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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새 이야기

03. 뿔논병아리

포란과 수난

by 김대환

알을 낳는 새는 새끼가 태어나기 위해 반드시 알을 품어야 한다. 이를 학술적인 용어로 포란(抱卵 oviposition)이라 부른다. 포란을 하려면 둥지(nest)가 있어야 한다. 둥지는 집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집은 쉬고 자는 곳이지만 둥지는 쉬고 자는 집이 아니다. 새는 그냥 바람이나 피하고 비나 피할 수 있는 곳에서 잠을 잔다. 잠도 푹 자지도 못한다. 자세도 그렇고 위치도 그렇고 대충 잘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잠을 잔다.


아무튼 새는 종류에 따라 둥지 모양도 다르고 장소도 다르다. 뿔논병아리는 물 위에 갈대나 물풀로 물에 뜨는 둥지를 만든다. 그렇다고 둥지가 물에 둥둥 떠다니는 것은 아니다. 갈대나 부들이 있으면 그것에 묶고 물풀이 있으면 물풀에 묶어 떠다니지 못하게 한다.


포란 중인 뿔논병아리(20250527 시화호)

이런 자리가 있으면 좋겠지만 이런 자리가 없으면 그냥 물 위에 둥지를 만들기도 한다. 새가 둥지를 만드는 조건은 상당히 까다롭다. 일단 천적으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곳을 선택한다. 둥지 재료가 특별할 때는 둥지 재료가 많던가 조달이 가능한 곳을 택한다. 근처에 새끼를 키울 때 필요한 먹이터도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은 필요조건과 자신의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집단 번식 중인 뿔논병아리(20130602 시화호)

천적의 방해가 없고 둥지재료도 많고 먹이도 풍부하면 집단 번식이 가능하다. 여기서 천적은 사람도 포함된다. 난 뿔논병아리를 먹지 않는다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꼭 뭘 먹어야 천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위협이 되면 천적에 포함된다. 새 입장에서 저 놈이 날 먹을지 어쩔지 알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둥지를 만들고 있는 뿔논병아리(20250521 시화호)

둥지는 암수가 같이 만든다. 물풀을 올리면 점점 둥지가 무거워져서 가라앉는다. 가라앉으면 계속 둥지 재료를 보충하여 보강한다. 둥지를 한 번에 만들기도 하지만 만들다가 장소에 문제가 있으면 쉽게 장소를 포기하고 떠난다. 새가 떠난 둥지는 관리가 안되기 때문에 풀어지거나 가라앉는다. 아직 알을 낳은 게 아니기 때문에 포기가 쉽다. 하지만 알을 낳은 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알을 지키기 위해 새는 위험을 무릅쓴다.


포란하고 있는 뿔논병아리(20130602 시화호)

포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알이 부화되도록 알의 온도를 일정하게 맞춰주는 것이다. 과거에는 적정 온도가 얼마인지 몰랐으나 최근에는 온도 센서가 있는 가짜알을 넣어서 측정하기도 한다.


알을 굴리는 뿔논병아리(20130602 시화호)

포란 과정에서 전체 알의 온도가 위치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알의 위치를 바꾸는 행동을 한다. 알의 온도를 일정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둥지를 보수 중인 뿔논병아리(20160607 시화호)

둥지는 포란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보수를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둥지가 가라앉기 때문이다. 그래서 암수가 같이 포란하는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둥지 재료를 물어오는 뿔논병아리(20160607 시화호)

포란을 안 한다고 편한 것은 아니다. 먹이도 사냥해야 하고 둥지 재료도 물어와야 하고... 어딜 가나 부모는 참 힘들다.


둥지에 있는 알(20160620 시화호)

드물지만 암수 모두가 둥지를 비우는 일도 있다. 알이 총 6개나 된다. 보통 3~4개 일반적인데... 대단한 부모들이다. 어쩌면 부모 입장에서 이렇게 많은 새끼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이 되거나 그럴만한 환경이니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부모가 없는 둥지를 노리는 새도 있다. 갈매기류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주로 알을 쪼아 먹는다.


뿔논병아리의 다툼(20130615 시화호)

동물의 세게에서는 어디든 다툼이 있다. 특히 움직일 수 없는 포란기에는 다툼이 자주 생긴다. 보기에는 상당히 격렬해 보이지만 상대에게 상처를 입힐 정도의 싸움은 아니다. 가슴으로 미는 정도가 전부다. 더구나 같은 종끼리의 다툼은 과시이거나 힘자랑 정도로 끝난다. 자연 상태에서 상처는 죽음과 이어진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알고 있다.


포란을 포기한 뿔논병아리 둥지(20130706 시화호)

이런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알이 세 개나 있는 둥지가 방치되고 있다. 자연의 세계는 냉혹한 것이다. 밀리면 죽음뿐이다.


여기에 올린 사진은 600mm 렌즈에 1.4 텔레컴버터를 끼운 크롭 바디로 촬영한 사진들이다. 모든 촬영은 차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최대한 빨리 촬영한 후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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