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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현 Mar 25. 2024

아물다에서 보내는 편지 11화

 아물다는 신간 서적도 다루지만, 대부분 중고 책 판매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 때문인지 종종 책 기부 문의를 받는다. 개점 초기는 매주 요청이 들어왔다. 감사한 제안이지만 대부분 거절한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책방 사장님은 굴러들어 온 복을 찼다고 하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기부하려는 책이 매장의 정체성과 안 맞을 때도 있거니와, 품질도 반드시 좋다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작년 여름, 메일로 심리상담 관련 책을 기부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5권 정도 목록을 보내왔는데, 권수가 적고 얼추 괜찮아 보였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하고 판단해서 감사히 받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기부 당일 택배 상자 한가득 책을 들고 찾아온 것이 아닌가. 얼추 세어 봐도 30권이 넘어 보였다. 게다가 면면을 보니 대부분 여행 분야 책이었다. 매장 성격과 맞는 상담, 마음 돌봄 관련 책은 2, 3권 정도 뿐,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기부자는 곧 있으면 다른 곳으로 이사한다고 한다. 이삿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버리기에는 아깝고 좋은 곳에 기증하고 싶다고 했다. 상대방이야 선한 마음으로 시작했겠지만, 나는 불편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정색한 모습을 보이자, 상대방도 기분이 상했는지 표정이 굳어갔다. 손수 책을 갖고 방문했는데, 기뻐하기보다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니 말이다. 그때 새미가 끼어들었다. ‘기부해 주셔서 고맙다고, 무거웠을 텐데 2층까지 와 줘서 감사하다’며 기부자를 다독였다. 새미의 중재 덕분에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고 끝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이 문을 열고 나갈 때까지 게 아무 말도 못 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순간 예전에 책을 기부했을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부터 7년 전, 일본 생활을 마치고 짐 정리를 할 때였다. 귀국 전 한국에서 가져온 책을 전부 기부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 사서는 내 문의에 적잖이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갑자기 찾아온 외국인(한국인)이 외국어(한국어)로 된 책을 기부하려고 하니, 나도 그 입장이라면 똑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담당자는 내게 일본어로 된 책 목록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예’하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사서의 요청대로 목록을 만든 후, 며칠에 걸쳐 책을 날랐다. 모교에도 기부했는데 권수로 200권은 되었던 것 같다.      


 집 안에 책을 비운 나는 짐 정리도 마쳤겠다, 좋은 마음을 전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홀가분해졌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책을 받는 사서들의 모습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선의가 반드시 좋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구나 하고.     


 개점 초기 매주 요청받았던 책 기부 문의는 요즘 들어 많이 줄었다. 대신 아물다를 잘 아는, 친한 지인들이 기부 문의를 할 때가 있다. 조심스럽게 묻는 말투를 통해 매장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과 민폐 끼치는 것은 아닌가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양가의 감정이 느껴지니 자연스레 내 반응도 누그러진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넌지시 여쭤본다.     


“책 사진 보내주시면 매장 성격과 맞는 책을 간추려 볼게요. 그렇게 해도 될까요?”

“네 물론이에요.”     


 기부하는 입장에서는 우리를 위한 마음을 베풀고, 우리도 감사한 마음에 호응한다. 서로의 선(기준)을 넘지 않는 선에서 호의를 주고받을 때만큼 기분 좋은 순간은 없다. 기부자들의 배려 덕분에 책장이 기증받은 책들로 채워져 간다. 이런 식으로 서가의 절반이 기부자들의 책으로 꾸려지면 어떨까. 지역 주민과 호흡한다는 면에서는 너무 좋을 것 같다. 아물다는 우리 매장이기도 하지만 방문하는 이 모두의 책방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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