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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모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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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Feb 29. 2024

이끼조차 예쁘다

또다른 사랑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에로스, 스토르게, 필리아, 아가페등의 네 종류의 사랑으로 구별을 한다. 이중 스토르게는 일반적으로 부모가 자녀에 대해 느끼는 사랑이라고 한다. 부모는 자녀가 잘났든지 못났든지 간에 감싸고 사랑한다. 특히 모성 본능은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자녀를 감싸고 보호하려고 한다. 이처럼 스토르게는 혈연관계에서 본능적으로 우러나오는 친밀감, 유대감, 의존성을 가진다.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비대칭적이다.     


자녀를 가진 모든 부모의 마음이 이런 스토르게 사랑을 한다. 나도 우리 세 자녀에게 이런 사랑을 했다. 우리 부모님에게서 역시 이런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얼마 전 묘한 감정을 느꼈다. 단 한 방울의 피도 섞이지 않은 낯선 사람에게 내 몸 안에서 스토르게 같은 사랑이 불같이 솟아올랐다. 그 사람을 향해 무조건 아낌없이 주고 싶고, 무조건 보호해 주고 싶은 사랑이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요, 누가 조정한 것도 아니요. 그 누가 부탁 한 것도 아닌데 내 안에서는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이 샘물처럼 퐁퐁 솟아올랐다.     



그 대상은 큰딸의 예비 신랑이고 내게는 예비 사윗감이다. 사윗감을 본 순간부터 어디서 저렇게 어여쁜 사람이 우리에게 왔을까 감동했다. 사윗감은 장난기와 지혜가 가득한 밝은 눈빛과 예의 바름이 몸에 배어 있었다. 움직이는 행동 하나하나에 타고난 배려심이 있었다. 예의와 배려는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습관처럼 몸에 익혀져 있는 태도 들이다. 사람의 태도에는 시간이 필요함을 알기에 사윗감의 일상의 행동들에 나는 반했다. 거기에 우리 딸을 사랑한다는데 어찌 예쁘지 않겠는가. 나는 사윗감이 어찌나 사랑스럽기만 한지,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갑자기 모든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저런 사랑을 내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저런 사랑이 오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누구에게 들킬까 봐 제대로 표현도 하지 않았다.     


지난 설날에 사윗감은 더덕을 들고 우리 집에 왔다. 우리 딸내미가 무심결에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 더덕구이라고 말하는 것을 기억해 두었다고 한다. 나는 사윗감이 다녀간 지 며칠 동안 보기도 아까워서 더덕을 꺼내지도 못했다. 열심히 생각하고 골랐을 정성을 며칠이고 바라보기만 했다. 며칠의 시간이 지나 할 수 없이 신선도가 걱정이 되어 더덕을 꺼내 껍질을 벗겼다. 껍질도 많이 벗겨질까 조심조심 벗겨냈다. 내가 산 더덕이면 감자칼로 벅벅 벗겨냈을 것이다.  조심스레 정성 들여 양념을 하고 냉장고에 바라보기 좋게 보관했다. 먹을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다. 그리고는 더덕을 덮고 있던 이끼도 버리기가 아까워서 화분 하나에 곱게 담아 두었다. 청소를 하다가 이끼를 본 큰딸이 물었다.     

“엄마!! 이끼는 뭐여?”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더덕을 덮고 있던 것이여. 그런데 갸가 선물해 준 것이라서 그런지 이끼도 너무 예뻐서 버릴 수가 없더라.” 내 말을 들은 큰딸은 한참을 웃었다. 한참을 웃더니     

“다행이다. 엄마가 그렇게 이뻐해 주니 너무 좋아”라고 말하면서 행복해한다.     


행복해하는 딸을 보니 이끼가 더 예쁘다. 살아나라고 물도 주고 흙도 덮어 주었다. 더덕의 뇌두도 그 속에 심어 두었다. 싹이 나건 말건 그건 나한테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저 그 친구의 정성이 담긴 모든 것이 내게는 귀하고 소중할 뿐, 그래서 더 애틋하게 관리를 한다. 내 자식이 아닌 남의 자식도 이렇게 예쁠 수가 있구나,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한쪽이 있었구나, 요즘 나는 내가 누군가를 이토록 일방적으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나에게 감동한다.     


자식의 행복은 나에게 수 만 배로 전이되는 것인가 부다. 딸아이의 사랑하는 마음이 내게 몇 배로 크게 느껴지고 딸아이의 행복한 얼굴은 나에게 온 세상을 다 가진 기쁨을 준다. 나의 이렇듯 행복한 마음으로는 더덕을 덮고 있던 이끼조차 어찌 예쁘지 않겠는가!


이끼아래 더덕의  싹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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