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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현 Jun 19. 2022

3) 토츠카

도쿄에서 서울까지, 자전거 귀국 여행기


“수건은 수납장 안에 있고, 샴푸랑 바디젤도 안에 다 있으니까 자유롭게 써.”

“응 고마워. 혹시 비누도 있을까? 아 찾았다 잘 쓸게!”

“그래. 참 볼 때마다 느끼지만 참 유별나다 너도.”

“별 하늘 찍겠다고 산에서 밤새고 온 너한테 들을 소리는 아니다 싶다”


 ‘쏴아아아아’ 샤워기 헤드에서 뿜어 나오는 물살이 사정없이 피부를 때리자 땀으로 끈적해진 몸 구석구석이 씻겨 나간다. 따뜻한 물줄기에 반응한 몸이 절로 신음 소리를 낸다. 시원하다. 전날 마신 알코올이며, 종아리에 쌓인 피로감이며 몸 안에 모든 독소들이 모조리 빠져나가는 듯하다. 자전거 여행은 처음이라 쉽지 않으리라 짐작했지만 이토록 힘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첫날 라이딩을 무사히 마쳤다. 거리는 약 50km. 숙취로 인해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지만 거리가 짧아 문제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출발하자마자 큰 착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선 초행길이다 보니 골목을 지날 때마다 자전거를 멈춰서 매 순간 내비게이션을 살펴야 했다. 실제로 한눈팔다가 잘못 들어선 경우도 많았고, 또 내비게이션으로 확인했음에도 중간중간 길을 헤맸기 때문이다. 거기다 짐이 무거워서인지 한 발 한 발 내딛기 힘들었다. 차도를 달리고 있어서 혹여나 차선 방향으로 휘청했다가는 지나가는 자동차와 부딪힐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피해야 한다. 주행 내내 신경을 바싹 곤두 세워 달려야 했다. 


 자전거 여행하면 탁 트인 하늘과 주변 경치를 보며 달리리라 상상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와 딴판이었다. 도로 위로 돌멩이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온 신경을 전방 20m 앞 아스팔트에 쏟았다. 몸에도 바짝 힘이 들어갔다. 핸들을 쥔 팔이며, 페달을 돌리는 다리이며 라이딩 내내 긴장을 놓지 않고 달렸다. 자연히 평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에는 오른쪽 종아리에 경련이 일 정도였다. ‘첫날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두현이네 현관문을 들어서면서 문득 걱정이 앞선다. 고작 6시간 달렸을 뿐인데 이미 피로가 한가득 쌓인 상태. 내일은 산 하나를 넘어야 한다. 벌써부터 이래서야 후쿠오카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괜히 주위에 자전거로 여행한다고 떠벌리고 다닌 건 아니었을까?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비행기 타고 가는 편이 나을까? 잠시나마 후회가 드는 순간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나오자 두현이와 미사키가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근심 어린 표정을 지우고 텔레비전을 보는 둘에게 태연히 말을 건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 제대로 인사도 못했네. 둘 다 오늘 하루 묵게 해 줘서 고마워.”

“괜찮아. 그런데 어디까지 가는 거야? 시모노세키? 후쿠오카?!”


미사키의 질문에 잠깐 머뭇거리다 예정한 대로의 목적지로 답했다. 

“후쿠오카. 거기까지 가서 부산 가는 배 타려고” 

“히야~멋진데” 


옆에서 두현이가 질린 눈빛으로 쳐다본다.

“전에 같이 살 때부터 느낀 건데 넌 참 미쳤어 미쳤어.”

“순수한 호기심이라고 해줘.”


 두현이는 한국에 있을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이다. 스무 살 무렵 인터넷의 어느 만화 동호회에서 만났는데, 알고 보니 사는 곳이 바로 옆 동네였다. 취미도 비슷하고 동갑내기에다 동네까지 가깝다 보니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자주 만나며 어울렸다. 그 인연은 일본까지 이어졌다. 두현이가 군대 제대 후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올 때 우리 집에서 지내며 일본 생활의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렇게 두현이와 5년 가까이 룸메이트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귀국 1년 전부터 내가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그때부터 따로 살게 되었다. 나는 혼자서, 두현이는 미사키와 같이 말이다. 


 사실 둘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예비 신혼부부의 집에 이렇게 무턱대고 숙박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나라고 그 사실을 모를까. 그럼에도 이곳에 머물기로 한건 같이 지내면서 쌓은 추억이 많기 때문이다. 학교라든지 직장생활 등 생활 패턴은 안 겹쳤지만, 일과가 끝난 후 종종 서로의 이야기를 터 놓았다. 언제는 같은 모임에 나가서 놀기도 하고 평소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자주 나누었으며 또 어려운 고민도 함께 고민한 사이였다. 내가 첫 회사에서 적응하지 못할 때, 두현이는 미사키랑 갈등을 겪으면서 고민할 때 등의 이야기를 말이다. 내게 있어서 두현이와 함께한 시간을 정리하는 순간이지만 그건 두현이도 마찬가지이다.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우리 둘 다 지난 추억을 되새기고 매듭짓기 위한 순간.


 옷을 갈아입은 다음 두현이랑 근처에 <가스토>라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밥을 나누며 드문드문 이야기를 나누다가, 밥을 먹는 두현이를 보며 문득 생각에 빠진다. 상현이도 그렇고 두현이 또한 일본에 남을 것이다. 둘 다 귀국할 생각은 없으니 아마 결혼도 이곳에서 하고 앞으로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겠지.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선택에 후회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지금의 결정이 옳은 걸까? 그리고 보면 영주권도, 승진도, 10년 가까이 쌓은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나는 어떤 이유로 한국을 가는 것일까? 경제적인 면? 심리적인 면? 지금이 아니면 영영 일본에서 지낼 것 같아서? 도망치고 싶어서? 아니면 연어처럼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한국에서 뭐가 보장돼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가는 것일까? 1년에 두 번 부모님 집으로 쉬러 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그러고 보니 나는 왜 일본에 떠나기로 정한 것일까? 


밥도 안 먹은 채 한참을 생각하자 내 모습을 보고는 두현이가 말을 꺼낸다.

“하루 종일 자전거 타서 밥이 안 넘어가겠지. 눈이 벌써 풀렸다. 얼른 먹고 가서 쉬어.”

“어... 엉? 응 그렇네 너무 힘들어서 밥도 목구멍에 잘 안 넘어간다... 네 말대로 들어가서 바로 자야겠어.”


두현이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다. 모르겠다 모르겠어. 다만 단 하나 확실한 사실은 지금 나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것. 여행하다 보면 그에 대한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현재로서는 그것만이 나는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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