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오행 3: 01OCT23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가끔은 순간의 행동이나 생각의 단면을 통해 그 사람을 다 안 것만 같을 때도 있다. <백만장자 시크릿>에서 '당신이 어떤 일 하나를 하는 방식이 곧 당신이 모든 것을 하는 방식'이라고 했듯이, 한 번의 행동으로도 그 사람을 알기에는 충분한 경우가 있다. 그리고 보통은 그것이 첫인상이었을 때 잔상은 오래 간다.
지은이는 사이버 공간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했다. 20대에 나는 친구의 그 선택이 무척 이상하고 단순하고, 또 무모하다고 느꼈다. 정말로 SNS를 통해 만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나는 우연히 재회한 옛 친구나 직장 동료였던 지인이 아니라면, SNS에서 만난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믿어 왔던 것 같다. 세상에 대한 거만하고 오만한 불신이었겠지.
최근 나는 가상의 공간에서 알게 된 두 어 분의 어른을 신뢰하게 되었다. 최근 알게 된 한 분은 출판기획 전문가인데 요즘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일에 꽤 도움을 주고 계신다. 일의 속도는 물론 그 감각도 탁월해서 신뢰할 만하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작년엔가 알게 되었는데 오프라인에서는 만난 일이 없지만 서로의 글쓰기 공간에 안부를 전하곤 한다.
언젠가 우연히 보게 된 그의 일기에서 나는 단번에 그가 보통 고수가 아님을 알아 보았다. 그의 공간에는 짧은 일기와 일상에 대한 단상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짧은 끄적임' 속에서 충분히 생각의 깊이가 드러나고 있었다. 그 때는 마침 코로나19로 인해, 인간사회의 거리라는 것이 인터넷 공간의 점조직처럼 우르르 사이버 공간으로 이동해 있던 무렵이었고 나도 컴퓨터로 일하고 활동하는 시간이 꽤 늘었던 참이었다.
온라인으로 수업도 해야 하고, 과제 확인도 해야 하고, 카카오톡이며 그런 자잘한 도구들이 모두 동원되어 대학 수업을 진행해야 했던 시기라서, 그 틈에 개인글쓰기가 가능한 공간에서 잠깐씩 숨도 쉬고 휴식도 했다. 오전 강의 두 시간을 준비하려면 최소 대여섯 시간은 소비를 해야하는 때였는데 집 안팎으로 일도 많아서 다사다난했다. 수업은 교재를 발표자료로 만들고도 동영상으로 미리 만들고 확인하고 업로드까지 해야했으니, 출근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꼼짝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해서 꽤 힘들었다.
그즈음 알게 된 그의 글에는 재야의 고수같은 훈련일지며, 알콜과 함께 하는 평범한 일상이며, 육아에, 일에 분투하는 이야기 등 생활에 지친 이 시대의 젊은 아버지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한민국의 젊은 아빠라기에는 글과 생각이 지나치게 성숙해서 나는 그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는데, 이런 인상을 받은 것은 "아내에게 가는 길입니다."라는 단순한 문장 때문이었다.
보통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갈 때, '퇴근을 한다'라고들 하는데 그는 언젠가 '아내에게 가는 길'이라고 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밖에서 아내를 만나기로 했던 길일 수도 있고, 아내가 다른 곳에 있어 그 곳으로 들른다는 말이었을수도 있지만, 어쨌든 퇴근 길이었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인 것은 결국 같았다. 단순한 애정이라기 보다 무언가는 다른, 새로운 관점의 한 마디가 생소하면서 좋았다. 따뜻한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어서였을 수도 있고.
그의 일상은 일과 훈련과 육아 등등으로 채워지고, 새벽 기상은 물론 생활의 루틴이 언제나 흐트러짐이 없으며, 아내와 딸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가득하다. 생각과 행동이 늘 '아내에게 가는 길' 위에 있는 젊은 어른을 보며, 나는 그의 '아내가 참 멋진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가장이 바로 선 바람직한 모습이라니, 이것 말고 세상을 바꿀 만한 더 나은 생각과 행동이 또 어디 있겠는가. 어느 새 나는 그 뿐 아니라 그의 가족 전체의 팬이 되었다.
긴긴 명절 연휴에, 아내와 일곱살 딸 은수와 배깔고 누워 휴대폰만 쳐다보다가 엄마의 잔소리 몰매를 맞는, 내가 아는 젊고 게으르고 철없는 우리 동네 어느 가장을 보고 있자니, 언제나 하루의 훈련일지가 채워지고 그 최종 목적지가 아내에게로 향하는 그 분과 심히 비교가 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