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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현 Jan 22. 2024

아물다에서 보내는 편지 4화

매장 안 모습

 연간 천만 명 이상의 여행객이 방문하는 강릉. 그중 초당 순두부 마을은 전국에서 찾아오는 방문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 매장은 같은 초당중에도 아파트가 밀집한 곳에 위치해 있다. 그 때문인지 평소에는 한적하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적고 거리 자체도 조용한 동네. 강릉까지 놀러 와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니고 싶은 여행객은 없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새해를 맞이한 지난주는 달랐다. 여느 때보다 타지 사람이 많이 방문했다. 대부분 책을 보러 온 사람들이었는데, 그중 두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오늘은 그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영업 종료를 5분여 남긴 수요일 저녁. 설거지를 하면서 마감 준비를 할 때였다. 50~60대 여성 한 분이 문 앞에 서서 매장을 들여다봤다.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어서 대응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신 새미가 문을 열며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어떤 일로 찾아오셨을까요?”

“안녕하세요. 여기가 서점 맞나요? 

“네, 맞습니다. 안에 둘러보시겠어요?”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들어오세요.”     


 여성은 미심쩍은 눈빛을 하며 조심스레 발을 들였다. 한 손으로 커튼을 들어 올려 서점 공간으로 들어선 순간, 그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처음에 내비쳤던 의구심이 씻겨 내려져 나간 듯했다. 그는 우리에게 양해를 구한 후 사진을 찍었다. 서가에 진열한 책도 둘러보고, 매장을 한참 동안 살핀 후에야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바다를 사랑한다고 말한 그는, 최근 영진에 집을 구매했다고 한다. 주거지뿐 아니라 바닷가에 서점을 차리는 게 꿈이라고. 마침 바닷가 앞에 매물이 있어서 보고 왔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주었다. 해세권 매물 운영 비용에는 얼마가 필요하며, 서점은 어떤 식으로 꾸려나가느냐 하는 현실적인 문제는 그의 눈에 들어보지 않는 듯했다. 평생의 꿈인 서점을 바닷가 앞에서 차린다는 상상에 한껏 부푼 상태였다. 실현 가능성 유무를 떠나 오랜만에 책을 좋아하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직접 차리겠다는 위인을 만났다. 요즘 시대에 보기 힘든 사람. 덕분에 영업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그로부터 3일 후 이번에는 풍채 좋은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매장 안내를 할지 말지 고민하는데 어디선가 낯이 익었다. 이전에 우리 공간을 찾아온 사람인 듯했다. 조심스레 말을 걸자 무표정한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내 기억이 맞나 보다. 그는 웃는 표정을 지으며 오랜만에 찾아왔다고 답했다. 안으로 들어간 그는 2~3바퀴 둘러본 후 매장 곳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고는 책 두 권을 손에 쥔 채 카운터로 왔다. 카모메 서점의 책방지기가 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중입니다>라는 책과 내가 쓴 <어느 신혼부부의 우당탕탕 강릉이주 이야기> 였다.      


 카모메 서점 근처에 산다는 말에, 그가 누군지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오픈 초기에 매장을 찾은 사람이었다. 상담실 운영을 시작할 무렵에 방문해 우리의 도전을 응원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의 단짝도 전문 심리상담사이며, 다가올 미래에 우리 공간과 비슷하게 꾸미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 때문일까. 2년이 지났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방문객이었다. 그는 곧 살림을 정리해 삼척으로 이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곳에 정착하면 우리와 같은 책방을 열 준비를 하겠다고. 그는 SNS를 통해 우리 활동을 보며 자극을 받았다고 하는데, 삼척에서 책방을 차리기로 결심한 이유에는 우리 영향도 일정 부분 있지 않았을까?     


 세대도 성별도 다른 둘.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책을 좋아한다는 것과 지역으로 내려와 살겠다는 두 가지 공통점이 존재했다. 서점과 지역이 어떤 매력을 갖고 있길래 그들로 하여금 지역 서점을 차리는 꿈을 품게 한 것일까?     


 그들의 부푼 기대와는 달리 출판업계 상황은 참담하기만 하다. 해가 갈수록 줄어가는 독서 인구.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출판사. 코로나 이후 발 빠르게 영역을 넓혀 나가는 온라인 서점. e북에 점유율을 내주고 있는 종이책, 종이책 대신 오디오 북으로 대체되는 움직임 등. 서점 입장에서는 좋은 소식이란 게 도통 들리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해 교보문고에서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교보문고 측은 디지털 전환의 일환이라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138억의 영업 적자를 기록한 여파도 적지 않아 보인다. 대형 서점도 경영이 어려운데 지역 서점은 오죽할까. 주위 사람들에게 서점을 차린다고 말하면 대부분 기를 쓰고 말리려 한다. 현재 업계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하지만 자기만의 서점을 차리고 싶다는 욕구는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강릉만 해도 아물다 오픈 이후 4~5개의 동네 서점이 생겼다. 포남동, 경포동, 구정면 등 지역도 다양하다. 독서 인구가 줄어드는 반면 글을 쓰려는 예비 작가가 많아지는 것처럼, 책을 사는 사람은 줄어든 반면 서점을 차리고 싶은 사람은 늘고 있다.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일까, 아니면 시대 흐름에 따른 변화일까?       


 그런 면에서 지난주 찾아온 방문객 둘이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서점을 차렸으면 좋겠다.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시간이 흐르면 절충점을 찾아갈 것이다. 많이 찾아보고, 직접 매장 구상도 그려야 할 것이다. 목공에게 견적을 구해가면서 세세하게 골자를 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본인의 부푼 꿈을 어떻게 견지해 나갈지가 더 중요하다. 그들처럼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싹을 틔운다면,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의 많은 부분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불황 속 지역에 동네 책방이 생기길 희망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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