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아물당이죠?”
“네? 아뇨, 저희 가게는 아물다인데요...”
매장을 운영하면서 종종 가게 이름을 다르게 말하는 손님을 만난다. ‘아물다’라는 글자 아래 서점을 상징하는 책과, 상담을 상징하는 새싹을 동그랗게 이은 로고 때문인지, 끝 글자를 ‘당’으로 잘못 읽은 것이다. 3~4개월에 한 번, 기억 속에서 희미해질 때마다 듣다 보니 아물당이라는 고유명사가 존재했나 의심할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당’과 관련 있는 단어라면 정당이 먼저 떠오르는데 말이다. 그 외에는 작년에 유행 돌풍을 일으킨 탕후루. 그와 같은 설탕이 듬뿍 들어간 당류 간식 정도일까.
매장 이름을 본 손님은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인다. ‘정말 잘 지었다.’ ‘따뜻한 느낌이다.’라는 칭찬부터 이름 안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자신이 아는 그 단어가 맞는지 확인하려는 반응, 혹은 외래어인 줄 알았다는 사람까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처음 온 방문객에게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게 이름을 아물다로 정한 이유는 책과 커피 그리고 상담을 두루 갖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편하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사전에 예약해서 (아동)상담을 받을 수도 있지요. 몸과 마음이 아무는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지었습니다.”라고.
설명을 들은 손님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의아해하는 반응도 적으나마 존재한다. 우리 사회에 ‘치유, 힐링, 낫다’처럼 비슷하고도 간편하게 사용하는 어휘가 보편화되었기 때문일까. 낯선 용어 사용에 대한 거부 반응인지, 상대적으로 쓰임새가 제한적이기 때문인지. ‘아물다’라는 어휘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의 반응을 마주할 때면 이해가 가는 한편 씁쓸한 기분이 든다.
매장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쓰임새가 적은 어휘는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우선 대중에게 알리기 쉽다. 검색 사이트에 매장 리뷰가 눈에 잘 띄는 데다 오래 남는다. 두 번째로 선점하기 쉽다. 동종업계의 경우 비슷한 품목을 다루다 보니 가게명도 엇비슷하게 지을 때가 많다. 자연히 경쟁도 많다. 매장 이름으로는 시장을 선점하기가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하지만 ‘아물다’는 일반적인 서점, 카페의 이미지와 다르게 지은 덕분에 지금까지 타 업체와 경쟁할 일이 없었다.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라면 경쟁이 없다 보니 방문객의 발길도 뜸하다는 정도일까(외면당했다는 말). 마지막으로 잊혀 가는 우리말이 때로는 매장의 정체성을 한눈에 나타내기도 한다는 점이다. 커피 한 모금이 필요한 이에게는 음료를, 글 한 줄의 위로가 필요한 이에게는 책에 빠질 시간을, 말 못 할 고민을 털어놓고 싶은 이에게는 상담을.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우리에게 아물다 만큼 적합한 어휘가 또 있을까? 사람에 따라 마음이 휴식을 취하는 방법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아물다는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 꼭 맞았다.
시대의 흐름처럼 사용하는 어휘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매년 수많은 신조어가 생겨나고 사라지며, 반대로 기억 속 희미한 어휘 하나가 어떠한 계기로 급부상한다.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어휘는 검증을 통해 표제어로 등재되기도 한다. 2023년 말,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1,000개의 어휘를 새로 추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건물주, 다둥이, 유기묘, 케이팝, 콩고기’ 등 비교적 최근 신조어가 등재됐는데, 사회가 세분되고, 보편화될수록 기존의 용어로는 대체하기 힘든 상황에서 파생된 어휘일 것으로 짐작한다.
신조어가 생겨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꼭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년 말 새로 등재된 표제어 중 ‘로그인/아웃, 리콜, 카레이서, 헤드셋, 이코노미석’처럼 영어를 한글 발음으로만 바꿔 놓은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순수 우리말을 연구하고 늘려 나가도 부족할 상황에서 외국어 기반의 신조어가 한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을 볼 때면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우리말 풀이 사전』을 쓴 박남일 연구가는 서문에서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우리 문장을 쓰는 데 답답함을 느끼게 되어 시작한 일이지만, 그 방대한 작업이 너무 힘이 들어 도중에 포기할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폐수로 오염된 강물에 맑은 물 한 바가지 퍼붓는다는 생각으로 다시 자료를 뒤지고 펜을 갈았다고.
어휘는 살아 숨 쉬는 생명체와도 같다. 우리말에 관심을 두고 다채롭게 사용하면 어휘는 생명력을 유지하고 나아가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관심을 끄면 명맥만 이어가다 우리들 기억 속에서 잊히고 말테지. 무작정 어휘 수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시대 변화에 맞춰 우리말을 다듬고 기존의 아름다운 어휘를 다시 활용하는 방법도 풍요로운 말글살이의 한 방법일 것이다. 우리가 매장을 활발하게 운영해 나갈수록 아물다라는 어휘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횟수가 많아진다. 생명력이 움트는 순간이다. 적으나마 이 또한 다채로운 말글살이를 일구는 데 일조한 것은 아닐까. 감히 헤아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