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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는살림 Apr 30. 2022

결국 모든 소비는 옳다

망한소비 되살리기. 소비의 정신승리

 시간이 나면 집을 둘러보면서 비울만한 물건은 없는지 살펴봅니다. 고민 없이 1초 만에 비워야겠다 하는 물건이 있는 반면, 분명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없어도 되는 것인데 본전 생각에 비움을 망설일 때가 있어요. 아까워서, 언젠가는 사용할 것 같아서 가지고 있어도 언젠가는 내 손을 떠난다는 것을 경험했죠. 어울리지 않지만 예뻐서 구입했던 8만 원짜리 치마가, TV가 있으면 무조건 있어야 된다 생각해서 구입했던 20만 원 상당의 거실장이 그렇게 저희 집을 거쳐갔습니다. 그러고는 다짐했어요.


'사기 전에 충분히 고민하고 사야지!!'



 

아이가 초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와 엄마를 보자마자 배고프다고 했던 어느 날, 학교 근처에 있는 빵집에 들어갔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크로와상이랑 식빵, 캐릭터 빵을 담고 계산대에 가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옆에 나란히 서서 기다리던 아이의 시선이 캐릭터 젤리에 집중! 자주 가는 빵집이라 계산할 때마다 캐릭터 젤리를 사고 싶다는 얘기를 하곤 했는데, 먹는 게 아니라며 딱 잘라 말했었죠. 그동안 사달라고 떼쓰거나 조르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날따라 '먹고 싶다~사고 싶다~' 눈빛이 이글이글, 젤리를 사지 않으면 빵집 문을 나서지 않을 것처럼 강하게 말하더라고요.


 저는 경험을 통해 알아요. 아이가 캐릭터 젤리를 먹어보지 않았지만 좋아하지 않을 것을요. 서걱하고 질겅거리는 식감을 좋아하지 않고, 강한 인공향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알록달록 예쁘기만 한 젤리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엄마의 직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빵집의 캐릭터 젤리는 다를 수 있지 않을까? 다른 건 몰라도 그 젤리를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거죠. '사줄 것인가 말 것인가...'고민을 했습니다.


젤리의 가격은 3,000원.

식빵 하나를 더 살 수 있고 크로와상을 하나 더 살 수 있는 3,000원을 아낄 것인가,

빵집에 갈 때마다 아이와 실랑이할 것인가.

아이의 간절한 마음에 응답할 것인가.

적당히 핑계를 대고 그 상황을 모면할 것인가.


그날따라 빵집에 사람들이 많았고 아이의 우는소리가 듣기 싫었던 저는 캐릭터 젤리를 계산대에 올려놨습니다. 귀여운 곰돌이 젤리를 손에 쥐고 세상을 다 가진듯한 표정을 짓는 아이를 보며 사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에 와서 들뜬마음으로 곰돌이 귀를 한입 베어 물더니 아이의 표정이 이상해 집니다. 천천히 씹고 삼킨 뒤 나머지 귀를 베어 물고 씹더니 휴지를 달라고 해요.  '엄마 나 이거 꼭 다 먹어야 하는 거야?'


 혹시 아이가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제 예상대로 그 젤리는 생긴 건 귀여워도 맛은 아이의 취향이 아녔습니다. 먹다 남긴 젤리를 보면서 3,000원이 아깝기도 했지만, 좋은 경험을 한 일종의 수업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3천 원이면 엄밀히 말해서 그리 비싼 수업료는 아니지요). 아이는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진 경험을 해서 좋았고, 막상 먹어보니 맛이 없다는 것을 경험했고, 다시는 빵집에서 그 젤리를 사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을 테고, 더 이상 사고 싶다-안된다 실랑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값으로 3,000원은 충분히 지불할만한 가치가 있지 않나요?


 물건들을 비우면서 후회했던 소비를 돌아봅니다. 그것을 사지 않았다면 그리고 비우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것들을 말이죠. 구입한 뒤 한 두 번만 입었던 멀쩡한 8만 원짜리 치마를 통해 '나한테 꼭 어울리는 옷을, 자주 입을만한 옷을 사야지' 다짐했어요. 20만 원 상당의 거실장을 구입하고 비운 뒤, '구색을 갖추기 위한 소비가 아니라 꼭 필요한 소비를 하자' 다짐했죠. 괜한데 돈썼다 후회하지만, 돈을 썼기 때문에 깨달은 것도 있으니 어찌 됐든 소비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면 결국엔 옳은 소비가 되는 게 아닌가 정신승리를 해봅니다. '내가 그것을 왜 샀을 까', '이걸 사고 어떤 생각을 했을 까', '다음에 같은 순간이 온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는게 좋을까' 그러다 보면 결국 후회하는 빈도수가 줄어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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