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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랄라 Nov 20. 2021

조금도 손해 보기 싫은 마음

이십 대 중반쯤 스님의 주례사라는 책을 봤다.

딱히 결혼에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봤던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을 꽤 감명 깊게 봐서 다르지만 법륜스님이 쓴 책을 함께 읽었던 기억이 있다. 종교는 없지만 내가 얻고자 하는 것들이 맞아 읽는 내내 잘 읽혔다. 스님의 책이라 결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소유처럼 마음도 바라지 말라는 듯 상대에게 아무런 기대치가 없으면 된다는 것이 요지였다. 읽으면서도 ‘뭐야 이럴 거면 길가는 아무랑 살아도 된다고?’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정말이지 책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덕 보려고 결혼하는 것이 아닌데 왜 상대에게 바라냐는 것이다. 너무나 맞는 말인데 그렇지 못했던 나를 보며 흠칫했다. 그게 마음에 남았는지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바라지 말아야지 라는 마음을 은연중에 갖게 됐다.

나부터 갖춰서 멋진 사람이 되고, 내가 부족함이 없을 때 비로소 같은 결의 사람을 만나 멋지게 살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바라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물론 어렵겠지만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살아보니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세상에 어떻게 바라지 않을 수 있어.

심지어 바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는 조금도 손해 보기 싫은데 말이야.     

아이를 낳고 그 생각은 더욱이 진해졌다. 나보다 자꾸만 더 해주기를 바랐다.

남편이 가만있는 걸 도저히 볼 수가 없다.

내가 마녀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기도 하지만, 나는 분주한데 남편이 가만있는 걸 보면 못마땅하다. 그래서 뭔가를 하면서 남편을 부지런히 시켜먹는다. 이를테면 내가 목욕을 시키고는 애 로션 바르고 옷 좀 입혀줘라 던 지, 설거지를 할 때면 양치질 좀 해주고, 장난감 정리 좀 해줘라 던 지.

내가 움직이고 있으면 뭐라도 시키는 거다.

난 이거 할 테니까 자긴 저거 좀 해줘.

그리고 마치 애가 아무 소리도 안 들리면 뭔가 잘못되고 있구나를 직감하며 들여다보듯 남편도 아무 소리 들리지 않으면 괜히 한 번 불러본다. 자기야 뭐해~?


왜 그런가 가만 생각하니 내가 적어도 너보다는 집안일을 많이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마음이었다. 집안일도 일이니 남편이 퇴근하면 마치 나도 퇴근을 맞이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스스로가 집안일 자체를 하찮게 여기고 있어서 분명 가사일로만 보면 내가 훨씬 많이 하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원해서 시작한 게 아님을 핑계로 남편이 그리도 못마땅했나 보다. 원하는 일을 하고, 원했다고 해서 힘듦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님에도 그걸 인정해주지 못했다. 이 하찮은 일은 왜 대체 내가 더 해야 하는지 불만스러웠다. 현재 우리 중 내가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인걸 알면서도.      

결혼 6년 차인 지금 다시 펼쳐본 스님의 주례사에는 내가 다시금 새겨야 할 말들이 콕 집어 쓰여있었다.

서로 이해관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의 처지를 조금만 이해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됩니다. 인간이란 속성 자체가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각자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다시 말하면 부부가 사랑이 아니라 이해관계로 뭉쳐 살아도 괜찮습니다. 잘 살 수 있어요. 내가 이해관계로 남편을 바라보듯이 남편도 자기의 이해관계에 따라 나를 본다는 사실만 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나는 이해관계로 상대를 보면서 상대에게는 사랑으로 대하라고 요구를 합니다. 나는 이해관계로 상대를 대하면서 상대는 내게 헌신하기를 기대합니다. 이 때문에 일이 복잡해지는 거예요.     


얼마 전 남편과 이야기를 하다 가사&육아와 사회생활 둘 중 어떤 게 더 희생을 하고 있다 생각하는지 물은 적이 있다. 고로 너와 나 둘 중 누가 더 희생을 한다고 생각하는지 말이다. 남편은 둘 다 똑같은 희생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듣는 순간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생각하니 그야말로 우문현답이었다. 세상 많은 것들이 내 물음처럼 너 혹은 나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늘 이런 문제를 모 아니면 도로 몰아세웠다. 내가 원치 않는 집안일을 하니까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은 요즘처럼 쌀쌀해진 날에도 새벽에 일어나 만원 지하철에 몸을 욱여넣고 우리를 먹여 살리러 어깨에 보이지 않는 한 짐을 지고 출근을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안 힘든 건 아니다. 그리고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잊고 지냈다. 추운 날 아침 이불속에서 나오는 일이 얼마나 고통인지, 아침의  1분 1초는 낮 시간대의 그 1 분과 얼마나 다른지를 말이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공동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내가 힘드네 네가 힘드네 하며 길 가다 말고 싸울게 아니라 서로 으쌰 으쌰 힘을 합쳐 함께 더 멀리 가야 한다.

그리고 끝내 도착하는 그곳은 꽃길만이 펼쳐지길 바라며, 그곳에 도착한다면 함께 즐기면 그것으로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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