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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켠서 Aug 25. 2022

떠나요, 소박한 시골 마을로

미지의 이사나푸라, 캄퐁톰

미리 PCR 검사를 받으려던 계획이 무산된 후, 우리는 맨 처음 계획대로 21일로 미뤄둔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월요일 새벽 비행기라 이틀 전인 토요일에 출국을 위한 PCR 음성 확인서를 받아야 하니 그날 아침에는 프놈펜에 있어야 하는데,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애매하게 중간에 낀 시간을 다 프놈펜에서 보내자니 또 엄청 아까운 거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다른 도시에 가기에도, 그렇다고 가지 않기에도 3일이라는 시간은 너무 애매했다. 오토바이로 운전해 가기에 너무 멀어도 안 되고, 볼거리도 있어야 하는 도시. 그런 곳을 찾으려 A도 나도 구글 지도를 켜 두고 한참을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A가 휴대폰을 내 앞으로 쑥 내밀었다.

-여기 어때?


그가 보여준 지도에 캄퐁톰(Kampong Thom)이라는 지역이 보였다.

-캄퐁톰? 여기에 뭐가 있는데?

내 말에 A가 구글 지도에 올라와 있는 여러 사진들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캄퐁톰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유적지가 있나 봐. 한 50분쯤? 여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래.


A가 보여주는 유적 사진들을 보니 감탄이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

-오, 괜찮은데? 우리 한 번도 못 구경했잖아. 이런 거.


지도로 확인해보니 프놈펜에서 캄퐁톰 시내까지는 3시간이 걸린다. 예상시간보다 더 걸릴 걸 생각하면 막상 그렇게 가까운 거리는 또 아니다. 프놈펜에서 시엠립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도시인가 보다. 규모가 얼마나 되는 도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A가 보여준 썸보 프레이 쿡(Sambor Prei Kuk) 유적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로 느껴졌다. 앙코르와트가 건설되기도 전에 지어진 고대 유적이라는데, 너무 신비롭잖아!


시엠립이나 바탐방 등 오래된 사원과 유적을 볼 수 있는 도시들은 대부분 캄보디아 북서쪽에 많이 위치해 있는데 우리가 이번 여행 내내 남서부에 머물렀던 터라 이런 유적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갑자기 캄퐁톰으로 2박 3일 일정이 잡혔다. 다음날 체크아웃 후 프놈펜에서 점심을 먹고 캄퐁톰으로 출발한 후 금요일 오후에 다시 프놈펜으로 돌아오는 걸로 대강 계획을 세웠다. 처음 프놈펜에 방문했을 때 가볼까 했으나 너무 슬플 것 같아 여행 끝에 방문하려고 미뤄두었던 '뚜얼 슬렝(Tuol Sleng) 대학살 박물관'은 PCR 검사를 받은 후에 방문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인 20일에 드디어 프놈펜 국제공항으로 출발하면 이제 캄보디아와는 안녕이었다.



다음날 아침, 짐을 싸고 준비를 마친 우리는 체크아웃 시간보다 삼십 분 서둘러 카드키를 반납한 뒤 호텔을 빠져나왔다. 아침을 어디서 먹을지 고민하던 찰나, 처음 프놈펜에 왔을 때 점심을 먹었던 지중해식 레스토랑이 떠올랐다.


처음 프놈펜에 왔을 때 지냈던 숙소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그 레스토랑은 국립박물관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그때처럼 야외 테이블에는 서양인들이 도란도란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바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후무스와 빵, A는 빵과 스크램블 에그를 주문했다.



왜인지 그 동네에서는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A도 그렇게 느꼈다는데, 아마도 처음 이곳에 왔던 우리가 떠올라서였을 거다. 처음 함께 해외여행을 왔다는 설렘, 우리 둘이 자라온 나라들과는 사뭇 다른 낯선 타국에서 느끼는 신비로움 - 그때 우리는 이런 두근대는 감정들을 함께 했다. 그날로부터 3주 넘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에게는 참 많은 일이 일어났었는데 이곳은 언제나 똑같았겠지.


식사를 마치고 약국에 들러 내가 먹을 기침약을 사고 근처 편의점에서 물도 구입했다. 이제 도로 위를 달릴 시간이다. 늘 남서쪽에서만 왔다 갔다 했던 우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운전을 해 갈 거라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들떴다. 전날 미리 예약해둔 숙소를 목적지로 설정했다. 시내에 있는 숙소라 썸보 프레이 쿡 유적과는 거리가 50분 정도 되기는 했지만 우리 같은 배낭여행객들에게는 어디든 안전한 곳이 최고다.


프놈펜에서 캄퐁톰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는데 6번 국도를 타면 캄퐁톰까지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쭉 한 도로 위에서 달릴 수 있다. 사실 처음에는 두 방법 다 예상시간에 별 차이가 없어 고민이 됐는데, 6번 도로에 메콩강 물줄기 옆을 따라 이어지는 구간이 있다는 게 좋아 그 길을 선택했다. 도로 옆으로 강이 보일까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강은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길을 떠난 지 거의 한 시간쯤 됐을까, 우리 둘 다 아침과 함께 차가운 커피를 마셔서인지 화장실이 급했다. 보통 고속도로에 본격적으로 들어서면 화장실을 찾기가 정말 힘들기 때문에 먼 길을 떠나기 전에 볼일을 보아야 하는데 정신이 없어 깜빡한 거였다. 도로 옆으로 편의점이 딸린 주유소가 보이자 A가 그 옆 주차장으로 오토바이를 세웠다. 살펴보니 가게 옆으로 공중화장실이 보였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 그 옆에 있는 편의점에 들렀는데 황당한 일이 생겼다. 시원한 음료수라도 마시고 출발하려고 음료 냉장고를 여는데 A가 잡은 문짝이 떨어져 나간 거다. 다행히 A가 손잡이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재빨리 다른 손으로 문을 막아 다른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정말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다. 이게 왜 떨어진 거지? 혹시 문짝을 부쉈다고 배상하라고 하는 거 아니야? 우리는 서로 이런 눈빛을 교환하며 그 자리에 서서 어쩔 줄을 몰랐다.


곧 가게 안에 앉아있던 경비 아저씨가 급히 달려오더니 떨어진 문짝을 들어 옮기고 가게 직원들이 웃으며 A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멋쩍고 창피한 표정으로 허허 웃던 A는 괜찮다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해당 문짝은 원래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망가지기 직전인 아슬아슬한 상태였는데 하필이면 A가 문을 열었을 때 떨어져 나간 건가 보다. 문짝만 떨어졌을 뿐 다른 사고는 생기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


아직 갈길이 한참 먼 우리는 그곳에서 산 음료수를 재빨리 마시고 다시 오토바이 위에 올랐다. 그때는 몰랐는데 6번 도로를 타고 캄퐁톰을 지나 계속 쭉 달려가면 시엠립이 나온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6번 국도가 시엠립과 프놈펜을 잇는 고속도로라는 건데, 그래서인지 도로 상태가 꽤 좋았다. 길이 넓어졌다 좁아지거나 공사 때문에 차량 통제를 받는 구간도 있기는 했지만 캄폿과 시아누크빌 사이에 있었던 비포장도로에 비하면 정말 잘 닦인 대리석 도로나 다름없었달까.


하도 별의별 도로를 다 겪었던지라 이번에는 어떨지 몰라 걱정했건만 캄퐁톰으로 가는 길은 쾌적하다 못해 지루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운전 중인 A가 이렇게 말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직진만 계속하니까 너무 지루해! 제발 어디 다른 길로 들어서기라도 했으면 좋겠어!


그나마 아까 편의점에서 껌 한 통을 산 덕분에 우리는 딸기맛 껌을 씹으며 지루함을 달랬다. 그렇게 운전을 계속하던 중, A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계속 말을 거는데 바람소리가 심해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못 알아듣는 내가 답답했는지 A가 왼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A의 손을 따라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저어기 들판 한가운데에 '박카스' 음료 사진이 걸린 엄청나게 큰 간판이 보였다.


왜인지 캄보디아에서는 박카스를 정말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그게 고속도로 간판에까지 걸려있는 게 신기했나 보다. 나한테 저걸 보여주고 싶어서 계속 말을 걸었다는 게 참 그애다웠다.


한 절반쯤 왔을까, 지루함과 더위에 지친 우리는 카페와 슈퍼마켓, 그리고 주유소가 나란히 있는 곳에 정차해 잠시 쉬기로 했다.


아무도 없는 카페에 들어가는 우리를 봤는지 밖에 계시던 주인아주머니가 허겁지겁 들어오시더니 잠시만 기다리라며 누군가에게 손짓을 했다. 곧이어 아주머니의 딸이 들어와 주문을 받아주셨다. 시럽을 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데, 엄마를 찾는 건지 밖에서 놀고 있던 아기가 칭얼거리며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커피를 만드는 엄마의 모습이 재밌는지 빤히 구경하는 아기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한껏 미소를 지으며 두 모자를 바라보았다.


커피를 받아든 후 의자에 앉아 쉬는데 차가운 커피를 몇 입 마신 A가 갑자기 화장실에 또 가야 할 것 같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배가 아프단다. 주위를 둘러봐도 화장실이 보이지 않는데, 어쩌지?


-여기 혹시 화장실 있나요?

두리번거리던 우리가 주인아주머니께 묻자 그녀가 웃으며 카페 뒤편을 가리켰다. 저 멀리 화장실로 보이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낡거나 더러우면 어쩌나 싶으면서도 뭐 어떡해. 가야지. 혹시 사용하기 힘들 만큼 더러우면 어떡하냐는 내 질문에 겁먹은 표정을 지어 보인 A가 손을 흔들며 화장실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아직까지 후각이 돌아오지 않은지라 냄새를 맡을 수 없어 커피를 마시는 내내 인상을 찌푸리며 마셔야 했다. 커피 향 없는 커피는 정말 쓴 물 그 자체라는 걸,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향 없이 마실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달까. 내 몫의 커피를 다 마셨을 때쯤, A가 카페로 돌아왔다. 깨끗했냐는 질문에 그가 말끝을 흐렸다.

-깨끗했기는 한데.......


A가 찍어온 화장실 사진을 본 나는 당황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깨끗하기는 했다, 정말로. 근데 좌변기가 아니었을 뿐. A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호텔에 도착해서 가지 뭐.


-아직 한 시간은 더 가야 하는데?

배가 아픈데 참을 수 있겠냐는 내 질문에 그가 곤란한 표정으로 잠시 고민하더니 괜찮다며 테이블 위의 커피를 챙겨 카페를 나섰다. 나도 헬맷을 고쳐 쓰고 밖으로 나갔다. 아니,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운전하면서 배가 아프면 진짜 거슬릴 텐데. 괜히 걱정되는 마음에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A는 갑자기 괜찮아졌다며 손사래를 쳤다. 네가 그렇다면야.


지루한 고속도로는 한 시간 넘게 계속 이어졌다. 솔직히 캡으로의 여섯 시간도 이것보다야 덜 지겨웠다. 그때는 내가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나 싶었지만서도 초행길이라 모든 게 다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래도 캄보디아 고속도로에 오를 때마다 우리가 함께 모험을 떠나왔고 같이 헤쳐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늘 나를 벅차게 했다.


달리며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문득 고속도로 옆으로 지어진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집 아래로 기둥을 받쳐 지면과 건물 사이에 공간을 만들고 그곳을 그늘막이나 주차공간으로 쓰는 것 같았다. 캡이나 캄폿 주변에서는 이런 양식으로 지어진 집을 못 봤던 것 같은데, 신기했다. 중간에 한국어로 '스독스담 교회'라고 적힌 건물도 지나쳤다. 우리 둘 중에 이걸 누가 발견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나보다 눈이 좋은 A가 발견했을 것이다.



드디어 네 시간 만에 캄퐁톰에 들어서며 도로 위에서의 여정이 끝났다. 도시의 첫인상은 굉장히 소박했다. 와, 여기 되게 시골이네. 관광지 같은 느낌도 캡이나 캄폿보다 훨씬 덜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탓일 수도 있지만 우리 외에 다른 여행객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네 시 사십 분. 체감온도 40도의 뜨거운 한낮에 계속 도로 위를 달렸던지라 우리 둘 다 기진맥진했다.


숙소는 낡았지만 넓고 쾌적한 편이었는데, 이 근방에서 제일 저렴한 편 치고는 기대 이상이었다. 직원들도 친절하고 조식도 포함된 가격이라 불평할 만한 것 하나 없다고 생각했건만, A의 말로는 침구 냄새가 이상하다는 거다. 하지만 나는 코로나 후유증으로 후각을 잃은 상황이라 아무 냄새도 맡지 못한다는 것. 이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하하.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갈 때까지 A는 침대에서 나프탈렌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난다고 투덜거렸다. 내가 그를 보며 '나는 하나도 모르겠는데?'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자 A가 우는 소리를 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나프탈렌 냄새 말고도 꽤나 기분 나쁜 냄새가 풍겼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냄새였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저녁으로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던 우리는 그냥 가까운 곳에서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사실 다른 곳에 가볼까 했는데 문을 닫았는지 식당이 사라진 거다. 캄보디아에서는 정말 지도 어플을 마냥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차선책으로 가게 된 레스토랑은 꽤 아늑한 분위기를 풍겼다. 손님이 우리뿐이라 혹시 주문을 마감했나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재료를 손질하던 직원이 와서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라며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어린 소녀들이 주방 쪽에서 우리를 기웃거리는 걸 보니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식당인가 보다.  


꽤 다양한 종류의 피자와 햄버거가 적힌 메뉴를 보며 한참 고민하던 우리는 햄버거 두 개와 콜라 두 잔, 그리고 라지 사이즈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우리나라에서 햄버거는 패스트푸드로 분류되는 음식인 만큼 빠르게 조리가 완료되는데 캄보디아는 좀 다르다. 물론 버거킹이나 KFC 같은 곳은 다를 수 있지만 이번 여행에서의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일반 레스토랑에서 햄버거를 주문하면 왜인지 나오는 데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 배가 너무 고팠던 우리는 먼저 나온 콜라를 마시며 배고픔을 달랬다.


주문한 지 이십 분 정도가 지나고 음식이 모두 나왔다. 그런데 별생각 없이 주문했던 감자튀김이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적당한 얇기로 썰린 감자도 마음에 들었지만 그 위로 뿌려진 매콤한 가루가 너무 맛있는 것이다. 바로 튀겨 나와 뜨끈뜨끈한 건 덤이었다.


감자튀김 덕분에 꽤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호텔 위에 있다는 루프탑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작은 도시라 야경같은 건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주변에 우리 숙소보다 높은 빌딩이 없어서인지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호텔 루프탑에서 캄퐁톰 시내를 바라보니, 낮에 느꼈던 첫인상과는 또 사뭇 달랐다. 소박하고 작은 도시라고만 생각했는데 저 멀리까지 집들이 들어선 모습이 신기했달까. 이렇게 반짝거리는 모습을 보자니 도시의 규모 자체는 캄폿보다 훨씬 큰 것 같은데 어쩐지 인프라는 캡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다음날 낮에 구경할 이곳의 모습이 사뭇 기대가 됐다.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도 먹어야 하고 A는 조식 시작 전에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했기에 오늘은 일찍 잠에 들기로 했다. A는 그런 와중에도 전날 프놈펜 숙소에서 그림을 그렸던 게 좋았는지 오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이면지를 찾아 헤맸다.


중간에 물도 마셔가며 어찌나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는지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웃겨서 나는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중인 A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 애는 오늘도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인 카피바라를 그렸다. 그 옆에 태극기를 그려 넣고 싶은지 검색까지 해가며 국기를 열심히 그리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저게 … 나야?


나는 왜인지 후각이 돌아와야 출국 전 받을 PCR 검사에서 음성이 나올 것만 같아 계속 냄새를 맡으려고 이리저리 킁킁댔다. A는 침구에서 나는 냄새를 맡지 못하는 내가 운이 좋은 거라며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의 반응에 내가 입을 뾰로통하게 내밀었다.

-나는 안 좋은 냄새를 맡게 되더라도 얼른 후각이 돌아왔으면 좋겠단 말이야.


잘 먹어야 힘이 더 날 텐데, 냄새가 맡아지지 않아 음식이 대체로 심심하고 맛이 없게 느껴지니 전보다 입맛이 없었다.


-내일은 더 좋아질 거야.


A가 나를 달랬다. 그래, 내일은 좋아지겠지.


-토요일에 PCR 검사에서 음성이 나와야 할 텐데.


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걱정거리를 내뱉으며 한숨을 쉬었다. 제발 이제는 무사히 한국으로 출국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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