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반려견 상구의 매력은 시크함이다. 식구들이 출근준비를 하느라 부산을 떠는 시간에 상구는 시선 한번 주지 않는다. `잘 다녀오시든지요 ` 하는 표정으로 이불속에서 게슴츠레 바라만 본다. 하나 둘, 가족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심지어 가족들이 `상구야 잘 다녀올게` 인사를 하고 나가는 형국이다. 그래도 상구는 이불속에서 꿈쩍도 않는다. 아침의 적막과 고요를 깨지 말아 달라는 표정으로 상구는 미동도 없다.
저녁에 상구는 팔랑개비 같다. 들어오는 사람마다 격하게 반기느라 꼬리가 휠 지경이다. 몇 시간째 꼬리를 흔들어 대는 통에 몸이 휘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큰딸이 들어오면 살살 점잖게 꼬리를 흔들며 따라다니고, 둘째가 들어오면 세상 억울한 일이라도 당한 것처럼 꺼이꺼이 반긴다. 막내가 들어오면 껑충껑충 뛰어오르면서 격하게 반긴다. 하지만, 내가 들어오면 내 주위를 한 바퀴 쌩 돌고 그냥 들어간다. 반기는 것인지 들어왔으니 예의를 다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태도이기는 하다. 그래도 잠깐 얼굴이라도 비춰 주니 나는 감사할 따름이다.
추운 겨울 눈길에 버려진 상구가 우리 집에 온 지 8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 사이에는 무게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사랑이 생겼다. 우리 가족 대화의 중심에는 항상 반려견 상구가 있고, 상구가 주제인 이야기에는 다정함이 묻어있다. 가족 중 어느 누구도 둘째의 깔끔함과 감정의 예민함을 견디기 어려웠지만 상구는 가볍게 둘째를 무너뜨렸다. 퇴근 후 움직이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꼼짝을 안 하던 큰딸을 자연스럽게 집밖으로 끌고 나오는 것도 상구였다.
딸들은 자신들의 옷 한 벌을 살 때는 수십 개의 인터넷 채널을 넘나들면서 상구 옷 한 벌은 단숨에 구매를 해 버린다. 자신들은 쑥대머리 위에 모자하나 눌러쓰고 상구에게는 온갖 장식으로 치장을 하고 산책을 시킨다. 집으로 귀가하는 손길에는 상구를 위한 장난감과 간식이 들려 있다. 예쁜 것을 보면 상구한테 맞을까 먼저 생각하고 좋은 것을 보면 상구에게 가져다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게 사랑을 하는 마음이다`라는 말에는 온 가족이 끄덕끄덕 긍정을 한다.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은 상구가 이제 노인이 되었다고 한다. 작년부터는 관절 치료약과 안약을 처방받았다. 간식도 치아에 좋은 것으로만 골라서 먹이고 매일 양치도 시키라고 권고받았다. 상구는 심하게 뛰는 것도 줄여야 한다고 해서 한 시간씩 하던 산책 시간도 이십 분으로 줄였다. 딸들은 매일매일 이것저것 상구의 건강을 위해 달력에 표시를 하면서 챙기고 있다.
우리 집에는 반려견 상구의 달력이 있다. 5 년 전부터 상구의 1년 치 기록을 달력으로 만들고 있다. 매년 12월이면 온 가족이 일 년 동안 찍어 두었던 상구 사진을 놓고 편집을 하느라 바쁘다.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시간을 남기고자 하는 마음에 사진을 찍었던 날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집중을 한다. 물을 싫어해서 수영을 안 하려고 버둥거리던 여름날도 기억하게 되고, 상구가 으르렁대며 쫓아가던 오리 떼가 돌연 푸드덕 날아오르자 기겁을 하고 놀라던 상구의 모습도 떠 올라서 이야기 꽃을 피우게 된다.
달력 속에서 상구는 철없는 망아지같이 뛰어다니던 시절이 있다. 달력 속에서 상구는 식구들을 보고 마냥 헤프게 웃는 참 쉬운 아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기도 하다. 간식으로 약 올리는 누나들에게 애원하는 표정의 상구도 있고, 사내 녀석 상구가 예쁜 원피스를 입고 공원을 질주하는 모습도 있다.
달력을 편집하면서 상구 이야기는 계속된다. 지난해의 달력 속에서도 상구의 이야기가 있고 내년을 기약하면서 만드는 달력에도 상구의 이야기는 들어 있다. 어느 해 인가는 달력업체에서 상구달력이 달력 광고로 나와 있어서 온 가족이 놀란 적도 있다. 상구의 이야기로 대화가 시작되면 우리 가족은 끝없이 이야기꽃을 피운다. 삼십 년을 훨씬 넘게 살아온 부모 자식 사이보다 겨우 8년을 같이 살아온 상구 이야기가 훨씬 몇 배나 더 많은것 같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상구 이야기 달력을 만들고 싶다. 5년이고 십 년이고 상구달력이 계속 이어지기를 간절히 또 간절히 맘속으로 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