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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어의상상 Sep 14. 2020

2# 어쩌면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

6,960m 아콩카과 산에 오르다.






“세계여행을 간다면 나는 대륙별 가장 높은 산에 도전할 거야!”     


언젠가 오빠가 여행을 준비하며 나에게 했던 말이다. 그는 언제나 산 이야기를 하면 눈이 반짝였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를 향한 갈망과 설렘이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도전들을 나와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대륙의 높은 산. 기본 4000m가 넘는 산들을 과연 할 수 있을까. 학창 시절 티브이에서 한 산악인이 에베레스트에 도전하는 모습을 본 적 있다. 주변에서는 무미건조한 ‘대단하다’라는 짧은 감상평을 했지만, 나는 저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들은 왜 높은 산을 향해 가는가.’     


경험도 기술도 없는 우리 둘이 등반에 도전한다니! 이보다 더 무모한 것이 있을까? 아찔한 절벽을 상상했다.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무모함은 언제나 흥미로운 세상을 만나게 해 준다. 그것을 뿌리치기에는 우린 젊었다. 무모함에 스스로를 내던지는 짜릿한 경험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결론을 지었다. 어쩌면 티브이 속 산악인에게 묻고 싶던 답을 스스로에게 얻을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보기 만해도 두렵고, 숨 막힐 듯한 밤을 느껴본 적이 있다. 당장이라도 내가 사라질 것 같은 기분. 아콩카과 산이다. 아콩카과 산은 남미에서 가장 높은 산(6,960m)으로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다. 바람에 텐트가 찢어질 정도로 날씨에 악명이 높다. 그 산에 오르자고 처음 제안했던 것은 그였다.    


 남미 멘도사에 도착했을 때, 우리의 짐은 형편없었다. 6,960m의 산을 오르기 위해서 입산 허가서와 등반 전문 장비들이 필요했다. 방한복, 동계 부츠, 아이스 엑스, 로프, 스패치 등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산에 오르기 위해 300만 원의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에겐 경비가 넉넉지 않았다. 아이스크림 사 먹는 것도 아낀 우린데 300만 원이라니 눈앞이 아찔했다. 머리를 썼다. 입산허가비용과 중요장비만 대여하는 것이다.  또 여행사를 이용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준비하는 것이다.


전문 등반 장비 대여샵
멘도사 시티 전통시장

 

산에서 등반장비는 ‘생명’이라고 말한다.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안전장비. 장비를 생략할 수는 없었다. 입산 허가비 100만 원에 나머지는 전문 장비 샵에서 부츠, 스패츠, 패딩, 장갑 등 최소한의 장비를 대여했다. 보온을 위해 필요한 옷은 멘도사 시티에 있는 전통시장에서 사기로 했다. 다음날 그와 나는 멘도사 시내에 있는 전통시장을 갔다. 그곳에는 온갖 의류들이 있었다. 나는 가장 마음에 드는 짝퉁 아디다스 후드와 내복, 두꺼운 양말을 구매했다. 장을 보다가 갑자기 웃음이 났다. 고산등반을 위해 진지하게 전통시장을 뒤지는 우리의 모습이 어이없고 웃겼다. 아무렴 어떠나! 전문 장비가 없던 시절에 등반가들도 우리처럼 방한 옷을 사기 위해 전통시장을 뒤졌을지 모르는 일이다.   

아콩카과 산

  

아콩카과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오르고 내려오기까지 약 20일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묘하게 긴장되고 가슴이 콩닥거렸다. 사실 정상에 오를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당연히 실패할 것이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두근두근 거렸다다. 원하던 곳에 우리가 존재할 수 있으니까.     


길을 걷기 시작했다. 눈앞에 광활한 대자연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알프스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웅장했고 포스가 느껴졌다. 앞으로의 여정이 만만치 않겠다는 직감이 들어섰다. 가방에 짐이 많아서인지 지대가 높아서인지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숨이 차올랐다. 한참을 걷다가 사람들이 모여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와 그는 잠시 쉬기로 한다. 앉아서 초코바를 뜯어서 입에 넣었다. 


"크 이맛이지!"


산에서 먹는 초코바는 언제나 환상적이다. 그와 나는 서로 실실 웃으며 이 시간을 즐겼다. 산에서 고생하면 그 무엇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자연에서는 조미료가 필요하지 않다. 



모여있는 사람들
산사태 일어난 모습


    잠시 후,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한 곳을 응시하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나와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 사람들이 몰린 곳을 기웃거렸다. 저 멀리 산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눈덩이들이 힘없이 와르르르 쏟아져 내렸다. 장관이었다. 멀리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등꼴이 오싹해졌다.     


“자연은 언제든 우리를 삼킬 수 있어”     


예전에 대장님이 해주셨던 경험담이 떠올랐다. 등산 팀으로 아콩카과 산을 도전했을 때. 캠프를 하고 있었는데 워낙 고산이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옆 텐트에 있던 외국인 여자가 고산증세로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아서 걱정을 해주었는데 다음날, 그 여자분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마음이 숙연해졌다. 어쩌면 내가 돌아오지 못할 곳에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브이 속 그 산악인도 나 같은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슬픈 드라마에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두려운 마음이 시도 때도 없이 올라왔지만, 포기하지 않기도 했다. 

죽음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내 삶을 온전히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설령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 해도 내 인생에서 이러한 도전을 했다는 것에 축하해주고 싶다. 

실패는 성장할 기회를 주지만 포기는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을 테니까.      

나는 두려운 마음에 벅찬 발걸음으로 답했다.


천천히, 조금씩 

그렇게 우리는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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