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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현 Feb 19. 2024

아물다에서 보내는 편지 8화

 매장을 운영한 지 3년. 계절이 열두 번 바뀌면 장사 수완이 좋아지거나 매출이 비약적으로 상승할 법도 한데, 우리한테는 해당하지 않나 보다. 그런 소식은 늘 이웃 가게들의 몫.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제자리걸음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다. 바로 일희일비하지 않을 것. 손님이 몰리는 날이 있으면 텅텅 빈 날도 존재한다. 그 자명한 사실을 수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깨달았다. 지금이야 하루 이틀 손님이 없어도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지만, 개점 첫 해 나는 그렇지 못했다.     


 개점 3일 전. 강릉에 사는 이모와 이모부가 구즈마니아 화분 2개를 손에 안고 방문했다. 그를 시작으로 첫날부터 꽃과 함께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개업 축하 선물에 부담감을 느꼈지만, 한편으로 베이지색 테이블과 흰 벽만 존재한 공간에 식물들이 자리 잡은 모습이 퍽 어울려 보였다. 원목에서 나는 향 덕분에 나무 안에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지인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새로 온 식구들에게 골고루 물을 주었다.     


 첫 손님으로 강릉 독서모임 ‘이음’의 종환 씨가 방문했다. 매장 사진을 스무 장 정도 찍은 후, 카운터로 와 동료 직원들에게 줄 커피 10잔을 주문했다. 첫 주문인 데다, 손에 익지 않아 20분 가까이 걸렸는데, 종환 씨는 괜찮다며 불평 없이 기다려 주었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음료를 건네면서 스콘 두 개를 봉지에 담아 전했다.     


  그 후로 하슬라 러닝크루 친구들, 매장 목수를 소개해 준 구커피 사장님, 우리 멘토이자 원두를 공급해 주는 데자뷰 로스터리의 현욱 님, 그리고 나지와 바미라는 두 고양이를 이어 준 승범 님, 혜영 님까지. 강릉에서 알고 지낸 인연들이 매장을 방문했다. 동네에 새로 가게가 생겼다는 소식에 주민들도 하나둘 보러 왔다. 옆 건물 초당성당의 신부님, 수녀님을 비롯해 우리가 애용하는 미용실 사장님과 그 손님들, 같은 동 아파트 주민들까지. 덕분에 매장 안이 사람들로 꽉 찼다.     


 우리가 꾸민 공간에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것도 많은 사람이 말이다. 아파트 상가 2층이라는 불리한 여건 때문에, 사람들에게 외면당할까 봐 노심초사했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모든 걱정이 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순조롭게 꾸려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2주가 지나기 전까지는.     


 개점 3주째로 접어들자 사람 발길이 뚝 끊겼다. 지금까지의 일이 전부 신기루인 것처럼 조용했다. 조금씩 줄어든 게 아니라 한순간에 자취를 감춘 것이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났다.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텅 빈 매장 안에 적막만이 가득했다. 문득 가게를 준비하면서 주위에서 해준 말이 떠올랐다.      


 "강릉 사람들은 새로운 걸 좋아해. 처음에는 너도나도 다들 보러 오지. 하지만 끽해야 3달이야. 그 기간이 지나면 다른 곳에 새로운 가게가 생겨서 그곳으로 몰리게 돼. 3달 만에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지고 마는 거지. 그러니 그에 대비해 마인드 컨트롤을 잘해야 해."      


 항상 손님으로 가득 찰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조금씩 줄어들 거라고 짐작은 했다. 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 마치 썰물 빠지듯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모습이지 않은가. 썰물이라면 다시 밀물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기라도 하면 되지. 현재로서는 손님이 올 낌새조차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다.     


 일주일이 지났다. 상황은 여전했다. 머릿속에서 ‘폐업’이라는 단어가 그려졌다.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이대로 잠자코 있으면 폐업이 현실로 되고 만다. 뭐든 좋으니 당장 할 방법부터 해 봐야 한다. 가까운 데서부터 찾아보았다.      


 우선 사람들 눈에 잘 띄도록 1층 현관문에 ‘북카페, 상담, 아물다’ 상호를 붙였다. 그 후 먼지와 거미줄로 뒤덮인 복도를 청소했다. 빗자루로 먼지를 쓸고 대걸레를 물에 적셔 바닥을 닦았다. 화장실도 청소도 빼놓지 않았다. 세제를 뿌린 다음 기다란 호스를 이용해 구석구석 물청소했다. 청소를 마친 후 손님이 찾아올 수 있도록 1, 2층 복도에 불을 켜 놓았다.      


 그런데 새미가 1층 복도에 조명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딴지를 놓았다. 계단 쪽은 전체가 창문이라 날이 밝을 때는 전기를 낭비하지 말자고 말이다. 당시 새미는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현 가족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하고 있었다. 단 한 명의 손님이라도 매장으로 이끌기 위해 켜 놓은 심경을 알리 없었다. 새미에게 내 심정을 터놓자, 말을 삼키고는 눈물을 흘렸다. 그때가 3일 째 손님이 없던 날이었다.     


 그로부터 3년, 상황은 어떻게 변했을까. 어제 매장을 찾은 손님은 5팀, 오늘은 2팀. 개점 직후와 비교해 늘지도 줄지도 않은 숫자다. 방문객 수도, 매출도, 도서 규모도 시작할 때와 비교해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단 한 가지, 긍정적으로 변한 게 있다. 바로 지역 주민들이 찾는 횟수가 많아졌다는 점. 즉, 단골이 늘어난 것이다.     

  나가오카 겐메이가 쓴 <디앤디파트먼트에서 배운다>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쓰여 있다. "가치를 전하는 가게는 불편한 장소에 있는 편이 좋습니다. 가게 대표의 정체성이 뚜렷하다면 가게가 어디에 있든지 의식이 높은 사람들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가 쓴 문장에 큰 위안을 얻는다. 여전히 방문객 수는 늘어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답보한 상태이지만, 돌이켜 보면 우리가 선택한 방향일지도 모른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매장을 추구하기 보다 우리 가치를 알아주는 이들과 함께하는 길을 말이다. 그 증거로 우리의 방향에 관심을 가진 손님들이 자주 찾는다.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여러 차례에 걸쳐.     


 앞으로 이 자리에서 몇 년, 아니 몇 개월 더 운영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가오카 대표의 말처럼 우리 정체성을 확고히 해 나간다면 조금씩 더 많은 사람이 알아봐 주지 않을까? 그때까지 시간은 걸리겠지. 그동안 더 여물고 단단해 질 것이다. 우리 매력을 더욱 꽃 피울 수 있도록 오늘도 카운터 앞에 서서 음료를 내린다.      


 “안녕하세요. 아물다입니다. 책과 함께 커피 한 잔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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