠시 식혀 두었다.


주인아주머니는 통닭집 뒤편으로 난 주방에서 중간 크기의 주황색 다라이를 가지고 나오시더니, 고춧기름을 자박히 붓고 케찹과 고추장 그 중간쯤으로 보였던 걸쭉한 양념들을 쏟고 그 위에 여러 개의 양념통들을 몇 번 흔들어 주셨다. 고춧가루를 식용유에 개어 자박하게 끓여낸 고춧기름은 빠알갛고 투명해 영롱하기까지 해 보였다.


주걱으로 휘이이 휘이이 루비 같이 빠알간 양념들을 섞고 그 위에 튀겨진 닭 토막들을 넣었다. 그리고 양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아주 조심스럽게 양념을 손으로 살살 문질러 닭 위에 입히는 게 아니겠는가. 연한 갈색의 통닭이 질펀한 양념이 뚝뚝 떨어지는 빨간 통닭으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는 양념된 치킨을 이제 다라이 한가운데 모아두고 아랫 선반에 끄집어낸 절구로 땅콩을 콩콩 빻아 그 위에 흩뿌렸다.


완성된 통닭은 호일로 안이 코팅된 큰 봉지에 넣어 입구를 봉하지 않은 채 그대로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엄마에게 건냈다. 봉지 입구를 닫으면 튀김이 눅눅해지므로 집에 가서 드실 때까지 열어 두라는 당부까지 듣고 돈을 지불하자 이제 정말 양념 통닭은 내 차지가 되었다. 기어코 내가 든다고 고집을 부려 양손으로 양념치킨을 들었다. 오른손으로는 봉지 윗부분을 잡고 왼손으로는 밑부분을 받혔으니, 들었다기보다는 안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쌀쌀한 겨울 날씨 덕택에 올려 안은 검은 비닐봉지는 무겁기보다 따뜻했다. 약간 열린 틈새로 맛있는 기름 냄새까지 솔솔 올라왔다.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뛰어가고 싶었지만, 섣불리 그랬다가 넘어져 내 통닭들이 길거리에 나뒹굴 것을 생각하니, 몇 분 늦는 것이 큰 대수는 아니지 싶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언니들을 모아 놓고 큰 소리로 양념 통닭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땅콩가루가 어떻고 저떻고 언니들은 내 연설에 금방 지루해했으나 양념 통닭이 저녁 상에 오르자 탄성을 질러 댔다. “내 생일이어서 그 덕에 먹는 줄 알아.” 큰 소리로 내 노고를 셀프 치하하며 난생처음 받은 생일 선물을 언니들 밥공기 위에 한 조각 씩 올려 주었다.



후다닥 통닭 하사식을 끝내고, 고대하고 고대하던 통통한 양념 통닭을 한입 뜯었다. 바삭하고 촉촉한 닭껍질에 양념을 입히니 매콤 새콤달콤한 맛이 났다. 처음 느낀 그 비범한 맛에 눈이 절로 감겼다. 그 순간, 실로 이 우주에는 치킨과 나 둘 뿐이었다. 껍질이 뜯기자 안에 있던 닭살이 드러났다. 육즙이 살짝 묻어나는 살코기는 촉촉하니 윤기가 났다. 앞 이빨로 슬쩍 물자 부드럽게 찢어지면서 쫄깃한 맛이 그 뒤를 이었다.


언젠가 포장마차에서 사 먹던 떡꼬치의 맛이 떠올랐다. 켜켜이 떡을 꼬지에 껴 튀긴 다음 걸쭉한 빨간색 양념을 바른, 그 달달한 매콤 새콤 한 맛, 그 맛이 연상되었다. 허나 기름에 흠뻑 빠진 닭껍질에 양념을 바른 맛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본디 통닭은 기름 맛이 기본이다. 그중에서도 단연코 껍질 맛이 그 맛을 좌우한다. 매콤하고 달짝지근한 양념 맛에 촉촉하고 바삭한 닭 껍질의 고소한 기름의 맛, 그 둘의 조화는 정말 기가 막혔다.


딸 셋이 달려들어 먹으니 양념 통닭은 금세 바닥을 보였다. 나는 언니들이 다 먹고 남긴 뼈에 달라붙은 살코기도 모조리 이빨로 긁어내, 바닥에 깔려 있는 양념들까지 다 닦아 먹었다. 아쉬움에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이런 일로 눈물을 보이는 건 언니들에게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 거라는 걸 알았기에, 입 속에 남은 양념들을 되새기며 작별을 고했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라는 것을 굳게 믿으며… 내 생애 첫 양념 통닭.. 내 생에 첫 생일 선물… 이제 안녕…. 우리 다음에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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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비비큐 양념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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