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모녀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인트리 Dec 18. 2023

어둠이 무서워요.

새삼스럽게 어둠이 보인다.

  

어려서부터 들판은 그곳에 있었다. 내 마음의 안식처 같은 들판이다. 저녁을 먹고 호기롭게 밤의 산책을 나갔다.  시골의 밤은 유난히 어둡다. 칠흑 같다고 하는 표현이 정말 맞다. 눈앞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 수많은 별들이 내려앉은 고요한 들에는 어둠만이 있었다. 처음에는 넓은 들이 주는 넉넉한 어둠을 즐겨 보고자 했다. 한걸음 한걸음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걸어 들어가는 내 발걸음 소리가 크게 들렸다. 점점 내 발소리가 거슬렸다. 내 귀가 너무 예민했다. 등 뒤를 따라오는 내 발걸음 소리만 슬슬 무섭게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사방에서 어둠이 내 몸을 옥죄여오고 있는 듯했다. 이미 나는 들판의 어둠에 갇혀 있었다.   

   

어릴 적 우리 논을 가려면 큰 개울을 건너가야 했다. 그 개울에는 항상 물이 넘실대고 있었다. 그 긴 개울에 다리는 왜 그리 좁았던지, 나는 물속에 빠질 것을 걱정하여 다리 중앙으로 몸을 곧추 세우고 걸어가곤 했다. 몸이 한쪽으로 기울면 물귀신이 잡아당긴다는 어른들의 놀림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새참 심부름이라도 가는 날에는 멀리 우리 논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만 쳐다보면서 걸었다. 물을 쳐다보면 빠질 것 같은 공포가 어린 나를 더욱 겁이 나게 만들었다. 그나마 개울을 건널 때마다 멀리서 나를 지켜보는 엄마를 바라보면서 걷는 게 유일한 안심이었다.


 

어둠 속에서 걷다 보니 그 개울이 어느새 눈앞에 있었다. 장마가 질 때면 누가 빠져 죽었다고 소문나던 그 개울. 어두운 밤이면 도깨비불이 춤을 추고 논다고 하던 그 개울. 넘실대는 물속에 물귀신이 있을 것만 같아서 어린 나를 공포에 떨게 했던 그곳이 어느새 내 눈앞에 있었다. 갑자기 무서움이 엄습했다. 공포로 숨이 막혔다. 어둠이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부랴부랴 핸드폰을 꺼냈다. 쉬고 있을 동생을 불러냈다. 저만치 어둠 속에서 동생의 바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동생의 걸음 따라 손전등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움직이는 손전등 불빛만 보아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언니를 걱정하는 마음에 빠르게 달려오는 동생의 발걸음은 더더욱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어둠의 공포는 그토록 무섭게 다가오더니 동생의 발소리에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짝 눈앞으로 다가온 동생은

“언니, 별이 진짜 예쁘네. 어두우니까 더 예뻐!!” 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동생의 감동이  어둠에 떨었던 내 귓등으로 흘러갔다.

“와~ 나는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어. 무서워지기 시작하니까 걷잡을 수 없이 더 무서워지더라. 그래서 전화했어” 안도하는 내 말을 듣고 동생은

“울 언니 겁쟁이네. 그러니까 이 밤중에 혼자 산책을 왜 나가” 하면서 동생은 나를 놀린다.

 어둠은 너무나 컸다. 주변의 모든 것을 삼키고 내 마음도 삼켜버렸다.  나이 예순에 겁쟁이가 되었다.   

  

나는 평소에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집을 나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새벽 출근을 했다. 여름에 신선한 새벽 공기는 가슴속까지 뚫어 주는 산소 파이프 같았고 가을의 새벽공기는 실크 스카프 같이 부드러웠다. 겨울의 싸늘하고 냉랭했던 새벽 공기는 더 말할 것 없이 그냥 차가웠다. 그 차가움 속에 얼굴을 내놓고 일부러 추운 공기를 깊이 마시면서 걷었다.  어두운 새벽공기의 차가움을 즐기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시골을 다녀온 후 요즘은 달라졌다. 그냥 예사로이 보이던 어둠이 아니다. 어둠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둠이 무서웠을까. 어둠 속에 섞인 이야기들이 무서웠을까. 오늘 아침은 어제 보다 더 어둡다. 겨울로 가는 길이라서 그렇다고 하지만 어둠이 너무 짙다. 출근 때마다 달려드는 우리 강아지 상구를 밀어내고 계단을 내려가면 문 밖에 어둠이 두  팔을 벌리고 있다. 그 어둠 속에 나를 밀어 넣으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서 밖으로 나가서 어둠을 물리치겠다는 피 끓던 젊은 나이도  아니다. 이참에 내일부터 새벽길에 손전등을 들고나갈까 보다. 어둠아 물렀거라.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는 나이를 먹은 게 아니라 세월을 가진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