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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내는살림 Oct 21. 2023

비우면 그 자리에 채워지는 것들

물건을 비우면서 했던 생각들

미니멀리스트는 아니다. 하지만 정리를 하면서 수많은 물건들을 비웠다. 자리만 차지하면서 쓰진 않았던 것, 있는지도 몰랐던 것, 잘 썼지만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 등등 집정리를 하며 물건을 비울 때마다 이런 생각들을 했다.





이렇게 많이 살 필요 없네. 

특히 아이들 물건은 구입할 때 똑같은 것을 두세 개씩 사곤 했다. 낱말카드를 벽에 붙일 수 있지만 쉽게 떼어낼 수 있는 스티커는 한 세트만 필요했는데 배송비 3000원이 아까워서 4,000원짜리를 세 개를 샀다. 결국 나머지 두 세트는 사용하지 않은 채 자리만 차지함. 외출했을 때 필요한 휴대용 음식용 가위도 '혹시 모르니'하는 마음으로 두 개를 구입했지만 정작 쓰는 건 한 개였다. 자주 사용할 것 같은 건 두세 개씩 구입하곤 했는데 물건을 정리하고 비우며 정작 잘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니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필요한 것은 딱 필요한 만큼만 구입하고 있다. 배송비가 아까워도 결국 배송비보다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되니 개의치 않기로 했다. (주변분들에게 배송비 아끼자고 종종 필요한지 물어보기도)


굳이 세트로 구입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혼수 준비할 때 냄비, 그릇, 칼 등등 무조건 세트로 구입했었다. 세트구성이 가격이 더 저렴하기도 했고 필요한 것이니 세트로 만들어놨을 거라는 믿음으로. 살림을 하다 보니 냄비나 칼도 쓰던 것만 쓰게 되고, 안 쓰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안 쓴다는 것을 알았다. 친정엄마한테 이야기했더니, '그거 야채 쪄먹을 때 좋은데!', '곰국 끓일 때 있어야 해', '야채샐러드 해 먹을 때 얼마나 편한지 아니~!'라 말씀하신다. 


수십 년간 살림했던 엄마의 지혜를 무시할 수 없는 고작 몇 년 차 주부지만 그거 몇 년 했다고 나에게 맞는 살림방식이 생겨서 엄마가 좋다 해도 나에게는 맞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하는 생각에 몇 년은 들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용하지 않는 것을 깨닫고는 과감하게 필요한 분에게 나눔 했다. 


따지고 보면 경험이 쌓여서 판단할 수 있는 거라 구입 당시에 이것이 필요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필요한 것만 구입해서 쓰면서 불편함을 느낄 때 하나씩 사면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세트구성보다는 비싸게 구입해야겠지만, 한자리 차지한 물건을 볼 때마다 '저걸 써야 하는데, 안 쓰는데 어떡하지'스트레스받는 것보다는 비싸게 사는 것을 선택하겠다. 


그렇게 구입하면 좀 더 애지중지 잘 사용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하니 더더욱.


부지런히 써야지

노트 구입하는 취미가 있었다. '구입'만 하는 것. 표지가 예쁘거나 레이아웃이 신기하면 '두면 쓰겠지'하는 생각으로 샀다. 그렇게 샀던 노트가 수납장 구석에 하나, 옷장 서랍에 하나(도대체 왜 옷장서랍에! ㅎㅎ), 책상 서랍에 두어 개, 모아놓으니 제법 많다. 그냥 버리자니 아깝다. 이건 정말 아깝다는 생각에 쉬이 비우지 못했다. 필요한 분에게 나눔 할까 생각도 했지만, 평소에 메모하는 것을 좋아하니 두면 '진짜로' 쓸 것 같았다. 


그래서 다 꺼냈다. 한 곳에 모아두고 부지런히 쓰기로 다짐했다. 


주로 보관하지 않아도 되는 메모를 할 때 쓰자 정하고 할 일 목록을 쓰거나 한 주 식단표를 적는 식으로 한 두장씩 적었다. 글을 쓸 때 하는 자질구레한 메모도, 일할 때 필요한 자료를 수집할 때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중이다. 


불필요한 것을 비우겠다는 생각으로 구석구석 들여다보니 쓸만한데 숨겨져 있는 것들을 종종 발견하기도 한다. '이게 여기에 있다는 걸 몰랐다니.'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발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역할을 정해서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잘 쓰고 있다. 



이밖에도 '없어도 되는 거였네', '다시는 안 산다.' 등등 본전생각에 돈이 아깝기도 했고, 그 시절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충분히 후회하고 자책하면서 얻은 게 있다면 앞으로 물건을 구입할 때의 기준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취향은 무엇인지 명확한 기준이 없었는데 남길 것과 비울 것을 고르는 과정을 통해 미니멀한 디자인을 좋아한다는 것, 복잡한 기능이 있는 것보다 관리가 편한 것, 세트보다는 마음에 드는 단품, 가격에 맞춰서 구입하기보다는 정말로 마음에 드는 것을 구입해야겠다는 나만의 기준이 생겼달까. 


지금까지 버리거나 나눔 한 것, 기증한 것들을 값으로 메기면 적은 돈을 아닐 테다.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만, 앞으로 더 낭비하지 않게 해 준 수업료라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조금씩 내 취향대로 채워지는 공간이 생기고 있다. 집이 좋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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