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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진 Dec 11. 2023

비도 오는데 어쩌지?

11 DEC23

  우체국에 들러야 했다. 지난주부터 보낼 소포였는데 금요일에 서두르지 않아서 놓쳐 버렸었다. 이번주는 오늘이 아니면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낮시간에 여유가 없으니 어서어서 우체국에 들렀다 가자고 집을 나섰다. 비가 오다 그친 것 같았지만 혹시 모르니 우산도 챙겼다.


   우체국은 사거리 신호등 바로 앞에 있어서 신호를 기다리면서 오가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다른 때는 꽤 한산하던 우체국 앞이 오늘은 붐비는 편이다. 외출 채비를 한 할머니 한 분이 우체국에 들어갔다가 나오시고 할머니의 왼편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꼭 붙어 있다. 우체국에서 나온 할머니는 강아지를 우체국 옆 기둥에 막 묶어두려 하시는데 직원 분이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니 저쪽 한 편에 묶어두라고 당부를 하고 다시 들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길을 건넜다.  

  

  내가 우체국으로 들어설 때, 할머니는 손자에게 말하듯 강아지에게 여러번 같은 말을 반복하고 계셨다. '여기 가만히 있어. 기다리고 있어.' 할머니의 말을 알아듣는 듯, 강아지는 꽤 얌전히 자리를 잡고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우체국에서 나오는데 빗방울이 떨어졌다. 후두둑 하더니 금세 빗방울은 굵어져 버렸다. 비도 오는데 아까 길 옆에 묶여 있던 강아지는 어쩌고 있지? 우체국 문 오른편 한 켠에 있던 강아지를 찾아 보니, 할머니가 있으라고 한 그 자리에 서서 내리는 비를 맞고 있었다. 살짝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기에 강아지 머리 위로 우산을 놓아주고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뒤돌아 저만치 바라보니, 강아지는 내가 놓아둔 노란 우산 옆으로 빼꼼히 머리를 내어 놓고, 여전히 할머니가 돌아서 간 자리만 빤히 바라보고 있다. 비도 계속 올 텐데 어쩌지?


  일단 집에 갔다가 다시 나가는 길에 아까 우체국 옆에 있던 강아지가 그대로 있으면 간단한 먹을 것, 물을 놓아주고 올 참이었다. 우체국에 다녀온 것은 이른 시간이었고 이제 곧 점심때이니 두어 시간쯤 지났다. 그 사이 빗줄기는 강해져서 꽤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종강이 가까워져 조금 여유가 있는 월요일, 오후 수업이 있는 날이라 점심시간 전에 집을 나섰다. 아까 그 강아지에게 가져다 줄 요량으로 간단한 물품을 챙겼다.


  차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멀리 내다보니, 강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그 자리에 있었다. 우산 밖으로 몸이 반쯤은 나와 있었다.


  할머니가 아마도 갑자기 볼일이 있으셔서 동네 우체국 앞에 강아지를 급히 맡겨(!) 두고 가신 것 같은데, 일이 예정보다 늦어지시는 모양이었다. 우체국 직원은 점심시간을 알리는 안내문을 문 앞에 걸고 우체국 문을 잠그려는 참이었다.


  나는 우체국 옆에 차를 세우고 얼마 전 의류 재활용 수거함에 넣으려고 챙겨 둔 털조끼, 생수, 밥, 간식을 들고 강아지에게 갔다. 내가 다가가자 흠칫 놀라는 듯했지만 피하거나 짖지는 않았다. 우산 밑 평평한 벽돌 위로 털조끼를 깔아주고 강아지 앞으로 물과 밥을 놓아주었다.


‘할머니 올 때까지 잘 기다려.', ‘물 마시고 우산 밑에 들어와 있어.'


나도 아까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어디서 나타난 인간인가'하고 나를 빤히 쳐다만 보는 강아지에게 걱정어린 '신신당부'를 하고 돌아섰다.


  만일 할머니가 더 늦는다면, 비도 오고, 바람도 찬 날이라 무척 힘들 것이다. 할머니를 기다리느라 물도 밥도 눈에 안 들어오는 모양이었지만, 혹시 모르니... 할머니가 돌아올 때까지 강아지가 제발 잘 버텨주길 바라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배도 고플텐데... 비 오는 거리에서 누군가를 몇 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면, 무려 어른도 참기 힘든 법이 아니던가.


    오후와 저녁 일정을 마치고 정신없이 퇴근을 했다. 집 앞 교차로에 들어서기 전, 아까 봤던 강아지가 생각나 길 건너 우체국 옆을 살펴보았다. 비는 그쳤고, 내 우산은 그 자리에 없었으며, 강아지 역시 흔적이 없었다. 우산까지 같이 사라진 것을 보니 어쩌면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쓰고 가셨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내일 아침 출근길에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야지.


   날도 좋지 않은데도, 고분고분, 말없이 할머니가 떠난 자리만 바라보던 강아지가 내내 걸렸다.


  월요일 아침부터 하루 종일, 우연히 본 동네 강아지 걱정하느라 혼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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