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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May 17. 2024

나는 `눈물의 여왕` 금사빠

나는 주인공에게 끌려다닌다.


지난 몇 주간 나는 한 가지에 집중도가 최상이었다. 주말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심지어 알람 설정까지 해 놓았다. 주말의 모든 약속은 취소했고 집안에서 칩거했다. 야간 산책을 좋아하는 강아지도 억지로 대낮에 산책을 시킨다. 주말을 집에서 보내고 일요일 밤늦게 사택으로 귀사 하는 막둥이 딸에게  `날 이 밝아 있을 때 가라`고 성화를 부린다. 나의 주말 밤 시간을 비워 놓기 위해서다. 오늘은 또 몇 번이나 심쿵하고 눈물이 날까 생각하면서 휴지도 준비하고 커피도 한잔 준비한다. 핸드폰도 무음 설정으로 바꾸고 텔레비전 앞에 앉는다. 그리고 오매불망 기다린다. 드디어 주말 저녁 9시 10분 드라마가 시작할 시간이다.


나는 드라마에 쉽게 끌려 다닌다. 다음 회를 기다리는 게 어렵다. 너무 감질나고 애가 탄다. 드라마 작가가 조몰락거리는 대로 내 마음은 농락당한다. 울리면 죽어라 울고 웃기면 미친 듯이 웃어주고, 분노를 띄우면 여지없이 분개한다. 다음 회 차를 기다리는 일주일 내내 그 마음이 그대로 간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가 길면 길수록 나는 폐인이 되어 간다. 일상이 마비다. 슬픈 드라마를 볼 때는 주인공과 같이 우울하고 기운이 없고 나도 괜히 슬픈 날을 보낸다. 의협심이 강한 주인공을 만나면 쓸데없이 행동들이 커 진다. 몇 해전 어떤 드라마에 빠졌을 때는 은근히 말투도 따라 하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드라마를 하루에 보려고 한다. 드라마의 마지막 회가 종료되고 하루에 몰아보기가 가능할 때 그때를 기다린다. 아무리 재밌다고 주변에서 분위기를 띄워도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궁금하지만 참고 참는다. 드라마가 끝나기를 기다려 하루 이틀에 몰아보기를 하려고 사전 지식만 모은다. 주인공이 누구인지, 작가가 누구인지, 연출은 어떤 분이 했는지 내용은 어떻게 흘러가는 것이지 관심이 많다. 객관적이고 분명한 작품 평들도 읽어둔다. 하지만 사실 그런 사전 지식들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드라마 속 주인공의 감정에 금방 몰입되고 빠져서 울고 웃고 감정에만 충실해 있게 된다.


이번에는 그 마저도 실패다. 드라마 ‘눈물의 여왕’은 본방 사수를 하려고 기를 썼다. 결혼 3년 차 젊은 부부가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랑을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다. 단연 두 주인공의 캐미가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주연 배우 두 분의 표정과 눈빛은 그야말로 내가 주인공인 듯 설레게 하고 마음 아프게도 했다.  화면을 정지시키고 싶게 만드는 배경들과 적절한 ost `미안해 미워해 사랑해 `가 주는 기가 막히게 애틋한 분위기들이 내 맘을 콩닥거리게 했다. 그래서 주말을 기다렸다. 드라마에 빠져 있노라면 일주일 내내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눈물의 여왕 주인공처럼 사랑스러웠다. 만나지는 남자들은 모두 남자 주인공 배우처럼 의젓하고 멋있고 똑똑하고 다정하다. 같이 일하는 여자 동료들은 사랑스럽고 야무지고 예쁘다. 드라마가 진행되는 몇 주 동안 내내 내 입에서는 ‘어머 멋있어. 어머 사랑스러워’가 연발이었다. 눈이 멀고 마음도 멀었다.


첫사랑과 결혼한 나에게 드라마와 소설은 연애 선생이다.  딸들이 놀린다. "우리 엄마는 금사빠가 맞아. 금방 사랑에 잘 빠져요." "우리 엄마는 사랑을 글로 배우고 드라마로 배운다니까"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환상이 많단다. 금사빠는 항상 장점만 본다. 눈에 띄는 장점은 빨리 찾아낸다. 거기에 울고 웃고 감정에 너무 충실하다. 바로 따라서 행동하고 실천한다. "미스터트롯에 빠져서 몇 년을 보내시더니 이번에는 눈물의 여왕이다".라고 딸들이 수군거린다. 몇 년을 집안에 트롯이 울려 퍼졌는데 지금부터는 눈물의 여왕 ost가 울리고 있는 게 집안의 달라진 점이다.


 나는 나도 인정하는 금사빠!! 감정 조절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감정에 곧장 끌려간다. 내 감정에는 제어 장치가 없나 보다. 감정의 흐름을 제어할 줄 모른다. 드라마는 끝이 났는데 나의 모든 미디어 알고리즘이 계속눈물의 여왕을 보여준다. 일상이 유지가 안된다. 빠져나와야 한다.


눈물의 여왕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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