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소위 "노 키즈 존"이 유행인 것 같다. 특히나 제주에 많은 것 같던데, 희한한 일이다. 미국에는 no kids zone이라는 영어가 쓰인다면, 그건 거의 인용 부호와 함께, 한국에서 쓰이는 용어를 그대로 언급하는 맥락에서일 것이다. 영어에는 "no kids zone"이란 표현이 없다. 유사한 영어가 있긴 하겠지만, 쓸 일도 들어볼 일도 없었다.
한국에서 "노 키즈 존"은 흔히 까페나 식당이다. 나도 한국인이다 보니 미국서 아이 태어나고 식당 예약할 때, "우리 infant 하나랑 같이 가야 되는데 괜찮겠냐?"고 물어본 적은 있다. 대답은 다양한데, 거의 다 "당연히 된다"는 의미였고, 일부는 "그걸 왜 물어보느냐?"는 태도였다. 한 집은 "우리 가게가 너무 작고 기저귀 갈이대가 없어서 미안하게도 당신이 불편할 것 같지만, 당신만 괜찮다면 우리는 환영"이라고 했다. 아시안 계가 하는 동네 만두집이고 정말 작았다.
혼쾌히 된다고 하는 집 중엔 Taiwanese Hot Pot집들도 있다. 거긴 뜨거운 육수를 종업원들이 들고 다니며 필요한 테이블에 부어준다. Hot Pot은 한국 부대찌개집마냥 테이블 중간에서 '늘' 끓고 있다. 냄비가 뜨거운 곳도 있다. 하지만 안 된다는 집은 없었다.
까페나 굳이 뜨거운 음식을 나르지 않는 식당들은 다 마찬가지다. 숯불을 테이블로 들고 나와 그 위에 그릴을 올리고 고기를 구워주는 한식당도 아이를 안 받는다는 소리는 하지 않기도 하고, 감히 하지도 못한다.
충분히 많은 식당/까페를 안 가본 것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캘리포니아 생활, 유학부터 결혼, 취직까지 10년이었다. 유학 시절, Stipend의 30-50% 정도는 외식비에 썼다고 생각한다. 취직하고, 신분 문제로 언제고 한국 돌아가서 못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J-1 2년 거주 의무가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이 지역 맛집들, 지금은 차 타고 잠깐 나가면 되지만 나중엔 올 시간도 없고 와도 호텔 예약하고 비행기 타고 와야 된다고 생각했다. 결혼 하고는 아내가 타 지역에서 이주해 들어왔는데, 아내와도 그 외식의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었다. 어쨌거나 매달 1, 2천 달러는 꾸준히 외식에 썼다. 지금도 이 동네 맛집 30개 정도는 5분 안에 뽑아낼 수 있다. 로드 트립도 판데믹 전엔 자주 갔다. 아이 생기고도 자주 갔고. 가다 보면, 시간 되어 시리에 "Best restaurants nearby?" 한 다음에 찾아보고 아무 데나 들리게 되곤 했다.
하여튼 갈 만큼 갔고, 숫자로 따지만 상위권일 거라고 자부한다. 한데 아이 데려 간다고 못 오게 하는 곳, 전혀 없었다. 몇 번 "애 데리고 가도 되나요?" 물어보다가 이젠 눈치를 채고 그냥 간다. 사실 1천에 999개는 "된다"고 하는 당연한 일을 굳이 미리 물을 이유가 없지 않나? 예컨대, 한국 부대찌개 집에 가면서 "일행에 40대 한국 남성이 있는데, 저녁식사 하러 가도 됩니까?" 묻는다면, 얼마나 이상하겠는지. 마찬가지다.
캘리포니아만 그런 거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한데... 내가 가깝거나 그래도 잘 아는 지인이 캐나다, 영국, 독일, 필리핀, 뉴질랜드, 네덜란드 등지에 어쩌다 보니 있지만--직장 동료, 전 직장 동료, 가족, 이주 나간 한국 지인, 이웃, 기타 등등--, "노키즈존" 유사한 문화가 한국처럼 광범위한 곳은 전혀 없다. SNS에 이 주제가 돌 때마다 일본, 프랑스 등 다양한 나라 이주자들이 나와서 증언하는 걸 보면, 다들 미국/캐나다랑 비슷한 것 같다.
기본적으로 아이는 대충 "저지레하면서" 배우고 크는 존재라고들 생각한다. 어른은 그걸 보고 관대하게 웃어줄 사회적 의무가 있다고 암묵적으로 생각한다.
"일부 진상 부모가 있어서" 소위 노 키즈 존이 생기는 것 아니냐고들 한국서는 흔히 얘기하는 것 같다. 글쎄, 그건 원인이라기 보다는 핑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미국도 일부 진상 부모가 있고 지나친 아이들이 있다. 한데 그걸 빌미로 아이들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지 않는다. 마찬가지인데, 나는 20대 후반인가 30대에 소주에 취해 식당 바닥을 엉금엉금 긴 적도 있다. 글쎄, 술 먹고 진상 부리는 고객, 한국서 드물지 않지만, 특정 연령대를 그 때문에 콕 집어서 원천 금지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행여 아이들이 집기를 깨거나 하면 보상을 어디서 받느냐고들 하시던데, 왜 보험을 안 드는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고급 다기에 다과를 팔던 전직 자영업자가 자기가 들었던 보험 금액을 얘기해 준 적이 있고, 지금은 액수를 잊었는데, 매달 얼마 되지 않았다. 왜? 보험사가 보는 "보험사가 지급해줘야 할, 어린 고객에 의해 발생할 기대 손실"이 그다지 높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보험사가 보는 통계는, 보험사가 바라보는 어린 고객의 위험도일 테고, 그게 통념과 달리 별로 높지 않다는 의미이다.
미국이라고 애들이 집기 안 깨고 안 자빠지고 테이블에 머리 안 막겠는지? 앞에선 웃어주고, 뒤에선 보험 처리 할 거라고 생각한다. 나라도 보험이 없다면 신경이 날카롭겠지만, 보험이 오래 전부터 있다는데.
"일부 부모" "일부 아이" "아이가 끼칠 재정적 손실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영세성" 등도 전부 한국식 노키즈 존을 설명하지 못한다. 내가 보기엔, 그냥 아이가 싫고 양육자가 만만하다는 얘기로 보인다. 혹은 보육의 가정 내 역할 분담에 대한 문화적 차이 같기도 하고.
한국은 아직도 육아란 주양육자 (주로 어머니)에 의해 이뤄져야 하며, 주양육자는 최선을 다해 육아로 인해 발생하는 번잡함으로부터 바깥일 하는 사람을 최대한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는 류의 인식이 흔한 것 같다. 그걸 사회적으로 확장한 버전이 노 키즈 존 같기도 하다. 아이들은 주양육자에 의해, 주양육자와 함께 조용히 격리되어 내 눈에 띄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 그게 전제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 인식은 사실 보편적인 윤리의 관점에서 보면, 낙후되어 있고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