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2020년까지 기록된 새를 모두 합하면 약 570여 종 정도 된다. 기록이란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상관없이 우리나라 안에서 처음으로 어떤 새를 봤고 그 새를 학계에 보고했거나, 사체나 사진으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여 인정받은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미기록종도 있는데 이 경우는 우리나라 밖에 있는 종으로 아직 우리나라 안에서 관찰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나라에는 관찰이 가능한 새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만 관찰되는 어떤 새가 있을 때 우리나라 입장에서 그 새는 미기록종이지만 그 새가 어쩌다가 우리나라에 날아와서 관찰되어 기록되었다면 그 새는 기록종이 된다. 이는 신종과는 다르다. 신종은 전 세계적으로 한 번도 관찰되지 않았던 어떤 새가 처음 관찰된 경우를 신종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 570여 종이 기록되었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이 정도면 새가 많은 것일까? 아니면 적은 것일까? 새를 모르는 사람들에겐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숫자다.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대략 판단해 보면 국토 면적이 비해 적은 숫자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물론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중남미에 있는 코스타리카는 우리나라 국토 면적의 절반 정도 크기지만 전체 국토의 절반이 원시림이기 때문에 전 세계 생물종의 약 5%가 서식하고 있으며 코스타리카에 있는 한 개의 국립공원에 서식하고 있는 조류가 북미 전체의 종수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스타리카의 전체 조류 종수는 850여 종이다.
생물을 관찰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생물을 관찰했는가에 따라 등급이 결정된다. 이 기준이 어디 법에 나온 것도 아니고 무슨 규정에 적힌 것도 아니다. 예전부터 인구에 회자하여온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복잡한 규정들이 추가되었다. 어떤 사람은 아종도 포함하는 예도 있고 새를 국내에서만 관찰한 것을 인정하는 예도 있고 단순히 본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가장 일반적인 기준은, 아종은 한 종으로 계산하고 국내든 국외든 포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처음에는 따지지 않지만,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본인이 본 새를 다른 곳에서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새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새를 보는 경우가 늘어나가 심하면 대부분의 새를 다른 사람이 찾아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런 기준이 나오는 듯하다.
처음 새를 볼 때는 내가 얼마나 많은 새를 봤는지 관심이 없다. 새를 본 시간이 많아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때때로 고수들을 만나면서 관찰종이란 것을 알게 된다. 누구는 200종을 봤고 누구는 300종을 봤다는 말을 듣게 되면 난 몇 종을 봤을까 궁금해지게 된다.
이즈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조류목록이나 지인에게 받은 조류목록에 자신이 본 새나 찍은 새를 기록하다 보면 내가 몇 종의 새를 봤는지 알게 된다. 앞에서 제시한 기준을 근거로 등급을 따져보면 관찰종 수가 100종 이하면 초급이라고 할 수 있다. 100종은 흔한 새만 봐도 올라갈 수 있는 등급이다.
일단 100종을 본 후 첫 번째 장벽이 나온다. 그 분류군이 도요 물떼새들이다. 많은 사람이 첫 번째 장벽에서 많은 시련을 겪게 된다. 생김새도 비슷할 뿐만 아니라 거리도 멀어서 좀처럼 구분이 쉽지 않다.
도요 물떼새를 해결하면 대충 200종을 넘게 되는 데 이를 중급이라고 한다. 새를 200종 정도 봤다면 어디 가서 새 좀 본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이다.
시련은 작은 것에서 다시 시작된다. 그 대표적인 분류군이 솔새들이다. 크기도 작고 움직임도 빠르므로 본인의 성격을 테스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새들이다. 심지어 극동아시아의 솔새는 세계적으로도 구분이 어렵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몹시 어려운 시련이 온 것은 분명하다.
솔새의 장벽을 넘으면 어느덧 꿈에 그리는 300종을 넘게 된다. 이 단계가 고급 단계이다. 과거에 새를 보던 사람들은 300종이 넘으면 케이크를 사서 초 3개를 켜고 파티를 했을 정도이고 본인의 300종이 어떤 새인지 대부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인 찬스가 많아서 300종을 넘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다음 단계부터는 양적인 숫자보다는 질적인 수준을 따지게 된다. 자신이 본 300종의 새를 언제 어디서든 구별할 수 있는가? 이렇게 되면 단순히 새를 보는 차원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도감을 찾고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하고 이것으로 해결이 어려우면 고수를 찾아가 문제를 해결해야만 질적인 수준이 해결될 수 있다.
이제 마지막 가장 어려운 난관이 남아 있다. 그 분류군이 갈매기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갈매기는 언제나 바닷가에 가면 볼 수 있는 괭이갈매기이고 쉽게 관찰되기 때문에 상대를 아주 만만하게 보는 초보들도 있지만, 사실은 가장 복잡하고 대책이 없는 분류군이 갈매기이다.
어쩌면 갈매기의 분류는 학계에서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갈매기를 완전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그 이유는 워낙 잡종이 많이 관찰되기 때문에 동정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판단된다. 또 갈매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도 많은 고수들이 매년 겨울철만 되면 동해안 탐조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새를 보다 보면 지인 찬스에 운도 따라서 결국 400종의 벽을 넘게 된다. 국내에 400종 이상을 본 사람이 몇 명일까 꼽을 정도이기 때문에 400종은 등급을 따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쯤 되면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새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이 단계가 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은 더 이상 종 추가를 할 수 없다는 실망감으로 새에서 다른 생물로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새를 보겠다고 용을 쓰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을 찾아낸다. 그중에 하나가 빅이어라는 것이다. 원래 빅이어는 미국에서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행사로 1년 동안 몇 종의 새를 봤는가를 경쟁하는 일종의 대회이다. 미국은 매년 이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공식적으로 이 행사가 진행된 적이 없다.
간혹 개인적으로 빅이어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빅이어의 목표는 1년에 300종이다. 이 숫자가 가능한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지만, 경험상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아주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주말마다 새를 보러 다녀야 하고 어딘가에 특이한 새가 나타나면 무조건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곳이 제주도든 울릉도든 따지면 안 된다.
한편으로 빅이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새를 매우 자세히 보려고 한다. 새 중에는 암수가 다르고 어른새와 어린새가 다르므로 1종이라고 해도 그 안에 매우 다양한 연령과 성별의 새들이 존재한다. 이 모두를 보는 것이다.
얼마 전 내가 아는 그룹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 멧비둘기 어린새 사진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냐는 것이었다. 멧비둘기는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새지만 어린새 사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멧비둘기를 종 추가한 후 다시는 그 새를 찍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새를 보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새와 관련한 매우 수준 높은 공부가 필요하다. 자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것 역시 큰 시련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부가 싫은 사람은 이쪽으로 가지 않는다.
다음은 국내를 벗어나 외국의 새에 도전하는 것이다. 새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돈이나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외국에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이국적인 새의 유혹은 거부하기 힘들다.
그러나 당연하지만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벽이다. 더구나 새를 보는 곳이 대부분 오지기 때문에 위험한 경험도 하게 된다. 특히 요즘같이 코로나가 유행인 상황이라면 목숨을 걸고 새를 봐야 하므로 외국으로 새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포기했다.
당연히 새를 보는 것은 취미다. 몇몇 사람들은 취미의 수준을 넘어 제2의 직업으로 발전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새를 취미로 보는 것과 일로 보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새를 취미로 보든 일로 보든 새는 평생을 투자해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취미 중에 하나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쌍안경만 들고 걸어 다닐 수 있다면 새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