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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지 Oct 27. 2024

1년 된 남자친구랑 길 걷다 똥 싸다 (1)

 이미지는 고사하고, 인간성까지 잃고 싶진 않아



회식날이었다.

우리 팀에는 1달에 한 번, 그 달에 생일을 맞은 팀원들을 모아 생일파티 겸 점심 회식을 한다.

그날의 회식메뉴는 초밥 그리고 동물성 생크림 100% 를 자랑하는 생크림 케이크였다.



당시의 사진이 없어서 비슷한 이미지로 대체합니다.



비싼 초밥이라 그런지 맛있어서 과식했고,

생크림이라면 한 입만 먹어봐도 식물성인지 동물성인지 판별할 수 있는 나의 입맛에도 100% 동물성이었던 아주 맛있는 케이크도 양껏 먹었다.



여름에는 탈이 잘 나서 먹지 않는 날생선 초밥이었지만, 괜찮았다.

아니 분명 그때까진 괜찮았었다.

유당 불내증이 있었지만 이번 케이크는 괜찮았다.

퇴근 전까지는 괜찮아서 오후 내 화장실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오후 업무를 끝내고, 회사 CC 이자 갓 1년 정도 된 내 남자친구와 함께 퇴근을 할 때 즈음,

약간 신호가 왔다.

하지만 이미 만나버린 남자친구, 5분 정도는 회사에서 이미 걸어온 상황을 생각해서 분명 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냥 식당으로 직행했다.



저녁으로는 짜장면을 먹었는데,

간짜장으로 유명한 집이라 그런지 역시 아주 맛있었고, 탕수육과 곁들여 맛있게 먹었다.



맛있게 먹어서 그런지 나올 때쯤 아팠던 배는 괜찮아졌고,

운 좋게 배가 오늘 잘 받아준다고 생각하며 뿌듯하게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식당에서 집까지는 약 40분 거리로, 버스를 30분 타고, 10분을 더 걸으면 되는 거리였다.

내리기 두 정거장 전부터 갑자기 신호가 와서 배가 많이 아팠다.


아 X 됐다...

그냥 최대한 안 아픈 척해보려 해도, 숨길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 계속되었다.

안색이 안 좋아지니 나를 옆에 앉은 남자친구는 너무도 스윗하게 걱정을 해주는데, 차마 1년 된 남자친구한테 똥 지릴거같아라고는 할 수 없어 생리를 운운하며 그저 아프다고만 했다.



똥을 참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똥을 참는 고통은 2가지이다.

첫 번째는 정말 물리적으로 나올 거 같은 아래쪽에 힘을 주는 것.

두 번째는 너무 아파서 정신이 혼미해질 거 같은 배 쪽 고통을 견뎌내는 것.


원체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유당 불내증으로 다져진 정신력이었기에 첫 번째는 일도 아니었고,

중요한 것은 두 번째 고통.



'어떻게든 참아보자'

'아까 회사에서 나올 때에도 좀 있으니까 괜찮아졌으니 분명 존버하면 괜찮아질 거야'

'남자친구한테는 뭐 사 오라고 시키고 집에 먼저 들어가서 싸야겠다'



위의 같은 생각들을 하며 식은땀 흘리며 필사적으로 참았더니 기적적으로 내릴 즈음에는

많이 아프긴 하지만 걸을 수는 있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최대한 빨리 걸어만 보자.

이미지는 못 챙기더라도, 최소한 인간성은 지키자라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디뎠지만,

정거장에서 고작 10걸음도 멀어지지 못하고, 나는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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