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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현 Apr 01. 2024

아물다에서 보내는 편지 12화

 아물다는 새미와 나 둘이 마련한 공간이다. 한 공간 안에 책과 커피, 상담 구역을 나누어 놓았는데, 뛰러 나가거나 친구들과 약속이 없으면 24시간 내내 새미와 붙어있는 편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친구들이 연민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둘이 괜찮겠어?”

 “어우 난 힘들 것 같아.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 분명 싸울 거야.”

 “내 주변에도 너희 같은 부부 있는데, 자주 다툰다고 들었어.”

 “집에서도 매장에서도 같이 있는 거잖아? 난 못해.”     


 그들의 우려대로 초반에는 “이건 이렇게 하는 거 아냐? 저건 그렇게 하는 건 어때?” 하면서 다퉜다. 열심히 일하는데 다른 방안을 제시하다 보니, 솔직하게 수용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서로의 방식에 딴지를 거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고. 마치 신혼살림 초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다행히 개인적인 감정까지 이어지지 않고, 각자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데 그쳤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책과 커피는 내가, 상담은 새미가 담당하는 식으로 영역을 분리했다. 그러자 언쟁이 눈에 띄게 줄었다. 영역을 나누는 과정에서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리라.      


 부부가 매장을 운영하면 정말로 사이가 안 좋아질까? 실제로 그런 부부도 존재한다. 추측하건대 영역이 겹치기 때문 아닐까 싶다. 같이 일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가치관과 방식이 다르다 보니 일과 관련된 이야기 외에도 불필요한 말까지 나오는 것이다. 종국에는 말싸움으로 번지고 만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업무를 나눈 덕에 선을 유지한 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가령, 내 번호로 상담 문의가 들어오면 간략하게 안내 사항만 전달하고, 자세한 내용은 새미에게 맡긴다. 마찬가지로 새미가 책이나 커피에 대한 문의를 받는 경우 내게 전달한다. 다행히 이 방법은 우리의 생활 양식과 꼭 맞아떨어졌다.      


 평소처럼 가게 문을 연 날이었다. 나는 카운터에 앉아 노트북으로 작업하고, 새미는 바 테이블에서 공부 중이었다.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손님 4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카운터 앞에 서서 각자 음료를 주문했다. 새미가 읽던 책을 덮고 카운터로 들어와 거든다. 작업대 위에 트레이를 놓고 그 위로 컵받침과 냅킨, 빨대를 올려놓는다. 그다음 능숙한 손놀림으로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우유 거품기에 담았다. 손님 한 분이 우리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는 입을 뗀다.     


“부부이신가요? 두 분이 같이 운영하세요?”

“네 맞습니다. 저는 주로 북카페를 담당하고요. 아내는 옆에서 상담실을 운영합니다. 오늘처럼   단체 주문을 받을 때는 아내가 도우러 와 줘요."

 "어머, 그렇구나. 두 분 일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아요. 포근한 인상이 이 공간의 분위기와도 어울리고요. 앞으로도 사업 건승하시길 바랄게요.“     


 어느 날은 한 여성에게서 SNS 메시지를 받았다. 강릉으로 여행 온 그녀는 대뜸 커피 클래스(21년 2월까지 운영하다가 종료)와 나 찾기 클래스를 하고 싶다며 문의해 왔다 ‘커피 클래스는 알겠는데, 나 찾기 클래스는 뭘까? 담당자인 우리도 처음 듣는 단어인데 말이야.‘ 나중에야 심리 검사를 가리킨 것이라는 사실임을 알게 된 우리는, 그다음 날 커피 클래스와 심리 검사(TCI) 해석 상담을 진행했다. 커피 체험과 해석 상담을 연달아 진행한 손님은, 문을 열고 나가기 전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말했다.     


 "혹시 두 분 모습 사진으로 찍어도 될까요?"

 "네, 물론이지요."

 "감사합니다. 잠시만요. 그럼 찍을게요. 하나둘 셋! 두 분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 같아요."

 "예? 하하하 그런 말은 처음 들어요. 감사합니다."     


  글에는 글쓴이의 생각과 가치관이 담겨있다. 평생에 걸쳐 쌓아 온 사고방식이 글 안에 배어 있기 때문에, 한두 장만 읽어도 손쉽게 의도를 알아채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매장에도 가게를 운영하는 이의 성격이 스며든다. 손님이 덕담을 건넨 이유는, 우리와 매장이 조화를 이루기 때문 아니었을까. 매장 이름부터 시작해 공간을 이루는 분위기 그리고 우리 자신까지. 차분한 분위기가 일관되게 녹아든 덕분에 많은 이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두 분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말이 칭찬을 넘어서 다른 무언가로 들린다. 마치 아물다에서 걸어온 길 전부를 인정받은 듯한 느낌. 나 혼자였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새미와 매사 치열하게 의논했기에 가능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다투고 화해하기를 반복했지만, 바라보는 지점은 늘 비슷했다. 앞으로도 서로의 성장을 지지하고 독려하는 사이가 되길. 조언하는 빈도만 줄여주면 바랄 나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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