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라는 이름의 순리

우리 같이 하늘나라에 가자

by 글짓는써니

"지율아, 우리 같이 하늘나라에 가자."


할아버지가 계신다는 하늘나라에 대한 궁금증이 극에 달한 어느 날,

친구에게 권한 이상한 초대이자 무시무시한 악담.



'할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꼬맹이는 수시로 우리 할부지는 어디 계시냐며 물었다. 제사나 차례 때에도 할아버지 드리는 거라며 상을 보지만 정작 기다리던 할부지는 코빼기도 보이질 않으니 궁금할 법도 했겠다. '죽음'에 대해 그저 하늘나라에 계시다며 얼버무렸던 것이 문제였다.


하늘나라가 얼마나 포근하고 좋은 곳이라고 느꼈던 건지 엄마, 아빠에게도 하늘나라 동반을 권하곤 했다. 그랬던 아이가 덩달아 친구까지 초대하기 시작한 거였다. 옆에 있던 친구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한바탕 웃고 말았지만 이젠 알려줄 때가 된 것 같았다.





어디를 만져도 둥글둥글한 꼬맹이를 무릎에 앉히고, 보송하고 따수운 배를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늘나라에 계시는 할아버지는 편히 지내시며 때때로 우릴 지켜봐 주시지만 우리는 만날 수가 없다고. 하늘나라에 간다는 건 그런 거라고. 사람은 태어나 살고 자라다 죽게 되는데 그 당연한 일이 땅에 사는 사람에겐 슬픈 일이니, 우리 이제 하늘나라 초대는 그만하는 게 어떻겠냐고.


"할아버지? 엄마의 아빠? 엄마는 아빠를 못 만나? 힝... 보고 싶겠다."


생각보다 더 잘 이해해 준 꼬맹이는 오동통한 손으로 내 얼굴을 쓸어주기까지 했다. 역시 아가라고는 생각했지만 뭐든 설명하면 잘 이해하는 '큰 아가'가 되었다. 그 뒤로도 하늘나라에 대한 궁금증은 끝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초대나 방문을 권하는 일은 없었다.




아이를 낳고는 아버지의 부재에 전처럼 울지 않게 되었다. 언제나 그날처럼 터져 나오는 울음에 평생 그럴 줄만 알았다.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기까지 한 그곳에서, 쨍알거리며 울리는 아이의 목소리는 스미던 눈물도 쏙 들어가게 해주는 명약이었다. 어른은 꼭 잡아주는 아이의 작은 손에, 어디인지도 모르고 크게 웃는 웃음소리에 이렇게 치유된다.


아이에게 이야기하기 어려울 거라 걱정했던 '죽음'에 대한 설명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당연한 일', '누구에게나 오는 일', 태어나 자라고 이리저리 부대끼며 살다 '하늘나라'에 가는 일.


입 밖에 꺼내고 보니 뻔하던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래, 그건 나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친절한 설명이었다. 순리라는 것. 태어나 살고 자라다 늙어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누군가 가면 또 누군가는 온다는 것. 또 살아진다는 것.




"엄마, 엄마도 죽어? 엄마는 죽지 마."

-응. 누구나 똑같아. 그러니깐 우리 사는 동안 매일 더 즐겁게 재미나게 살면 되는 거야.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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