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켠서 May 13. 2022

이 도시가 행복한 이유

우리가 사랑한 도시, 캄폿

캄폿에서의 둘째 날.

행복했기에 완벽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었다.


규모는 작지만 예쁘게 꾸며진 호텔 수영장이 보이는 야외 공간에서 햇살을 받으며 기다렸던 첫 조식을 먹은 우리는 캄폿에 있는 타다 폭포(Tada Roung Chan Waterfall)에 가보기로 했다.


구름이 껴 흐렸던 전날과는 달리 이날은 아침부터 해가 쨍쨍했다. 내가 느끼기론 분명 이때부터 견디기 힘든 더위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처음 프놈펜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걱정했던 것보다 덥지 않은 날씨에, 서울의 여름보다 낫다고 생각했는데. 이때가 서울에선 한겨울이라는 걸 잠시 잊었나 보다.


캄폿은 확실히 캡보다는 규모가 커서 도시라고 할 만했지만, 중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그 느낌이 확 달라진다. 강가에 자리 잡은 건물들과 골목을 가득 채운 레스토랑들이 주는 도시의 아우라는, 다리를 건너 고작 5분만 달려도 등 뒤로 사라져 버린다.


한산한 도로를 쭉 달리다 보면, 아침이라 선크림을 듬뿍 바르지 않은 게 후회가 될 정도로 쨍쨍한 햇볕이 팔과 어깨 위로 올라탄다. 헬멧과 선글라스를 쓴 얼굴은 오히려 따갑지 않다.

오토바이 위에서는 바람 때문에 더울 틈이 잘 없다. 그저 따가운 햇살과 흙먼지가 걱정될 뿐이다. 오토바이를 타는 건 자동차를 타는 것과는 너무나도 달라서 무섭기도 했지만 온몸으로 캄보디아의 풍경을 빨아들이는 기분이 든다. 한국과는 너무 다른 붉은 흙, 도로 옆 가판대와 야자수, 그런 것들이 끝없이 펼쳐지고 나는 매분 매초 내가 지금 이곳, 캄보디아에 있다는 걸 실감했다. 그래서 속도가 조금이라도 높아지면, 바람을 가르는 우리조차 풍경의 일부가 된 느낌이 들었다.


캄폿 중심가를 벗어난 지 10분쯤 지났을까, 역시나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 오히려 포장이 되지 않은 도로가 더 반가울 만큼 구덩이가 잔뜩 패인 포장도로를 오토바이로 달리자니 엉덩이가 너무 아팠다. 우리 앞엔 스무 살도 채 안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고 있었다. 이쪽에 사는 학생들인지 이곳 도로가 익숙해 보였다. A는 앞선 오토바이들이 가는 방향을 그대로 따라가는 방법으로 잘 보이지 않는 구덩이나 도로에 있는 돌들을 피해 운전했다.


한 5분을 더 달리니 비포장 도로가 나왔다. 우리는 어느새 높은 산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시내에서 오토바이로 고작 20분 달려온 거리인데 너무 다른 풍경이 놀라웠지만, 여긴 캄보디아니까. 이것까지 정말 이 나라다웠다.

지도 앱을 따라가다 보니 매표소 같은 곳이 나왔다. 한 사람당 1달러가 입장료였다. 여행 초기라 과소비를 방지하고자 최소한의 돈만 가지고 다닐 때였기에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사실에 순간 걱정했지만 너무 저렴해서 다행이었다. 현지 돈으로 8000 릴을 내고, 우리 돈을 받아간 소녀가 가리키는 곳으로 운전을 계속했다.


길은 약 10분간 계속 이어졌다. 관광지임을 알려주려는 건지 이상한 동상들과 호랑이 동상 등이 세워져 있었지만 오히려 자연경관을 망치는 것 같아 불편했다.


지도 상으론 폭포로 가는 길이 저 가파른 언덕 위로 이어지는데, 한 소년이 우리를 멈춰 세웠다. 영어를 못하는 소년과 영어만 할 수 있는 A와 영어 혹은 한국어밖에 못하는 나. 우리 셋은 서로 물음표가 잔뜩 뜬 얼굴로 어리둥절했다. 나와 A는 처음엔 입장이 금지된 건가 싶어 너무 당황했고, 오토바이를 가리키며 "노"라고 말하는 소년이 우리에게 뭘 원하는 질 몰라 더 당황했다.


어떻게든 바디랭귀지로 소통하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소년이 전하고 싶은 뜻이 뭔질 이해할 수 있었다. 오토바이를 왼쪽에 있는 주차장에 세우고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우리가 이해한 듯 하자, 어쩔 줄 몰라하던 그의 앳된 얼굴에 안도감이 돌았다. 주차에는 비용이 있을 텐데, 얼마냐고 물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우리에게 소년이 눈치를 채곤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 1000 릴. 300원 정도 되는 가격이다.


오토바이를 세워두니 거의 11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아침인데도 내리쬐는 땡볕에 폭포까지 약 10분은 걸어야 할 것 같으니 마실 걸 사서 올라가기로 했다.


아침부터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낮잠을 자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몇 세대가 한 곳에 다 같이 모여 사는 대가족을 연상하게 했다. 아, 물론 그냥 정말 대가족이었을 수도 있지만.

타다 폭포에 오르는 길은 가파른 언덕이었다. 이글거리는 더위에 A는 이미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땀범벅이 됐다. 분명 폭포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을 땐 엄청난 관광지 같았는데, 사람이 없어 주위가 고요했다. 높은 산에 울려 퍼지는 맑은 새소리만 감돌았다.

건너편 산에 보이는 나무들이 너무 예뻐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올라가니 폭포로 가는 길을 만들어둔 철근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너지진 않겠지-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철근을 건너가니 폭포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깨달았다. 지금이 건기라는 것을...!


그래서 사람이 별로 없었던 거였나 보다. 물론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떨어질 물이 없는데 폭포를 보러 올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되겠어.

약간 김 빠지는 기세로 떨어지는 물을 구경하다 보니, 보이는 돌 틈새에 세워진 불상이 보였다. 크기가 작아서 집중해야 보이긴 하지만 저기에도 불상이 놓여있다니, 신기했다.


너무 더웠기에 서둘러 길을 내려왔다. 폭포 구경은 고작 5분쯤 했던 것 같다. 내려오는데 우리 말고도 두어 커플 정도가 보였다. 아까 샀던 물을 다 마셔버린 우리는 캄폿 시내로 출발하기 전 마을 사람들에게서 마실 물을 두병 더 샀다.


다시 20분가량을 달려 캄폿 시내로 돌아온 우리는 씻고 쉬다가 점심을 먹고 시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아, 이날부터 얼굴에 났던 수포들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었다. 그전까지는 괜히 피부에 무리가 갈까 봐 화장도 못 얹었는데. (그래서 캄보디아에 화장품을 괜히 가져왔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오돌토돌하게 올라왔던 것들은 가라앉아 뺨이 많이 매끄러워지고, 여드름이 났다가 사라진 것처럼 붉은 자국들만 남아있었기에 오랜만에 선크림도 두껍게 바르고 화장도 했더니 기분이 좋았다.


점심으론 새로운 인도 음식점에서 계란볶음밥과 커리를 먹었는데 양이 엄청나서 아주 많이 남길 수밖에 없었다. 특히 A가 주문한 계란볶음밥이 거의 2-3인분은 될 법한 양이었는데, 이렇게 양이 많은 곳인걸 알았다면 그냥 3달러짜리인 이걸 하나 시켜서 둘이 나눠 먹을 걸 그랬다.

1인분 맞아?

원래는 시장 구경을 하려고 했지만 오후 두시쯤이 되니 A가 야외에서 스멀스멀 녹아내리는 게 느껴졌다. 처음 만났을 땐 영국인치곤 추위를 잘 탄다고 생각했는데, 25도면 여름이나 다름없는 영국인인 A에게 이 정도의 더위는 진짜 견디기 어려웠을 거다. 하지만 이날은 진짜 무더위의 시작일 뿐었다는 것.


시장에 들어가긴 들어갔었지만, 에어컨도 없는 실내라 바람이 없어 더 더웠고 너무 더러웠기에 서둘러 나와 카페로 피신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한잔에 2.2달러인 비싸고 예쁜 신상 카페였다. 카페에서 A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람들이 자꾸 나를 쳐다본다며 툴툴댔다. 아무래도 동아시아인보다는 서양인들이 더 많은 이곳에서 내 외모가 확실히 눈에 띄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관광객만을 위한 곳 같은 카페나 마트에서는 거스름돈도 무조건 새 지폐로 준다. 내 손톱과 색이 비슷한 오백릴 짜리 지폐.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더위를 달랜 우리는 호텔로 돌아가 수영장에서 놀기로 했다. 캡에선 내 알레르기 때문에 숙소에 있던 수영장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기에 괜히 신이 났다. 규모가 작은 수영장이었지만 삼각대도 챙겨가서 사진도 많이 찍었고 물이 차가웠던 탓에 더위도 싹 가셨다.


다섯 시가 되어가도 배가 고프지 않아 캄폿 야시장을 방문했다. 일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유원지 느낌도 났다. 캄보디아 시장에는 어딜 가든 꼭 영국 축구 구단의 유니폼이 잔뜩 걸려 있는데 (물론! 진품은 아니다) 아스날 팬인 A는 결국 이날 아스날 유니폼을 구입했다. 가게 아주머니가 영어를 못해서 앞에서 음식을 파는 소녀가 통역을 대신해줬다.

분주히 유니폼을 고르는 모습 ㅋㅋㅋㅋㅋㅋ

저녁을 먹기 위해 돈을 더 가져오고자 호텔에 잠깐 들렸다. 그사이 A는 방금 전 구매한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구글맵을 찾아보니 저기 어디 다른 야시장이 있길래 거기도 한번 방문해보기로 했다. 보코 야시장은 강가에 위치해 있었다. 오토바이를 주차장에 세우고 야시장에 들어가니 어린아이들을 위한 간이 놀이기구들이 먼저 눈에 띄었다.


옷도 팔지만 주로 캄보디아의 길거리 음식을 파는 느낌이었다. 딱 노을이 질 때라, 강가에서 노을을 감상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바로 이곳에서 이 사진을 찍었다. 우리의 교복이 된 옷들. 나는 이날도 이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


이날 피부도 많이 괜찮아져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사진도 많이 찍었다. A가 부모님께 우리가 함께 찍은 셀카를 보내드렸는데 마음에 드셨는지 사진을 인화해 액자에 걸어두고 싶다고 하셨다.

점심을 정말 많이 먹었기에 우리는 밤 여덟 시가 다 되어서야 저녁을 먹으러 갔다. 캄폿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며 맛있고 비싼 걸 먹자며 고급 레스토랑을 찾았다. 메인 메뉴가 그렇게 다양했는데도 굳이 같은 요리를 고른 걸 보면 애초에 입맛도 비슷한 것 같다.


맥주도, 여름밤 같은 냄새도, 맛있는 음식과 함께한 사람까지 좋았던 저녁식사였다.

다음날 시아누크빌까지 갈 여정이 험난할 것이기에 일찍 하루를 마무리해야 했던 우리는 초코파이와 캄보디아에서 우리의 최애 음료가 되어준 과일 펀치 맛 환타를 사서 숙소로 돌아갔다.

소박하고 행복한 강변 도시 캄폿은 우리가 원하는 걸 모두 다 갖춘 도시였다.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시내, 감탄할 만큼 아름다운 자연경관, 예쁘고 아기자기한 카페들과 다양한 종류의 레스토랑들까지, 우리에게 캄폿은 완벽했다. 이 도시가 행복한 이유는 너무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기 때문이었다. 과하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머물고 또 휴식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보코산 너머로 지는 노을이 정말 아름다운 도시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번 여행에선 이날이 캄폿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될 줄 알았는데.


그래서 너무 아쉬웠지만, 정말 사람 일은 모르는 거더군.

매거진의 이전글 해발 1000미터 정글에 오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