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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진 Oct 02. 2023

어떤 중독 2

02OCT23

  음식이나 요리에 대한 애정이 없는 나는 뭐든 대충 먹는다.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한국요리에 대한 예의도 없이, 그냥 삶고 굽는 방식으로 익힌 요리면 족하다. 일명 구석기 시대의 식단이면 충분하다. 훈제 연어같은 요리는 아주 좋아하는데 자주 먹지는 않아 특별식으로 마주할 수 있는 편이고, 반찬 두어가지만 있으면 밥은 먹을 수 있다는 주의다.


  여하튼 음식이나 요리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적당히 맛있는 것은 '아주 맛있게' 먹는 편이라, 먹는 것 자체에 집중한다고 보는 편이 옳겠다. 배고플 때 먹는 것은 뭐든 맛있다.


  탄산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싫지 않은 음료가 있다. 유명한 <마운틴 듀>가 그것. 오래 전에 친구 의수가 권해줘서 처음 마셔 보았는데 나는 <마운틴 듀>라는 음료 이름이 좋아서 처음부터 맘에 들었다. 지금은 골드메달 애플주스(!)를 아주 가끔 마시기는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미국 생활이나 왓슨빌, 그 동네가 생각나거나 할 때 뿐이고, 사실 내가 좋아하는 유일한 음료는 <마운틴 듀>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의수는 이것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무지했으면, 맛도 보기 전에 이름이 맘에 든다고 무작정 마니아가 되겠는가. 10대 시절에도 나는 얕은 지식과 시각으로 '호불호'를 표현하곤 했던 것 같다. 이것은 어쩌면 네 살 아이가 맘에 드는 모든 것을 '내 것'이라고 우기며 자기중심성을 보인 정도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좋은 것을 좋다고 표현하는 것에 다름 아니지만, 그것 외에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고 비교하지 않으니, 뭐든 비교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내가 무척 단순해 보일 수 밖에.  


  돌아보면 나는 늘 어떤 결정을 '생각은 깊이, 결정은 단호히' 하는 편을 선호해 왔다. 처음부터 그랬다기보다는 어떤 고민을 오래하는 것이 좋은 결론을 내리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 이후부터일 것이다. 한달을 고민하든, 단 10분 만에 결론을 내리든, 그 선택의 결과는 사실 같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때로는 어떤 일들을 직관으로 결정하고 그것에 책임을 지면 된다는 생각으로 산다. 생각해 보니, 그것은 <마운틴 듀>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음료가 손에 없으면 일을 못한다거나 <마운틴 듀>를 박스째 쌓아두고 마신다거나 한 일은 없었으므로 이것은 또 마실 것에 대한 중독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기회가 되면 다른 음료나 음식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이 먹는 편이라는 것.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문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몸에 좋다고 찾아 먹는 성의는 시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끔은 편식을 한다고 오해받기도 한다. 이것이 잘못된 중독 습관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나는 그 흔한 비타민 챙겨먹기도 해 본 일이 없다. 몸에 좋다면 챙겨 먹을 줄도 알고, 싫어하는 반찬도 골고루 먹을 줄 알아야 하건만, 나는 먹는 것에는 무식하게 단순하다. 좋으면 먹고 싫으면 먹지 않는다. 그래서 잘 먹는 것과 잘 먹지 않는 것의 경계도 비교적 명확하다.


  예를 들어, 사과, 파인애플, 훈제 연어 같은 것은 아주 좋아한다. 해산물 중에서는 소라만큼 좋아하는 것이 없다. 토마토와 포도는 잘 먹지 않는다. 가족들은 (신기하게도) 모두 포도와 해산물을 아주 좋아한다. 아쉽게도 나와 식성이 맞는 사람이 없다. 초밥보다 김밥을 좋아해서 뷔페에 가면 일행에게 핀잔을 듣는다. 얼마 전 만난 친구 경실이는 비싼 고급 호텔뷔페에 와서 이상한 것만 먹는다며,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고는 내가 먹을 음식들을 직접 선택해 세팅해 주었다!


  단순한 정도를 넘어 심각하게 무식한 정도이니 나쁜 행동일 수 밖에. 원래 탄산음료는 잘 마시지도 않아서 (음료 자체를 안 마신다.) 그래봐야 이 음료도 일년에 몇 캔 안 산다. 결론적으로는 요리나 음식, 섭생, 건강에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이므로 고쳐야 할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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