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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진 Dec 12. 2023

오, 쾰른!

12 DEC23

  지지난주, 학부생들을 위한 특강에서 만나게 된 한 선생님이 본인의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신다고 하셨다. 부드럽고 예쁜 글씨체에다 내내 웃는 얼굴로 친절하셨다. 이번 특강에 유명작가를 직접 초청하셨다고 해서 시인이나 작가이리라 추측했다.


  종강을 앞두고 선생님을 다시 만나 뵌 오늘, 몇 가지 정보를 더 들을 수 있었다. 말씀도 참 편하고 솔직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하시는 일도 다양하시고 언어능력도 대단하신, 알고보니 숨은 실력자이셨다.


   염치없게도, 선생님이 번역하신 책을 선물로 받아들고 펼쳐보다가 나는 적잖이 놀랐다. 얼핏 보기만 해도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오게, 대단한 이력을 가진 분이셨다. 그 대단한 이력을 주욱 읽어내려가다가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아닌, 쾰른.


  독일 쾰른대학에서 수학하셨다는 부분에서, 나는 '오, 쾰른!', 작게 소리를 질렀다.

 

  오랜만에 듣는 쾰른... 나는 이십대의 어느 때에, 3년 동안 모은 돈으로 독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왜 독일이냐는 질문에는, 괴테하우스와 쾰른 성당을 보고싶다는 이유를 댔지만 그것은 언제나 마음 속 로망같은 거였고, 실제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독일인 니켈씨가 내가 독일에 가보고 싶어했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자신이 살고 있는 도르트문트로 나를 초대해 주었기에 이직 준비를 하던 사이 독일여행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아, 벌써 오래전 일이 되었구나. 처음 유럽행 비행기를 타기까지의 그 고민과 설렘, 프랑크푸르트를 걷던 시간들, 기차역, 괴테 하우스를 찾아 헤맸던 어느 오후, 도르트문트 어느 마을의 딸기밭, 그리고, 대망의 쾰른 성당.


  독일에서 보고 싶은 곳이 무엇이냐 묻는 질문에 나는 베를린 장벽이 아니라 쾰른 대성당을 짚었다. 다행히 니켈씨의 집과 멀지 않았는지, 니켈씨와 부인 시모나씨는 하루 시간을 내어 쾰른 주변을 둘러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쾰른 성당은 어릴 적, 책에서 보았던 웅장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게도 생각보다 작았다. 멀리서 보면 검은 철조망 지붕같았던 성당 앞에 섰을 때 나는 정말 신기해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세계사 책에서 보았던 성당을 눈 앞에서 보고 그 계단을 올랐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이후에, 오스트리아의 스테판 성당 앞이나 벨베데레 궁전의 클림트의 그림 앞이나, 아니면 더 멀리 파리의 에펠탑 앞에 섰을 때 보다도, 나는 독일의 쾰른 성당 앞에 서던 그 순간이 언제나 나의 첫번째인 것만 같았다.


  너무 어렸어서 여행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조차 감이 없던 때에, 갑자기 만나게 된 쾰른 성당의 자태는 언제나 나에게는 이국적이면서 고전적인, 역사의 한 장면이 되고 만다.


  오늘, 정말 오랜만에 쾰른, 나의 20대, 그 곳으로 마음이 달려가고 있다. 첫 직장에서 퇴사하고 다음 직장이 없는 상태에서 길을 떠났기에 조금은 우울했던 기억,  그러나 좋았던 만남들. 이후 언젠가 다시 프랑크푸르트의 괴테 하우스를 찾았을 때에 나는 이전보다는 여유로운 여행자가 되어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니켈 부부와 함께 걸었던 호숫가의 오후, 이른 아침의 독일빵집, 광활하게 펼쳐져 있던 풍력발전 바람개비들, 그리고 쾰른 성당에서의 시간.


  아, 쾰른. 아마 나는 쾰른에는 다시 가 볼 일이 없겠지. 쾰른에서 공부하셨다는 선생님을 만나뵙고 오는 길 내내, 나는 나도 모르게 오래전 그 해, 쾰른에서의 기억을 하나둘 더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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