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을 잃어가는 사람
"여기에서는 천천히 가야 돼~"
얼마 전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던 놀이터의 한 귀퉁이. 어느새 그 자리 근처에만 가면 달리다가도 멈칫 속도를 늦추거나 비잉 돌아가는 꼬맹이였다.
돌부리에 걸리고, 웅덩이에 빠지고, 나무뿌리 사이에 끼이고, 넘어지고 다치고 깨지면서 배우는 것들이 있다.
여기는 내가 조심해야지.
이곳은 나에겐 너무 높아.
이건 나한텐 어려워...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서 나의 크기와 깜냥을 판단하기 시작한다.
'내가 나의 한계를 아는 것.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아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아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철이 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가 본 길로,
이왕이면 해왔던 대로,
이왕이면 보던 걸로,
이왕이면 익숙한 것을 선택하는 것.
한 인간이 안전하게 실패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일찍부터 몹쓸 철이 들어버린 아이는 일찌감치 자신의 한계를 정해두었다.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누군가가 슬프거나 아프거나 힘들까 봐
굳이 모험하거나 떼쓰거나 드러눕지 않았다.
그렇게 안전하게, 살던 대로, 하던 대로 살던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기 시작했다.
난 못할 것 같은데..
나는 부대끼는데...
나한테는 무리인데..
싶은 일들을 하나 둘 해나가며 이 나이에 돌부리에도 걸려보고 웅덩이에도 빠져본다.
이제야 철이 들려나.. 싶은 나이에
서서히 철을 잃어가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