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약속
차를 타고 동네 수퍼를 가다 보면 두 가지 광경을 동시에 볼 때가 있다. 첫 번째 광경은 이 추운 겨울에 허름하게 차려입은 남루한 노인이 찢어진 박스 한 귀퉁이에 "help me! I'm hungry!"라고 써서 들고 동정을 바라고 있다. 또 하나의 광경은 타운에 건장한 소방서 대원들이 유니폼을 입고 왁자지껄 떠들며 소방 모자를 손에 들고 지나가는 차를 세우며 donation을 요청하고 있다.
이 소방대원들이 다가오면 가던 차를 멈춰 차 문을 열고 웃으며 지폐를 소방 모자에 넣어주게 된다. 동네를 위해 애쓰는 소방관들이니 당연히 donation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 남루한 구걸 노인을 볼 때는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차가 그냥 간다면 지나칠 수 있는데 만약 차가 멈춰 서 있을 때는 애써 그 노인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였다. 신호등이 빨리 파란 불로 켜지는 순간을 기다리는 동안이 길게 느껴졌다. 그런데 파란 신호등이 켜지고 차가 움직이는 순간 그 노인의 눈과 마주치게 되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마음이 참 불편했다. 상품들과 먹을 것이 산더미처럼 진열되어 있는 대형수퍼 앞에서 'I'm hungry' 라고 쓴 것을 들고 있던 그 노인이 자꾸 생각이 났다.
두 광경 모두 돈이라는 도움을 바라는 요청인데 왜 극명하게 한 쪽은 웃으면서 망설이지 않고 지폐를 주었고, 왜 다른 한쪽은 외면을 했을까. 사실 객관적으로 본다면 그 남루한 노인에게 기꺼이 지폐를 주어야 하는 것이 맞다. 소방대원들은 그 도네이션 된 돈의 일부로 파티를 한다고도 들었는데, 배고프다고 도와달라고 쓰인 찢어진 박스 한쪽을 들고 있던 그 노인은 왜 잠시나마 외면하려 했을까.
뉴욕 시내를 돌아다니면 홈리스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동정을 요구하는 행위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들 대부분의 사정이 딱하겠지만 대부분의 행인들 역시 그 행위들을 무시하고 지나친다. 동정을 요구하는 많은 이들이 마약을 사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동정의 행위로 얻은 돈으로 마약을 구입한다. 따라서 그들의 행동에 반응하지 말고 그냥 지나치라는 조언(?)을 듣는다. 우리들이 그들 동정에 반응하여 지폐를 준다면 결국 그들의 삶을 더 망가뜨릴 수 있다는 이유이다. 실제로 동정을 요구하는 이들이 마약에 취해 있다는 것은 눈빛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어쨌든 그런 조언(?) 때문인지 아무리 딱한 사정인 경우라도 그냥 지나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또한 이 미국땅에서 사지 멀쩡하면 몇 시간만 일해도 밥은 굶지 않을 텐데 라며 게으름을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눈이 마주친 적은 별로 없었다. 눈이 마주쳤더라도 그냥 좀 안되었다는 표정으로 쉽게 돌아서곤 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뭔가 말로 표현이 안 되는 절절함과 만고풍상을 지나온 한 인간의 초점 없는 눈에서 애절함을 보았다. 구걸을 하는 그 노인의 눈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추위에 엉성하게 서있던 그 남루한 노인의 배고픔이 절실했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but too late!!
자의든 타의든 우리는 세상에서 외면하는 것에 대해 배우고 산다. 그냥 지나치라는 조언(?) 대로 살아야 하는 상황에 자주 맞닥뜨리며 산다. 그리고 외면하고 지나치는 상황에 대해서 우리 나름대로 합리화를 하며 산다.
다른 사람이 도움을 주었을 거라고 이번에도 합리화를 하고 말았다. 나는 어떤 사람, 어떤 어른인가 생각했다. 구바씨와 개인적인 약속을 했다. 길에서 동정이 필요한 노인들과 마주치게 되면 사실 여부를 떠나 노인들의 요청을 들어주자고. 그들의 삶이 본인들의 잘못이었던 아니던 한 끼 배고픔은 면하게 하자고. 그리고 장애자들의 요청도 들어주자고. 그들이 하루하루를 지탱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기꺼이 우리들의 작은 지폐나마 쥐어주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