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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랄라 Nov 11. 2021

너를 참지 못하는 나에게

착각은 자유, 기대는 노노

꽃 같은 그대

나무 같은 나를 믿고

길을 나서자

그대는 꽃이라 10년이면 10번 변하겠지만

나는 나무 같아서 그 10년,

내 속에 둥근 나이테로만 남기고 말겠다


타는 가슴이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길 가는 동안

내가 지치지 않게

그대의 꽃 향기

잃지 않으면 고맙겠다.


<동행, 이수동>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시라 청첩장 초대 문구에 넣었던 것이 생각난다. 나는 꽃이고 너는 나무.

그때부터 이미 나는 10년이면 10번 변할 사람이고, 너는 그 10년 나이테로만 남기고 그대로 있어라 라는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청첩장에도 예고했듯 나는 10년이면 10번이 뭐야 100번도 더 변할 사람이다. 달달한 디저트에 둥둥 떠오르기도 하고 배고픔에 바늘같이 변하기도 하는 감정이 널 뛰는 사람이다. 반면 남편은 내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한 곳에 주욱 자리하는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불을 지펴도 결코 타오르지 않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데 있어 내 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오락가락하는 내게 남편은 평온 그 자체였고 그 평온함을 황당하게도 다정함이라 착각했다.


나는 많은 것들이 착각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저 사람이 날 좋아하는구나 하는 착각, 저 사람은 다정한 사람이구나 하고 단정 짓는 착각.

그런데 남편도 그랬단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착각으로 시작됐다. 서로 먼저 자기를 좋아했다고 오해하며 말이다. 그 후는 어찌 됐든 말이지.


잔잔하고 평화로운 사람에게 나는 왜 이렇게 한 번씩 화가 나고, 섭섭하고, 마음 한편이 찝찝할까 꽤 오래 고민했다. 다정하다는 착각, 날 살뜰하게 챙겨줄 거라는 기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는 센스 따위를 바라는 내 마음이 문제였다.

남편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내가 곱게도 포장을 했던 것이다.

곱고 예쁜 포장상자를 열었더니 엉뚱한 게 들어있을 때의 황당함이란.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외식이 가능해진 어느 날, 외출 후에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들어가자며 갈비탕을 먹으러 갔다.

유난히 입 짧고 아무거나 먹지 않는 아이가 그래도 갈비탕 국물엔 제법 밥을 잘 먹는 터라 선택한 메뉴였다. 주문한 갈비탕이 나왔고 언제나처럼 나의 우선은 아이라서 아이를 먹이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아이를 다 먹이고 나니 남편도 식사를 다 한 후였고 내 갈비탕은 다 식어있었다.

내가 아이를 먹였으니 한 명이라도 식지 않은 식사를 했으면 된 일이다.

그렇지만 내심 내가 아이 밥을 먹였으면 내 속도를 맞춰주는 것은 고사하고 배부르다며 멍하니 있을게 아니라 뼈라도 발라줘야 하는 거 아냐?

이십 대가 되기 전까진 붙으면 투닥거리며 밖에선 아는 척도 안 하며 지냈던 나의 친오빠도 나랑 갈비탕을 먹으면 가위로 뼈와 살을 발라주고, 하물며 내가 히틀러라 부르는 우리 아빠도 그렇게 해 주는데 말이지.

물론 이런 배려가 해 주면 좋은 거고, 내가 알아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마음이 또 그렇지만은 않다.

결혼 6년 차, 육아 4년 차인 지금은 마르고 닳도록 얘기하고 원하는 바를 명확히 해 외식을 하면 아이는 대부분 본인 옆에 앉혀 먹이고, 음식을 당연스럽게 덜어 나의 식사를 신경 써준다.


본인이 쳐둔 울타리 아래 나와 아이라는 존재가 지켜야 할 대상이고 본인만큼 소중한 존재이지만 내가 바라는 알아서 먼저 해주는 센스는 그에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일일이 원하는 것을 상세하게 지시하거나 부탁을 하면 흔쾌히 들어주니 그저 헛된 기대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이지.

남편은 그럴 수 없는 사람이고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기대를 줄이면 편안한 행복이 올 것이다.

놀랍도록 단순한 이치를 행하는 것이 내게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종종 나는 희망으로 산다고 이야기하는데, 기대를 줄인다고 해서 내 인생이 행복하지 않다거나 다른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니니 정말 바꿀 수 없는 이 부분 하나는 내가 포기하는 게 맞을 테다.

남편이라고 나에게 기대가 없을까?

내가 화가 날 때마다 한바탕 퍼붓고 이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너는 내게 바라는 게 없냐 바란다면 나도 고칠 의향이 있다’ 말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남편은 바라는 게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게 거짓이라고 말도 안 된다 트집을 잡았는데, 생각해보면 남편은 이미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매일 실감하는데..

그 어려운 일을 이미 해낸 너지만, 어쩌면 해낸 게 아니라 그 자체가 자연스러운 사람이지만 나는 어제 다짐하고, 오늘 잊고 또 다짐하며 내일 또 잊겠지만 결국은 해낼 것이다. 너를 받아들이는 일.

그래서 더 이상 참는 게 아니라 그저 받아들여진 어느 날을 나는 여전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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